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대중문화수첩]
[스포츠서울 | 김효원 기자] 매달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고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또 잊혀진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잠시 드라마에 빠졌다가 걸어나와 우리는 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 그 이상일 때가 많다.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과몰입하고 울고 웃는다. 고작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멸망하는 일보다 더 흥분한다.
한국인에게 드라마는 왜 이토록 중요한가. 요즘 한국인들은, 공부하는 석박사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책을 읽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면 2023년 독서율은 4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조사다.
그 자리를 드라마가 차지했다. 드라마 작가들이 더욱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병원에서 연애하는 얘기, 로펌에서 연애하는 얘기, 방송국에서 연애하는 얘기는 하도 많이 봐서 더 이상 볼 인내심이 없다. 재미있으면서 시청자를 조금은 성장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6월 30일) 종영한 tvN 토일극 ‘졸업’(연출 안판석, 극본 박경화, 제작 스튜디오드래곤·㈜제이에스픽쳐스)이 이룩한 성취는 눈부시다.
‘졸업’은 대치동 스타 강사 정려원(서혜진 역)과 그의 제자 위하준(이준호 역)이 벌이는 로맨스를 내세워 ‘학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뻔한 내용이겠지’라는 선입견 때문에 극 초반에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스타 강사와 제자의 러브라인은 거들 뿐, 대형 학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생생하게 다뤄 흥미를 전했다. 탄탄한 대본과 세련된 연출로 재미, 감동, 교훈, 여운까지 드라마가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선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사로서는 연봉 수억원을 벌어들일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어른으로서는 미완성인 서혜진은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돌진하는 제자 이준호와 연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껍데기를 깨고 나와 꿈을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한다. 서혜진이 먹고사니즘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모습은 매일 사표 쓰는 장면을 시뮬레이션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에 통쾌함을 전했다.
‘법대생’이었던 서혜진이 자신이 왜 돈을 벌려고 했는지 깨닫고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고는 이준호에게 “내가 뭔가 이뤄내면 그때는 네가 나한테 줘. 빛나는 졸업장”이라고 말한 대사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졸업하지 못한 것”이라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마지막회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점도 칭찬할 만하다. 흔히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그렇게 해서 왕자와 공주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설명하기 위해 진부한 장면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전파를 낭비하는 데 비해 ‘졸업’의 마지막회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려주는 데 모든 신을 집중해 감동을 더했다.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다. ‘졸업’의 박경화 작가는 놀랍게도 이 작품이 첫 데뷔작이다. 20년간 홍보 업계에서 일하다 작가공부를 시작해 CJ ENM이 실시한 신인 창작자 발굴 프로젝트 오펜(O‘PEN)에 단막극 ‘스톡 오브 하이스쿨’을 썼고 이 대본이 안판석 PD의 눈에 띄어 ‘졸업’을 집필했다.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미학을 수준높게 완성한 박경화 작가가 보여줄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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