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영웅 만들기 편든 자들은 3·15, 4·11 기념식에 얼씬도 하지마라."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회장 김창호)가 2일 오전 창원마산 3·15의거 기념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사업회는 오는 11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에서 4·11민주항쟁 기념식을 연다. 이날은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의거 때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1944~1960) 열사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던 날이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은 이승만 영웅 만들기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 고문은 김주열 열사와 옛 마산상고(현 용마고) 입학동기였다.
김 고문은 "이승만 다큐영화가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 이승만 관련 영화 1시간 40분 보고 감동을 해서 눈물을 흘리고, 주변 사람들이나 시민들에게 관람을 독려하는 사람들까지 우리 지역에 생겼다"라며 "그들은 평소 3·15의거라고 하면 뛰어오던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독립운동가는 3명뿐인 줄 알았다. 유관순 누나와 김구 선생은 일찍 돌아가셔서 저희들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다음에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유일하게 독립운동가 중에 살아계신 위대하신 이승만 대통령이 해방하고 대한민국 살렸다고 교육을 받고 컸다"라며 "심지어 우리가 썼던 돈 화폐, 동전에서 이승만이 있었다"라고 했다.
이어 "남산에 25m 짜리 이승만 동상이 있었고 그 사진을 자주 봤다"라며 "참으로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대한민국에서 평생 희생했다고 9년이나 교육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왜 그랬을까. 권세가 있고 자유당 간부 빼고는 집집마다 이승만 독재의 신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라며 "부정부패와 가난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늘 경찰과 정치깡패들, 반공청년단 앞에서 벌벌 기어야 했다. 우리 아버지, 형님들이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 나이에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만 다큐와 관련해 그는 "겨우 1시간 40분 짜리 영화, 편집한 것"이라며 "나쁜 것은 전부 숨겼다.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습도, 온도가 적당하면 곰팡이가 번지듯이, 정치적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갑자기 이승만 영웅화하는 이런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우리 정치적 상황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라고 했다.
김 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승만 평가'도 소개했다. 그는 "박정희가 어떤 사람이냐. 구데타를 일으켰고, '혁명공약 제1호'가 '반공'을 국시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 양반이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했는 줄 아느냐"라며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한테 진정서나 보내고 그것을 독립운동이라고 했다', '이승만 이 영감 독립운동은 엉터리'라고 말하고 글을 썼다. 그뿐 아니라 이승만한테 대통령 소리 절대 안하고 잘해봐야 이승만씨, 부패한 독재자'라고 평가했다"라고 전했다.
이승만 기념관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김 고문은 "기념관을 막아내지 않으면 그 불행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라며 "이승만 잘못한 것 중 하나가 친일청산을 안하고, 못하게 한 것이다. 이승만 영웅화하는 사람들은 친일 후예들이다. 이것을 막아내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라고 강조했다.
사업회는 회견문을 통해 "앞으로 이승만 영웅 만들기 편든 자들에게 3·15의거와 4·11 민주항쟁 기념식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라며 "우리는 이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회장 김창호)가 2일 오전 창원마산 3·15의거 기념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사업회는 오는 11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에서 4·11민주항쟁 기념식을 연다. 이날은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의거 때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1944~1960) 열사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던 날이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은 이승만 영웅 만들기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 고문은 김주열 열사와 옛 마산상고(현 용마고) 입학동기였다.
김 고문은 "이승만 다큐영화가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 이승만 관련 영화 1시간 40분 보고 감동을 해서 눈물을 흘리고, 주변 사람들이나 시민들에게 관람을 독려하는 사람들까지 우리 지역에 생겼다"라며 "그들은 평소 3·15의거라고 하면 뛰어오던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독립운동가는 3명뿐인 줄 알았다. 유관순 누나와 김구 선생은 일찍 돌아가셔서 저희들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다음에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유일하게 독립운동가 중에 살아계신 위대하신 이승만 대통령이 해방하고 대한민국 살렸다고 교육을 받고 컸다"라며 "심지어 우리가 썼던 돈 화폐, 동전에서 이승만이 있었다"라고 했다.
이어 "남산에 25m 짜리 이승만 동상이 있었고 그 사진을 자주 봤다"라며 "참으로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대한민국에서 평생 희생했다고 9년이나 교육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왜 그랬을까. 권세가 있고 자유당 간부 빼고는 집집마다 이승만 독재의 신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라며 "부정부패와 가난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늘 경찰과 정치깡패들, 반공청년단 앞에서 벌벌 기어야 했다. 우리 아버지, 형님들이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 나이에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만 다큐와 관련해 그는 "겨우 1시간 40분 짜리 영화, 편집한 것"이라며 "나쁜 것은 전부 숨겼다.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습도, 온도가 적당하면 곰팡이가 번지듯이, 정치적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갑자기 이승만 영웅화하는 이런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우리 정치적 상황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라고 했다.
김 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승만 평가'도 소개했다. 그는 "박정희가 어떤 사람이냐. 구데타를 일으켰고, '혁명공약 제1호'가 '반공'을 국시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 양반이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했는 줄 아느냐"라며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한테 진정서나 보내고 그것을 독립운동이라고 했다', '이승만 이 영감 독립운동은 엉터리'라고 말하고 글을 썼다. 그뿐 아니라 이승만한테 대통령 소리 절대 안하고 잘해봐야 이승만씨, 부패한 독재자'라고 평가했다"라고 전했다.
이승만 기념관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김 고문은 "기념관을 막아내지 않으면 그 불행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라며 "이승만 잘못한 것 중 하나가 친일청산을 안하고, 못하게 한 것이다. 이승만 영웅화하는 사람들은 친일 후예들이다. 이것을 막아내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라고 강조했다.
사업회는 회견문을 통해 "앞으로 이승만 영웅 만들기 편든 자들에게 3·15의거와 4·11 민주항쟁 기념식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라며 "우리는 이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28547?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