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 소식이 전해진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10일 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피감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김광동 위원장은 ‘5·18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북한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없고,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북한 개입설’을 또 반복한 것이다. 5·18과 제주 4·3 등 현대사의 비극을 파고든 작품을 써온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 그리고 그 비극의 상처를 헤집는 극우 정치의 파렴치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은 과거 논문에서 “5·18 헬기 사격은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등 왜곡된 역사인식을 드러내 2022년 임명 당시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취임 뒤로도 ‘북한 개입설’을 되풀이했다. 이런 인식을 지닌 인물에게 과거 국가폭력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진실화해위를 이끌도록 한 것 자체가 기가 차는 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이런 퇴행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는 등 5·18을 폄훼한 도태우 변호사를 공개 지지한 전력이 드러났지만 방통위원장에 임명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5·18 ‘사태’라고 비하한 교수가 한국학력평가원의 새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에 포함되는가 하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물들이 요직에 기용되고 목소리를 높이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퇴행의 시대에 찾아온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은 벅찬 기쁨과 동시에 통탄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5·18의 비극은 40년이 넘었다. 4·3을 비롯해 더 오래된 현대사의 아픔도 많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 함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상처를 보듬어 한 차원 높게 승화시켜야 할 역사적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일삼으며 정쟁거리로 삼는 세력이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할 뿐이다. 역사를 대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몰지각한 태도가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성숙과 문화적 성취를 갉아먹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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