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저녁 8시,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이 발표되자 국내 문학계는 물론이고 언론도 '깜짝 소식'에 다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고 할 정도로 의외의 결과여서 언론도 대비를 하고 있지 못했다.
과거 매해 시인 고은의 자택 앞에 방송사 중계차량들이 몰려가던 때를 생각하면, 이번 수상 소식이 전해지는 방식은 다소 밋밋하다. 한강 본인도 국내 언론에 따로 수상 소감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 정도다.
2002년 경부터 한국 문학가는 수상 후보군으로 거론됐었지만 대체로 시인 고은이 항상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로 꼽혔다. 대략 10여년을 매해 노벨 문학상 발표 시점엔 고은의 자택 앞에 방송사 중계차와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려가 대기했다.
취재진이 고은의 경기도 안성 자택 앞에 처음으로 몰려든 건 2005년 10월 13일이었다. 10월 둘째 주 목요일에 발표되는 노벨 문학상 관례에 따라 그날 100여명의 취재진과 동네 주민들이 자택 앞에 모여 있었다. 당시 영국 도박사이트가 고은의 수상가능성을 높게 봤고 일부 외신에서도 거론된 게 영향을 미쳤다.
노벨상 추천은 각 분야에서 수백건 혹은 경우에 따라 수천건이 접수된다고 알려져 있다. 마감날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스웨덴 한림원이 후보군을 모으기 위한 정보 수집에 가까운 연례 절차일 뿐이다.
노벨상은 철저하게 비공개 과정을 통해 정해지기 때문에 후보군조차 알 수 없다. 외국 도박사이트가 유력한 보도 근거로 인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도박'대상으로 활용돼 베팅이 가능할 정도로 노벨상 수상은 미리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은이 처음 유력 후보로 꼽혔던 2005년, 10월에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이 한국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빈국 한국의 문학가들이 유럽에 많이 소개되는 기회를 얻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은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이었다. 당시 한국 문학계 혹은 정부도 고은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였던것도 한 몫 했다. 고은은 전폭적 지원 속에 유럽 곳곳에서 시 낭송회나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수상 실패에 취재진이 자택 앞에서 철수하는 모습은 2005년부터 매해 10월 둘째주 목요일 밤 공중파 뉴스를 통해 대략 10여년간 전 국민에게 다소 허무한 분위기 속에 전파됐다. 그때마다 국내 문학계는 물론이고 국민들 다수는 "노벨 문학상은 아직 멀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수원시가 2013년 고은에게 작업에만 몰두하라며 광교산 자락의 한 주택을 리모델링해 제공해 수원으로 이사한 뒤에도 매년 10월의 소동은 이어졌다. 한두 해 더 이어지던 '고은의 좌절' 생중계는 어느새 끝났다. 10여년 원치않는 좌절을 겪던 고은은 민망함과 곤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매해 10월은 해외 체류를 택하기도 했다.
이후 고은 자택 앞 취재진 대기 관례가 사라졌다. 2018년 2월 터진 고은의 '미투'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유력해 보였던 고은의 권위와 명성엔 금이 갔다고 볼 수 밖에 없었고, 이후 코로나 시기도 거치며 노벨 문학상은 이젠 한국과 당분간 최소 10년은 인연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포기상태가 국내 문학계를 지배했다.
한국 문학의 침체도 영향을 줬다. 한강의 작품도 국내외에서 이어졌던 수상실적에 비해선 많이 읽히지 않았다. 가장 많이 팔린 '채식주의자' 등의 작품도 수만권 정도에 그친다. 영국 부커상과 프랑스 메디치상 등 거의 매해 수상 기록을 더했지만 판매량은 해외 수상 소식이가 전해질 때만 슬쩍 평소보다 몇배 늘었다가 금방 식는 분위기였다.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고은 시인이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유력했는지도 알 수 없고, '민족 시인'이란 수사가 붙은 그의 시는 국내에서도 한 편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어서 과대평가됐다는 비판도 있었고 호불호가 갈렸다"며 "당장 그의 시를 암송하거나 제목이라도 제대로 아는 이도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은의 시는 장르적 한계로 해외에서 읽고 공감하기엔 보편성이 부족하단 평도 꾸준했다. 같은 5·18을 다뤘어도 고은의 시는 해외에선 공감을 얻지 못했고 한강의 소설은 보편성을 인정받았을 수 도 있다"며 "한강의 소설 작품이 해외에서 계속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기대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받게 되리라 점친 출판인은 많지 않았고 한 10년 뒤에나 받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문학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놓고 보면 충분히 받을만하단 평가가 나올 작품들이 있어서 많은 독자들이 지금이라도 많이 읽고 다른 작가들 작품으로 손을 더 내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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