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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지옥에서 온 판사’, 인간보다 공정한 악마가 주는 대리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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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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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쇼 <용감한 형사들>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범죄 기사의 댓글창을 보면 이런 글이 자주 눈에 띈다. ‘저런 판결을 내린 판사가 제일 무섭다.’ 범죄 양형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는 꾸준하고, 변화가 느린 만큼 그 불만을 대리 해소시켜주는 ‘사적 복수’ 콘텐츠는 넘쳐난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숫제 ‘천벌’의 개념까지 끌어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화끈한 응징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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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유스티티아(오나라)는 지옥에서 사고를 치고 지상으로 쫓겨난다. 판사 강빛나(박신혜)의 몸을 빌려 살인자 10명을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회개하거나 용서받지 못한 죄인만 카운트되며, 1년 안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유스티티아는 죽는다. 강빛나가 판사니까 그 몸으로 악인을 찾기는 쉽다. 하지만 죄인이 살인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살인이 벌어진 후에도 인간의 법으로는 그들을 죽일 수 없다. 그리하여 유스티티아/강빛나는 가벼운 판결로 악당들을 풀어준 뒤 지켜보다가 몰래 죽인다. 인간 사회에서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졌으니 ‘천벌’이라는 종교의 약속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 세태가 혼탁할수록 사이비가 판치는 원리가 엿보이는 설정이다.


‘악마’라고는 하나 주인공은 그리 사악한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자체가 엄숙함과 거리가 멀기도 하고, 박신혜 특유의 따뜻한 이미지도 한몫을 한다. 유스티티아(Lustitia)라는 이름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신에서 땄다. 법원 앞에 흔히 보이는, 안대를 하고 저울을 든 ‘레이디 저스티스’ 동상의 주인공이다. 


극 중 유스티티아는 원래 살인 지옥 재판관이었다. 그런데 죽어서 거짓 지옥으로 가야 할 판사 강빛나가 실수로 살인 지옥에 끌려와 유스티티아 앞에 서면서 일이 꼬인다. 유스티티아는 사람을 죽인 적 없다는 강빛나의 항변을 무시하고 게헨나 노역형 2만 년을 선고한다. 게헨나는 유대교에서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가는 형벌장이다. 유스티티아는 덧붙인다. “너는 나한테 반말했으니까 노역형 5만 년 추가.” 이 캐릭터가 로마신화 출신인지 성경 출신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유교 꼰대인 건 확실하다.


유스티티아는 위의 사건으로 ‘지옥의 왕’ 바엘(신성록)의 저주를 받았다. 지상으로 쫓겨난 유스티티아가 원래대로 경솔하게 아무나 처단하자 바엘은 할당량을 10명에서 20명으로 늘려버린다. 이 정도면 피해자들에겐 악마가 인간보다 선하고 지옥이 한국보다 공정하다.


세계관 설정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진지한 드라마보다는 코미디가 강조된 판타지다. 강빛나는 재개발 알박기 중인 빌라에 살고, 입주민 대표는 교회 권사이고, 유스티티아의 오른팔 구만도(김인권)는 유스티티아에게 질린 나머지 교회를 기웃거린다. 유스티티아의 목표는 1년 안에 임무를 완수해 죽음을 면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현생 자체를 즐긴다. 예쁜 얼굴로 태어났다고 좋아하고 비싼 자동차와 옷가지를 탐닉하고 꿀떡에 약하고 훤칠한 경찰 한다온(김재영)에게 관심을 갖는다.


‘사이다 액션 판타지’라는 제작 의도는 미묘하다. 주인공들이 범죄자를 잡아 족치는 장면에서 자주 액션이 동원되기는 하나, 그 성격이 화려한 격투보다 고문에 가깝다. 한국어에 능통한 유교 꼰대이자 함무라비 법전 지지자인 듯한 유스티티아는 살인자에게 그가 저지른 짓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교제 살해범에게는 스토킹을 경험케 하고, 남편을 익사시킨 보험 사기꾼에게는 수장 체험을 시켜준다. 피해자들을 자기가 주인공인 게임의 NPC 정도로 다루던 사이코패스들이 유스티티아의 게임에 굴러떨어짐으로써 같은 꼴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액션이나 악인의 파멸 자체가 아니라 이런 수행 방식이 이 드라마가 주는 ‘사이다’의 핵심이다. 많은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를 통한 자존감 회복이다. 반성과 사과는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공감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 능력이 부족한 악인들에게는 강제로라도 같은 피해를 주고 싶다는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실수도 하고 발전도 하는 동물이므로 동해복수, 즉 ‘눈눈이이’가 정의 구현에 최선은 아니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신화적 설정을 바탕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우리의 위험한 욕망을 대리 실현한다. 당장은 시원하지만 현실 해갈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말마따나 ‘사이다’ 같은 설정이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완성도가 뛰어난 드라마는 아니다. 주인공 판사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다. 마찬가지로 한가해 보이는 형사는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의 피해자에게 연민이 철철 넘친다. 그리하여 판사는 사건 관계자를 직접 찾아다니고, 형사는 그를 따라갔다가 아동 학대와 보험 사기 관련 단서를 보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게헨나’ 인두가 찍힌 시체가 연달아 발견되어도 경찰 수사가 흥미롭게 전개될 거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 캐릭터는 모두 단순하고 전형적이다. 그럼에도 가벼운 오락물로서의 매력은 충분해서 2주 차 시청률이 9%대에 진입했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유스티티아/강빛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악마가 사랑에 빠지면 죽는다는 설정은 한다온과의 로맨스가 순탄치 않으리란 암시다. 살인만 안 할 뿐 사악하기론 남부럽지 않은 자들을 어떻게 단죄할지도 문제다. 이런 경험과 고민들이 유스티티아/강빛나를 어떤 심판관으로 성장시킬지는 저 목숨 건 로맨스와 더불어 작품 후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총 14부작으로, SBS에서 금·토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웨이브, 디즈니+, 시리즈온에서도 볼 수 있다.



https://www.vogue.co.kr/?p=53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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