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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여성 스포츠 기자는 ‘얼빠’라고?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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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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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해보려는 마음에 선을 넘었습니다.”

퇴근 시간을 앞둔 27일 늦은 오후, 한 스포츠 구단의 ㄱ사무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ㄱ사무국장은 대뜸 사과부터 했다. “정규리그 분야별 수상 후보에 오른 구단 선수를 ‘잘 봐달라’며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들에게 홍보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 전, ㄱ사무국장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를 뒤늦게 다시 열어 봤다. 선수를 소개하는 장문의 글과 함께 영상 파일 두 개가 와 있었다.


‘OO상 ㄴ선수 영상_여자 기자 버전(240326).mp4’, ‘OO상 ㄴ선수 영상_남자 기자 버전(240326).mp4’

ㄱ사무국장 말처럼 “실수”를 한 것인지, 여성 기자인 내게 ‘여자 기자 버전’. ‘남자 기자 버전’ 꼬리표가 붙은 영상이 모두 전송됐다. 의아한 마음에 두 파일을 차례로 눌러 봤다.

‘여자 기자 버전’ 영상을 열자 대문짝만한 선수 얼굴과 함께 “여러분이 좋아요”,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선수 목소리가 메아리 효과와 함께 흘러나왔다. ‘꽃단장’을 한 선수가 시즌 시작 전 유니폼을 입고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곧바로 이어졌다. ‘고놈 참 잘생겼네’라는 자막과 함께였다.

카메라 앞에서 수줍어하는 선수에게 팬들이 남긴 응원 댓글도 빠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얼굴도 OO왕, 실력도 OO왕’, ‘운동도 잘하고 잘생기고 성격도 좋다’ 등 대부분 선수의 외모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선수가 한 명품 브랜드의 공개 행사에 ‘셀럽’(유명인) 자격으로 참여한 모습 뒤엔, 당시 언론들이 쏟아낸 ‘농구선수야 모델이야’ 등 제목의 기사 갈무리가 덧붙었다.

1분53초 분량의 여자 기자 버전 영상 가운데 이번 시즌 ㄴ선수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설명하는 내용은 약 30초뿐이었다. 영상 마지막에 ㄴ선수와 OO상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구단 선수들의 기록을 비교하는 표가 첨부돼 있긴 했지만, 이 선수가 어째서 OO상을 받아야 하는지 ‘여자 기자 버전’ 영상만 봐선 도통 알 수 없었다.

답은 ‘남자 기자 버전 영상’에 있었다. 우선 분량부터 4분3초로 두 배가 넘었다. 구단이 ㄴ선수를 영입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는 남자 기자 버전 영상은 ㄴ선수가 이번 시즌 몇 경기에 평균 몇 분을 출전해 얼마나 많은 득점을 올렸는지, 이런 성적이 경쟁자들보다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다른 시즌 비슷한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과 비교하면 어떤 수준인지, 팀 안에서 입지는 어떤지 등을 여러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과 함께 세세히 소개했다. ㄴ선수의 포지션이 무엇인지조차 소개하지 않은 여자 기자 버전 영상과는 천지 차이였다.

ㄱ사무국장은 처음 전화를 걸어 사과한 뒤로도 여러 차례 사과와 해명을 해 왔다. “파일명을 ‘남자 기자용’, ‘여자 기자용’이 아니라 ‘1’, ‘2’로 해서 보냈어야 하는데 착오가 있었다”로 시작한 해명은 “잘해 보려는 생각에 여성 기자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영상을 보낸 여성 기자분들께 모두 전화해 사과드렸다”로 이어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스포츠 분야를 취재하는 여성 기자들이 선수의 외모만 보고 평가할 거라는 생각으로 잘못 만든 홍보 영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엉겁결에 ‘얼빠’ 취급을 당한 여성 기자들일까? 아니면 경기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늘어 가고 있는 여성 기자들로부터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을 기회를 구단 쪽 잘못으로 놓쳐버린 ㄴ선수일까?

차별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잘 몰라서 그랬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참 쉽게도 한다. 구태여 남녀 기자에게 보낼 홍보 영상까지 따로 만드는 부지런까지 떨어 가며 차별을 저질러 놓고도 말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82781?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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