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1월 생, 올해 만 90세…51년째 현역
지금도 대리점 월 10회 이상 출근해 판촉 활동
김영애 씨. 89세인 지난해 여권 발급차 찍은 사진이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일을 하고 싶어요.”
아모레퍼시픽에는 올해 만 90세가 된 화장품 방문 판매원(카운셀러)이 있다. 1934년 1월 생으로 업계 최고령이다. 여전히 서울 영등포 아모레퍼시픽 대리점으로 출근하고, 판촉 활동을 하는 ‘현역’이다. 50년이 넘게 아모레 화장품을 알렸으니, 사실상 그의 삶이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다.
김영애 씨가 그 주인공이다. 부끄럽다며 인터뷰를 주저하던 그가 용기를 냈다.
“처음에 이력서 쓸 줄도 몰랐어요. 주변 지인한테 부탁해 어렵사리 일을 시작하게 됐죠. 지금 생각해도 두 번씩 찾아가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용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52년 전인 1972년 12월이었다. 갑자기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졌다. 가족 모두가 돈을 벌어야 되는 상황이 됐다. 그때 한 일간지에 실린 ‘화장품 방문 판매원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름대로 멋있게 차려입고 갔는데, 처음엔 거절을 당했어요. 다음 주에 또 가서 일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제야 이력서와 보증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그렇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1973년 1월 1일부터 ‘태평양화학공업사(아모레퍼시픽 전신)’의 아모레 방판원이 됐다. 화장품 방판원이 ‘아모레 아줌마’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38세, 적지 않는 나이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집 대문을 서성이다 쫓겨나기가 다반사였다. 서러웠다. 눈물이 쏟아졌다. 인터뷰를 도운 영등포 대리점주는 김 씨에 대해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분”이라고 했다.
그해 1월의 기억은 사진처럼 또렷하다.
“처음 일을 시작한 열흘 동안 한 개도 못 팔고 애만 태웠어요. 제가 좀 불쌍해 보였는지 몇 번 방문한 곳에서 600원짜리 매니큐어를 사주더라구요. 운이 좋았는지 그 날, 다른 곳에서 1600원짜리 밀크 로션도 하나 팔았습니다. 그 때의 그 기분은 50년이 지났지만 잊혀지지가 않네요.”
1964년 방판제도를 처음 도입 할 당시 아모레 방판원의 모습. 김영애 씨도 이 여성처럼 가가호호 찾아 아모레 화장품을 판매했다. [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캡쳐]
김 씨는 방판 외길 인생을 걸었다.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우리 시대에는 여성이 일할 곳이 많지 않았어요. 돈을 벌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여유도 있었죠. 외모도 가꿀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반백년 동안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했죠.”
태평양화학공업사가 내놓는 화장품은 김 씨와 같은 방판원의 땀방울로 세상에 알려졌다. 태평양화학공업사는 1964년 방판제도를 도입하면서 전용 브랜드 ‘아모레’를 만들었다. 아모레뿐만 아니라, 오스카, 하이톤, 타미나, 미모라, 부로아 (이하 1970년대), 삼미진, 리바이탈, 나그랑, 탐스핀, 순정, 미로 (이하 1980년대) 등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이 김 씨의 손을 거쳤다.
1970년~80년대 방판원의 매출 비중은 전체의 70%가 넘었다. 아모레퍼시픽이 재계 2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김 씨와 같은 방판원의 역할이 컸다. 그렇게 방판 전용 브랜드 아모레는 사명이 됐다.
유통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매출 중 방판이 차지하는 규모는 15~20%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화장품 판매에 평생을 바쳐온 김 씨의 자부심은 여전하다. 매월 10~15회씩 대리점을 찾으며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유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제품 역시 오랜 연구가 바탕이 됐다는 자부심을 갖고 판매하고 있어요.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 최고의 화장품이라고 인식하는 고객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설화수가 인기가 좋아요. 그중에서도 윤조에센스, 자음생크림을 많이 찾습니다.”
김 씨가 50년 넘게 판 화장품의 매출 규모는 10억원 이상이다.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고객 덕분이라고 김 씨는 수줍게 말했다. 그러나 고객들도 김 씨와 함께 나이가 들었다. 일부는 세상을 먼저 떴다. 지금은 새로운 고객을 찾기보다 기존 고객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본지 인터뷰에 응한 이날도 오랜 고객 신모 씨와 점심 약속이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신 씨에 대해 “판매를 하다 만난 사이지만, 가족처럼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며 “제가 아플 때나 개인적으로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준 정말 고마운 고객”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90세가 된 김 씨에게 “인제 그만 쉬시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그때마다 김 씨는 “건강이 허락되는 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답한다. 그는 “출근할 곳이 있어 규칙적으로 사무실에 나오고, 고객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즐거움이자 최고의 건강관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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