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배경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에서 차별을 당했기 때문에
어차피 차별당할거라면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가서 일을 많이했어
1920년대부터 제주도와 오사카의 뱃길이 열렸고
그때부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서 일을했어
1920년대에 제주도인구 20만 / 일본으로 일하러간 사람 1만 이었던게
1930년대에 제주도인구 18만 / 일본으로 일하러간 사람 5만명 까지 되었다는 기록도 있어
그 와중에 일본 기업이 뱃값을 말도 안되게 올리자
제주도민들이 돈을 모아서 여객선을 취항시킨 일도 있었어 (동아통항조합)
결국엔 경영이 힘들어 문을 닫게 되었지만..

2. 해방 이후
일제가 패망한 직후 일본 경제는 흔들렸고
일하러 갔던 사람들도 더 이상 일본에 있을 이유가 없어 고향으로 돌아왔어
하지만 1948년 4.3 사건이 터지면서 사태가 급변하게 되지
다들 평화롭게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지낼 수 없게 된거야
빨갱이 아니냐고, 내통자가 아니냐고 마을 사람들 모아서 총살시키고 하는 와중에 어떻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어?
육지로 피난 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기존에 일본,
특히 오사카에서 일하던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본으로 피난 가듯이 밀항을 떠났어
힘든 선택이었지. 가다가 사고로 침몰해서 죽거나 단속에 걸려서 송환되기도 했어
제주 토박이들 중에 건너 건너 친척이 일본에 있거나
일본에서 돌아온 경우는 흔할거야

3. 군사독재시절
군사 독재시절에도 그 영향은 끝나지 않았어
일본에는 조총련이 있었기 때문에 재일교포들은 간첩으로 몰렸거든 (재일교포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친척이 일본에 많은 제주도민들은 그들이
송금해주는 돈이나, 보내주는 물건을 받는것 만으로 의심 받는 경우가 많았어

4. 재일교포와 제주감귤
제주도는 과거부터 귤을 키우긴 했지만 지금처럼 많이 키운건 아니었어
그럼 언제부터 제주도에 감귤이 많아졌을까?
1950년대부터 재일교포들은 고향 사람들을 위해서 감귤 묘목을 보냈고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무려 300만 그루 이상의 묘목을 보내서 지금처럼 귤을 많이 생산하게 되었어
요즘 비싸다고 하지만 귤을 이렇게 먹을수 있던건
고향을 생각하며 일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걸 알아두자!
* 예전에 올렸던글 조금 수정해서 올림
** 내년 4.3에도 올리고 이승만 찬양자 나올때 마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