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요식업계를 통틀어 단 한명의 상징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백종원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한 명의 사업가를 넘어, 요식업계의 대부라는 평까지 받는 그이지만, 한때는 사업 실패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무려 17억원의 빚을 지게 됐는데, 사연은 이렇다.
◇ 목조 사업하다 빚더미…포장마차로 재기
백종원은 어린 시절 양복 차려입고 외국을 오가는 사업가를 꿈꿨다.
재능도 있었다. 대학교 진학 후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떠올린 전략으로 매출을 대폭 상승시켜 가게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후 1993년부터, 그는 인테리어 사업과 쌈밥집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쌈장 개발부터 대패 삼겹살, 볶음밥까지 개발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지인의 권유로 미국 건축자재 수입을 독점으로 하는 목조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IMF가 오면서 17억 원의 빚을 지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의 바뀐 시선에 모멸감을 느꼈던 그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심을 굳힌 백종원은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홍콩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홍콩여행은 오히려 그에게 재기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침사추이에서 홍콩 오가는 배에서 떨어져야겠다 생각했는데 내가 수영을 좀 해서, 건져지면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높은 데로 올라가자 해서 고층빌딩으로 올라갔는데, 또 거기는 가는 데마다 막혀 있더라”며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그래서 백종원은 ‘안 되겠다. 내일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맛있는 거나 먹으려 맘을 바꿨다.
그런데, 한 이틀 홍콩에서 오리 고기를 먹다 보니, 이 아이템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다시 사업을 일으켰다.
백종원이 시작한 사업은 포장마차 사업이었다. 서빙부터 장보기, 요리까지 혼자 다 해내야 했다.
새벽 4시에 가락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전 6시에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준비한 뒤, 오전 10시에 퇴근해 오후 4시에 다시 출근하는 하루가 반복됐다.
그렇게 무려 2년을 하루 4시간씩만 자며 일에 매진했다.
백종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도 트라우마가 있어 잠을 잘 수 없다. 지금도 잘 때는 전화기를 꺼둔다. 옛날 사진을 보면 (얼굴 상태가) 굉장히 안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서서히 이자를 갚아나갈 수 있었고, 사업을 다시 일으키게 되어 오늘의 위치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마음가짐’!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그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힘은 무엇보다 남다른 마음가짐과 신념에 있었다.
우선 그는 실패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당장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현재에 집중했다.
그리고 빚과 이자를 갚아나가며 조금씩 성취감을 쌓아올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돈벌이에만 연연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보다는 자신이 사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가치에 집중했다.
자신이 사업을 통해 얻은 것을 손님과 주변에 나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실제로 유튜브를 통해 번 수익을 모두 직원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돈은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가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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