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15세 관람가’에서 성관계 묘사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웹소설'
선정적 작품 가득한데...나이 인증 없이도 접속 가능
10대 학생 2명 중 1명은 웹소설 독자
"청소년에게 왜곡된 성관념 심을 수 있어"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이모 씨(43)는 최근 초등학생 딸이 접속해 있는 웹소설 사이트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화면에는 미성년자가 접하기엔 부적절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딸에게 "이런 거 보면 안 된다"고 타일렀지만, 딸은 "반 친구들도 다 보는데 왜 나만 안 되냐"고 반문했다.
16일 웹소설 B플랫폼의 '랭킹 페이지'.
국내 웹소설 플랫폼 연재작품의 상당수가 성관계를 묘사하거나 불건전한 이성 관계를 다루는데도 '15세 이용가' 혹은 '전체이용가'로 지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성년자에게 선정적인 내용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어 청소년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부 궁합', '나쁜 하룻밤'...웹소설 플랫폼, 선정적 콘텐츠로 가득
17일 웹소설 플랫폼 B의 '랭킹' 페이지에는 남녀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다수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랭킹 페이지는 연재 작품을 인기 순으로 나열해 보여주는 페이지다. 웹소설 표지에는 한 여성의 두 팔목을 잡은 채 벽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남성, 반라의 남성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한 여성 등이 묘사됐다.
B플랫폼의 랭킹 페이지에는 '부부 궁합', '나쁜 하룻밤', '한 번 말고 여러번' 등 남녀 간의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세 작품 모두 전체 이용가로, 별도 나이 인증 없이도 접속할 수 있다.
B플랫폼은 웹소설 사업으로 연 매출 200억 원 이상을 올리고 있는 회사다. '청소년보호 책임자'를 2명 두고 있다. 본지는 B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여타 플랫폼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월평균 이용자가 120만 명이 넘는 웹소설 플랫폼 R에 게재된 한 작품엔 남자 주인공이 배우자에게 강제로 스킨십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여자 주인공은 이 상황이 '비참했다'고 하는 반면 남자 주인공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고 묘사돼 있다. 해당 작품은 '15세 연령가'로 지정돼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읽을 수 있다.
B·R 플랫폼처럼 중소 플랫폼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선정성을 앞세우고 있다. 국내 웹소설 플랫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2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약 1조390억원이었다. 2년 만에 62%가 증가한 수치다. 네이버 웹소설과 카카오페이지 등 대형 플랫폼은 물론 리디북스, 조아라, 문피아 등 플랫폼이 자리를 잡은 상태다.
이러다 보니 중소 플랫폼들이 독자 유입을 늘리기 위해 작가들에게 성적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장려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웹소설 작가로 등단한 경험이 있는 한모 씨(26)는 "한 중소 플랫폼에 소설을 연재하기 위해 원고를 보냈는데 '계약 후엔 더 19금 쪽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성년자들이 이같은 선정적인 작품들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웹소설은 청소년 계층에 인기가 높은 만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체부가 실시한 '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경험한 읽기 관련 활동'으로 초·중·고교 학생의 49.9%가 '웹소설'을 꼽았을 정도다.
있으나 마나 한 '등급 체계'..왜곡된 성관념 심는 웹소설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등급 체계지만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전체 이용가', '15세 이상 이용가, '19세 이상 이용가'로 나누는 기준이 플랫폼의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웹소설 등급 체계는 기본적으로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 기준을 바탕으로 한다. 다만 강제성이 없어 권고에 그친다. 이에 따라 플랫폼마다 등급 선정 기준이 다르고, 나이 인증을 받는 곳도 드물다.
특히 중소 플랫폼의 등급 체계는 부실하게 관리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간행물윤리위원회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사회적 책임과 위상이 있다 보니 자율 규제에 더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지만, 중소 플랫폼은 수익성을 쫓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985760?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