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이유
놀랍겠지만 정말로 세조는 원앤온리인 데다가 아내인 정희왕후 윤씨만 바라보는 애처가로 유명했음
둘 사이에서 2남 2녀가 태어났고 얼마나 애처가였냐면 세종의 적자 아들들 중 유일하게 금슬이 매우 좋은 부부였던 데다가 후궁도 단 3명(1명 사형이라 최종 2명)
좀처럼 여색을 탐하지 않았다는 정조의 후궁이 최종 4명이었는데 세조는 그것보다도 엄청나게 적은 수의 후궁이고 그마저도 한명은 신숙주 서녀임(정치적)
신숙주 서녀인 숙원 신씨는 생몰년도 없는 걸 보면 아예 구실일 뿐이고 아래에서 설명할 소용 박씨(박덕중), 근빈 박씨 둘이 있는데 소용 박씨는 처형당함
결국 세조의 후궁 최종 2명, 세조는 정말 미친듯이 왕비만 보고 살았다고 볼 수 있음
세조실록을 보면 날마다 조정에서 자랑을 하는 기록이 남겨져 있는데 "우리 중전이 말이야~ 내가 이걸 가지고 물어봤는데 이렇게 답했어~ 얘들아 개쩔지?" 하고 와이프 자랑을 함, 이게 nn번 써져 있고 지겨울 정도로 정희왕후 자랑, 게다가 즉위 이후에 사냥연을 열어야 해서 가야 하는데 세조가 "중전 없이는 안 가! 안 갈 거야! 안 간다고!" 이렇게 떼를 쓰면서 자기 와이프인 정희왕후 없이는 안 가겠다고 난리를 쳐서 결국 정희왕후는 조선사 유일하게 말을 탄 왕비가 된 기록을 세움
세조의 찐사는 세조가 정희왕후를 너무 좋아해서 그것 때문에 바람이 난 유일한 케이스인 소용 박씨, 본명 박덕중이라는 후궁 하나로 레전드가 됨
세조가 자기 안 찾아오니까 덕중은 내시들이랑 바람을 피웠는데 세조가 그거 그냥 넘어가 줬음 자기도 정희왕후만 좋아하니까
그런데 이 덕중이가 선을 넘어서 연서를 미남으로 유명한 왕실 종친 구성군에게 보내면서 난리가 났고 이것도 봐 줬지만 한 번 더 보내는 바람에 처형 엔딩
한줄요약: 세조는 현실 북부대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