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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열등감에 미쳐서 점점 친일파로 흑화해가는 한 친일파의 일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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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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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친일파 윤치호



윤치호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무려 60년간 일기를 썼는데, 지금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기가 보존되어 있어 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윤치호는 영어가 유창했기 때문에 1889년 이후로는 영어로만 일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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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자가 되지 못한 조선에 대한 환멸



윤치호는 17세 때인 1881년 신사유람단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는데, 이때부터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884년 7월 22일 


(고종에게) 아뢰었다. "법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백성의 이익이 주가 되어야지 옛것만을 지켜서는 안됩니다. 청나라는 사람이 많고 땅이 커서 일본의 11배나 됩니다. 그런데 일본은 30년만에 문명과 부강을 이루었고 청나라보다 백배나 더 낫습니다. ...... 청나라는 옛것만을 지켰으나 일본은 옛것을 고쳐 새것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윤치호는 당시 서구 열강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조선에게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청나라와 청나라 앞에 꼼짝 못하는 정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었다.




1884년 6월 21일


처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청인에 대하여 너무 약하였다. 청인이 죄없는 사람을 때려죽여도 정부에서는 여기에 개의치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유약한 소치가 아니겠는가. 




1884년 9월 22일 


청인을 저와 같이 믿을 수 없는데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마치 부모처럼 섬기고 있으니 원망스럽고 원통하다.




1884년 9월 25일


(고종에게) 아뢰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청인을 노예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괴롭고 시끄럽게 생각하여 마침내 미국 같이 인정이 두터운 나라에서도 청인을 축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가 나약하여 청인 보기를 마치 윗사람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개화파들은 몰락했다. 윤치호는 정변의 성공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아 참여하지 않았으나 개화파들이 역적으로 몰리는 통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상하이로 도피하고, 이후 1888년에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오랜 해외 체류 기간 동안 후진국 조선 출신이라는 민족적, 인종적 열등감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1888년 12월 29일


서양사람들 사이에선 일본 칭찬이 자자하다. 난 우리나라를 자랑할 일이 전혀 없고 흉잡힐 일만 많으니 한심하고 일본이 부러워 견디지 못하겠다.




1891년 10월 23일


선교에서 돌아온 비치 목사가 이야기하였다. 그는 더러운 조선인들에게 넌더리가 났다고 말했다. 조선인에 대한 공격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 하루종일 비참하고 우울했다.




1892년 3월 15일 


카트라이트 부인은 내가 그리핀에서 여자친구를 사귄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 캔들러 부인이 끼어들어 "오래 머물지 않아서 애인이 없었다면 오래 머물렀으면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당신이 거기 오래 있었어도 누가 당신 같은 조선인과 사귀었겠어요?"로 들렸다. ...... 그렇다. 내가 겪는 굴욕, 치욕, 경멸과 절망은 내가 조선인이어서 겪어야 하는 대가이다.


 


1892년 12월 30일


앨런 선교사의 아들 에드가를 만났다. 우리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우리는 나이가 비슷하다. 그러나 그는 태어날 때부터 준수한 용모를 가지고 있고,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운명적으로 개화된,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좋은 대우를 받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보잘것없는 외모, 허약한 마음, 평범한 교육, 경멸받는 민족 출신이다. 그는 존경을 받고 나는 멸시를 받는다.




1896년 5월 9일


뉴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본을 칭찬하고 있다. 아무도 조선 왕후의 운명(을미사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만일 일본이 왕후뿐만 아니라 왕을 포함한 궁중의 모든 사람을 살해했다 해도 세계는 일본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한 일이 아닌 것이 성공처럼 여겨지고, 정의가 아닌 것이 힘처럼 여겨지고 있다.





윤치호는 독립협회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근대화와 계몽운동에 힘썼으나, 정부에 의해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무산된다. 그는 무능한 정부, 대중의 무관심과 지식인들의 부패에 큰 환멸을 느낀다.




1898년 11월 6일


나를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은 일반 대중의 가공할 만한 무관심이다. ...... 이런 국민한테 희망을 가진 우리는 더 바보였다. 그 왕에 그 국민이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노예상태뿐이다.




1899년 2월 10일


비참한 조선인에게는 더 나은 정부를 가질 자격이 없다. 조선에서는 밥 한 그릇과 김치 한 가닥이 가장 높은 이상이다. 그리고 나라 전체가 지옥 같고 아무리 부당한 전제군주의 통치를 받아도 밥과 김치만 있으면 평화롭다. 그 왕에, 그 관료에, 그 백성이다. 잘 어울린다.




1899년 2월 1일


나를 힘들고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독립협회나 만민공동회 회원 열에 아홉이 철저히 부패했다는 사실이다. ...... 우리가 이런 악당들을 위하여 지난 시간 심신의 안녕을 희생했단 말인가? 이런 자들과 함께, 그리고 이런 자들을 위하여 대중집회를 시작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2. 일본에 대한 애증




윤치호는 친일파로 유명하지만, 사실 일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젊은 시절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그가 처음으로 근대적 발전상을 목격한 나라였고, 비서구 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로서 본받아야 할 나라였다.


또한 윤치호는 일본에게서 같은 아시아인으로서의 동류의식을 느꼈다. 특히 미국유학 시절 이방인으로서 겪었던 외로움과 인종차별의 영향으로 인종적, 문화적으로 유사한 일본에게 친밀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1893년 11월 1일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지긋지긋한 냄새가 나는 중국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는 미국, 지긋지긋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조선에서도 살고 싶지 않다. ....... 일본에서 한 가지 좋았던 것은 내가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미국 남부와는 달리 아무도 나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마치 고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돕기보다는 단지 조선을 식민지로 삼길 원할 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질수록 윤치호는 일본에 대해 혐오의 감정 또한 가지게 되었다.




1895년 9월 7일


나는 왜 일본인을 싫어하는가? 조선인의 유일한 친구라고 공언하면서도 모든 이해문제에 일본 공사와 영사는 늘 일본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조선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전에 유럽인이 일본에서 했던 모든 야비한 행동을 조선에서 하고 있다. 




1904년 12월 29일


일본인은 조선의 피를 빨아 말리려고 조선 정부를 이렇게 수치스러운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인은 언젠가 자신들이 저지른 사악한 행위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을 맞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1905년 10월 25일



(러일전쟁 직후) 나는 일본의 깃발들이 보기 싫다. 일본인들의 노래가 싫다. 일본인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듣기 싫다.




러일전쟁 이후 그의 일기가 그의 일본관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그는 황인종으로서는 일본을 좋아했지만, 조선인으로서는 일본을 싫어했다.



일본에게는 조선에 자치권을 줄 생각도,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해줄 생각도, 조선 문화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일본이 추구한 것은 일본인을 위한 조선일 뿐이었다. 윤치호의 환멸은 커져갔다.





1919년 2월 20일


일본 경찰이 저지르는 가장 어리석은 짓 가운데 하나가 조선인들에게 신토를 강요하는 것이다. 한 민족의 국지적이고 씨족적인 종교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후자가 전자에게 정복당한 민족이라면 더 그렇다. 




1919년 10월 5일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의 복지를 자기들의 통치 목적으로 삼을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할 수가 없다.




1921년 5월 16일


일본인들의 계획은 조선의 철저한 경제적 고갈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1930년 5월 16일


양 민족(조선인, 일본인)은 모든 면에서 물 한 양동이에 떠 있는 기름 같다. 협조도, 공동활동도, 서로에 대한 동정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사사건건 조선인들에게 모욕을 주는 일본인들에게 잘못이 있다.





하지만 국제정세를 이끌어가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건 정의가 아닌 힘이라는 사실을 수십년간 뼈저리게 느꼈던 윤치호에게, 일본이 국내외에서 저지르는 만행은 비도덕적이지만 강자가 누리는 (부러운) 권리로 여겨졌다. 




1920년 12월 16일


캐나다 선교회가 일본인들이 간도에서 저지른 만행(간도 참변)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 일본 정부는 마을을 불태운 것 등이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것이었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약소국이 이런 거짓말을 했다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의 배후에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이 버티고 있다면, 세계는 이 거짓말을 기꺼이 믿어줄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힘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거짓말 중에서도 가장 큰 거짓말이다.






따라서 일본이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폭주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점점 일본의 침략전쟁도,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불합리한 정책도 탓하지 않게 되었다. 


정의가 아니라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다른 열강들도 계속 해오던 일을 일본도 하는 것이었으므로.





1934년 11월 10일


미국인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영국인들이 캐나다에서 천연자원과 기회를 독점했던 것처럼, 일본도 만주에서 그럴 권리가 있다. 사실상 일본이 저지른 모든 국제 범죄는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이 이미 선례를 남겼던 것일 뿐이다.




1934년 2월 12일


일본 정부는 자국민들의 이해에 관련된 게 아닌 한 조선인들의 이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걸 드러냈다. 하지만 영국이 아일랜드에서 저지른 일과 독일, 러시아가 폴란드에서 저지른 일에 비춰본다면 일본만이 이 점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이다.




윤치호는 조선이 독자적인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연합국가 개념으로 영국의 일부가 되어 있던 스코틀랜드처럼 되기를 희망했다.




1940년 5월 25일


현 상황 하에서는 조선민족이 일본민족과 하나가 되는 게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양자의 이익을 위해 영국과 하나가 된 것처럼 말이다.




1943년 3월 1일


난 일본의 현명한 지도자들이 일본과 조선의 안녕을 위해 조선을 일본의 스코틀랜드로 만들어주기를 염원한다. 조선을 일본의 아일랜드로 만들어선 안 된다. 





이러한 생각에서 윤치호는 그동안 거절해왔던 일제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 학병 권유, 귀족원 의원 활동 등 적극적인 친일 행위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은 얼마 못 가 패망하였고, 윤치호는 친일파로 망신을 당하다 1945년 12월 광복 후 4개월 만에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다.





출처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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