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에 한 편만 초청받은 건 2003년 이후 처음이다. 칸 하면 떠오르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가 올해 선보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하지만 불길한 징후다.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장을 받은 한국 영화가 없다는 점은 더 암울하다. 비평가주간은 신진 감독 영화들을 주로 초청한다. 칸이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재능을 올해는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한국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빠르게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해외 시장 개척도 이어졌다. 칸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세계로 진출하는 발판 역할을 해왔다. 칸영화제는 새롭게 떠오른 ‘상품’인 한국 영화로 영화제 위상을 높여왔다. 올해는 확연히 다르다. 한국 영화에 대한 칸영화제의 변심이 감지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코로나19 후유증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로 극장 산업이 위축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부상하면서 감독과 배우 등은 영화 대신 드라마로 몰려 갔다. 영화 쪽 투자가 줄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빼어난 감독과 뛰어난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니 좋은 영화가 나올 확률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코로나19 탓만 할 수 있을까. 팬데믹을 한국만 겪은 건 아니다. 한국 영화의 성장엔진은 최근 급속히 식고 있다. 재능 있는 신인 감독들이 간혹 등장하나 예전만큼 많지 않다. 독립영화 쪽에서 눈에 띄는 성취들이 종종 나오나 주류 영화계의 활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신진 양성을 게을리했고, 그나마 두각을 나타난 신인들마저 산업 안에서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책 당국은 최근 아예 두 손을 놓았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수장 자리는 비어 있다. 지난 1월 말 박기용 위원장이 퇴임한 후 3개월가량 공석이다. 직무대행 체제로 꾸려지고 있으나 대행은 대행일 뿐이다. 책임감 있는 조직 운영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음 달이면 새 영진위 위원 선임과 위원장 호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기는 하나 이마저 불투명하다. ‘영화 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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