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딴지 벙커 주방요원 임마야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 주방요원 후보생이었습니다.
끝내 정직원으로 전환되지 못 하고,
수습만 끝내고 퇴사하게 되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주방요원 후보생이, 맞을 겁니다.
지난 퇴사 확정글을 쓰면서,
퇴사하면 다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돈 문제가 걸려 있어서,
받을 돈은 받고 자유롭게 인사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잘 안 되었네요.
퇴사 이야기를 다루면 그간 있었던 일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게 될 텐데,
그러면 회사와 더 껄끄러워지고
돈 지급으로 이야기할 때도 힘들어 진다고 생각해서
인사를 미루고 미뤘던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5일에 퇴사를 하고,
그 날 잔여 임금이 지급받기로 했었는데
아직도 못 받았습니다.
지지난 주에 연락이 왔었을 때,
세금 문제가 있으니 다음 주까지 처리해 준다고 했었는데,
지난 주도 지나고 이번 주가 되었어도
입금도, 연락도 없네요.
끝까지 이런 식으로 사람 보내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고,
회사의 좋은 사람들(딴지에 좋은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과
짧은 인연이었지만 얼굴 붉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노동청 방문을 고려해 봐야 할 시점 아닌가 합니다.
사내에서나 손님들께 주방장님이라고 칭해지기도 했지만,
주방에 사람이 저 밖에 없으니 얼핏 들으면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내막을 아는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고 답답했습니다.
주방장의 대우를 약속받고 입사했던 것도 아니고,
그 비슷한 처우를 받았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맡은 업무와 실행한 일은,
분명 일개 조리사의 직분을 뛰어넘는
조리사+주방실장+보조+잡일을 모두 수행했지요.
처음 계약 조건을 들었을 때,
주방 일치고는 급여가 낮아도 너무 낮고,
주방 일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라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스타트업이라 잘 모르니 해가시면서 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서포트 해드리겠다,
라는 말을 믿었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어야 하는 건데,
수습은 원래 안 쓰나?
정직원되면 나중에 쓰나 보다, 하고
넘어갔던 게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습니다.
처음 제시된 급여 조건은,
3달 후 정직원 전환시 월 150만원이었습니다.
주 5일 일 8시간 근무였지만,
주방 일은 일반 사무일과 다르고
주방 인력이 따로 없는 상황이라
택도 없는 조건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수습 3개월 중에서 2개월차 3개월차는 150에서 80프로 임금만 지급되고,
1개월차는 파트타이머 시급으로 계산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실 근무 시간을 재면 월 150은,
바 파트요원 급여 시간당 6500원+주휴수당+야간수당은 커녕,
최저임금도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주방 일을 몰라서 그렇지 알게 되면 달라질 것이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혹여 몰라서,
3개월 수습 기간은 임금에 대한 문제는 접고 일을 하겠지만,
3개월 후가 되면 이 급여로는 성실히 일할 자신이 없다고 말을 하고,
최저 월 180은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두었습니다.
제가 봤을 때,
하게 될 일은 분명 최소 하루 10시간 이상일 것이고,
청소를 생각하면 주5일이 아니라 주6일 될 게 뻔해 보였으니까요.
그리고 퇴사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근무 시간 기준을 어디에 잡아야 하는가 문제가 있는데,
매장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48시간,(식사 시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식자재 반입 시간을 포함하면 54시간,(식자재 반입을 위한 교통 경비는 택시 이용을 하지 않는 한, 사비였습니다.)
자택 근무(세탁 및 소독, 영수증 엑셀 작업)을 포함하면 60시간,
그 외 인터넷을 통한 용품 구입 및 거래처 검색 탐방,
메뉴 개발 시간까지 계산하면 무한대,
로 치솟습니다.
이왕 주방 책임지고 맡는 거,
관련법까지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퇴사가 확정되기 전까지 3개월 동안,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물론 내가 이렇게 일해 왔으니, 거기까지 노동으로 인정해 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 매장 출퇴근 시간만을 기준으로 잡더라도,
벙커 바의 파트타이머 시급 6500+주휴수당+야간수당은 계산할 것도 없이,
2016년 최저임금 시급 6030으로 계산해도 147만이고,
5인 이상 사업장 주휴수당만 넣더라도 157만원이 됩니다.
제가 제시했던 180만원은,
2016년 최저임금 시급 6030으로 계산했을 때 주 60시간이면 178만,
5인 이상 사업장 주휴수당을 넣으면 204만이 되는 걸 알면서도,
최하로 잡았던 겁니다.
아무리 딴지라도 최저임금은 받고 싶어서.
달리 말하면,
최저임금이라도 받는다면 딴지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서.
그걸 다 알면서 왜 일 한다고 그랬냐,
일한다고 계약했으면서 왜 지금 딴 소리하냐,
라고 그러면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1) 전 입사하기 전에 오래 놀았고,
2) 딴지에서 정말 일하고 싶었고,
3) 딴지에서 주방은 스타트업 사업이니 보람 있을 거라 생각했고,
4) 주방 전권을 준다고 했으니, 주방을 관리할 수 있는 경험은 급여 만큼 가치가 있을 거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주방일은 하지 않을 거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딴지라면, 그리고 딴지에 모이는 사람들이라면,
양심껏 일하게 해줄 테고,
정말 양심껏 정직하게 정성을 담은 음식을 드실 자격이 충분하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게 비록, 내 임금을 깎고 내 품을 더 팔아야 하는 일이 될지라도.
적어도 단지 돈 때문에 돈을 바라보고 딴지에 입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1998년 딴지 창립 초기부터 딴지를 보아왔던 사람이면,
딴지가 돈 없는 회사라는 건 아마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돈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어떻게 얼마나 일을 했는데,
적어도 사람을 이렇게 버릴 수는 없다고 하는,
억울함 때문입니다.
퇴사를 하면서,
사내 사람이든 외부 사람이든 내 억울함을 상담할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글 써봐야 너만 다친다,
딴지 다 글 쓰는 사람인데 글로 싸워 이길 만큼 스스로 글재주 좋다고 생각하냐,
딴지가 업무 방해로 고소하면 감당할 수 있느냐,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노동청 가라....
등등...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어느 선까지 밝히고 어느 정도까지 입을 다물지,
그 선을 책정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쥐뿔도 가진 게 없는 개인이라,
고소미는 두렵고,
나머지 돈은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주방을 맡기로 하고 입사해서 주방을 보았을 때,
솔직한 내 마음은 처참했습니다.
아마 대청소를 하기 전에 벙커 주방을 봤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반 업소로 치더라도 많이 떨어지는 수준의 상태였는데,
10년 이상된 집기들과 최소 5년은 아예 대청소하지 않은 상태,
그나마 그게 딴지가 이사와서 대청소를 했던 상태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딴지가 이런 주방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에 매우 놀랐고,
그 놀람보다 더 슬펐습니다.
이게 현실인가, 하고.
벙커의 청소 및 위생관리 실태는,
그 수준을 논하기에 앞서
기준점이 아예 없었다, 가 제 솔직한 판단입니다.
청소업도 했었던 지라 나름 청소 기술자로,
그나마 어디 내놓아도 꿀리지는 않는 주방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위생관리 또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관리(한국 업소 기준 상급 이상)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는 그나마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위생관리는 눈에 안 보입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딴지를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드시는 음식이 나갈 주방이니까,
내 책임으로 내 관리로 운영하는 주방이니까,
최선을 다했습니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언제나 이거 내가 먹는다, 내 애인이 먹는다, 울 엄마가 드신다,
라는 세 가지만을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했습니다.
음식의 맛을 떠나,
청소나 위생관리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는,
양심에 거리낌 없이,
수고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누구에게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받은 첫 월급이,
129만원이었습니다.
첫 달은 시급으로 계산하기로 했었는데,
최저 임금으로 계산해도 이건 너무 말이 안 돼서,
급여명세서를 요청했습니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다른 분과 급여가 바뀌어서 지급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추가로 20만원 가까이를 더 받고,
첫 월급은 149만원이 되었습니다.
급여명세서는 요청했지만 받지 못 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 금액이 4대 보험에서 고용보험만 공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아마 150만이었을 겁니다.
내가 계산한 액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계속 일하고 싶었기에 어찌하든 좋은 방향으로
좋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딴지에 돈이 없으니 시급 계산을 다 해줄 수는 없고,
3개월 정직원 전환되면 받기로 요구했던 월급이 180만이니까,
거기서 수습 20프로를 제하고,
150으로 맞춘 게 아닐까 하고.
어차피 정직원 되면 요구했던 돈이 최저 임금선이었고,
수습 기간은 서비스 기간이라고 생각했으니
돈에 민감하면 반응하면 정직원 전환에 불리할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바보처럼.
두번째 월급도 동일한 액수 149만이었고,
급여명세서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퇴사가 확정되고 받은 월급이
136만.
월급일자와 퇴사일자가 겹쳐서,
마지막 월급+추가 근무일 월급을 합쳐서 받기로 되어있었는데,
오히려 줄었지요.
확인한 바,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은 다음 주까지 지급받기로 했고,
월급 액수가 줄어든 이유는,
4대 보험 적용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내 보험 적용 안 받다가,
퇴사할 때 되어서 보험 적용으로 실수령액이 깎인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법이 그렇다고 하니 법을 지키겠다고 하니 다른 할 말은 없었습니다.
여태까지는 왜 안 지켰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가는 마당에 그런 말은 하지 않고 묻었두었지요.
돈으로 치환되는 밑밥 이야기는 이쯤하고,
실제 퇴사 과정은 이랬습니다.
3개월차가 되었고,
정직원 전환 논의가 있었습니다.
월 190에, 4대 보험 빼면 실수령액은 170 초반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말한 180은 실수령액 이야기였는데,
협의 과정에서 내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 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남았으니까요.
우선,
소속이 바뀔 거다, 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 관리 체계에서 소속이 바뀌어 관리자가 바뀐다는 의미였지요.
전 관리자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부분이 여깁니다.
전 관리자는 날 채용해 준,
딴지에서 일할 기회를 준 은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관리자로써의 능력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었고,
신입에 대한 관리 측면을 봐도
공사에 대한 구분을 확실히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논지의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 관리자가 다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수위를 더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뀐 관리자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 했고,
전 관리자는 그런 후임 관리자와 제 사이가 좋지 않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매우 나쁘다,
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관리를 넘긴다는 것이,
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딜가나 사회 생활을 한다면 모두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더라도,
딱 한 사람하고는 사이가 좋아야 하는데,
당연히 그건 직계 관리자지요.
관리자와 사이가 안 좋으면,
아무리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도
그 근무성과에 대한 합당한 인정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타입이라면 모를까,
겪어본 바, 그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하지만 그쪽에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하고,
일을 안 해보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
불만은 가득했지만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관리자의 문제만 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스템적으로 그렇게 개편하는 것이,
업무 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합리적이고 타당했으니까요.
문제는 그 시스템에서 내가 있는 모습을
정말로 상상했는가 하는 점인데,
이 점이 아직도 의문입니다.
또 하나,
이 때 그 동안 맡겨왔던 주방 권한이 회수되었습니다.
이 점은,
유일하게 느끼고 있던 현실적인 메리트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지요.
여기까지 들은 결과,
제 쪽에서 먼저 정직원 전환 전에,
한 달간 수습 연장을 더 하자는 제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괜히 정직원이 되었다가 금방 못 하고 그만둔다고 하면,
혹시 관리자에게 피해가 가고,
회사에 폐를 끼치게 될까봐.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바보처럼 잘 살고 있는 남 걱정 잘 돌아가는 회사 걱정은
대체 왜 했던 것인지...
이러니까 만만한 호구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하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해서 소속은 바뀌었고,
그 뒤로 새 관리자와 면담했을 때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먼저 확실히 해둘 게 있는데,
딴지가 평등한 조직이지만 상하 관계는 확실히 해주시길 바란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더라도 말하는 방법과 태도에 따라,
의미 전달은 다르게 됩니다.
전 관리자였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 겁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관리자의 할 일은 업무 분담과 의견을 조율하고,
하급자의 말을 최대한 경청해줌으로 그 불만을 다스리며,
하급자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게 그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필요한 능력을 갖췄는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의 요구에 순응하는가 아닌가,
자신의 라인에 설 사람인가 아닌가를 먼저 판단하는 것은,
적어도 관리자의 덕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난 딴지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한 달의 시간은 있었으니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양식이다,
이자카야 메뉴는 안 된다,
튀김은 더 이상 안 된다,
인력이 더 필요한지는 자신이 판단한다,
정도였는데...
밝혀 두지만,
전 한번도 양식 경력자라고 속인 적 없고,
면접 볼 때도 분명히 취사병 출신이라 대충 한식은 되지만,
특기는 어디까지나 튀김과 철판요리라고 말한 상태였습니다.
이자카야 출신이라는 점도 밝혔었고.
관리자가 모를 리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전 관리자와 함께 후임 관리자가 함께 면접을 봤었으니까요.
그런데...
콕 찝어서 원하는 건 양식,
이자카야 메뉴는 스타일과 맞지 않아서 안 됨,
튀김은 튀김 메뉴가 많아서 그렇다고 칠 수는 있지만,
왜 튀김 메뉴가 메인이 되었는지를 떠올려 봤어야 한다고 봅니다.
설비와 인력의 문제였는데.
처음부터 경력을 인정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은 알았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자카야, 튀김 철판요리 특화 경력자를 데려다 놓고,
뜬금없이 양식해라, 라고 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이거 나가라는 거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인력 충원에 관해서는 직접 보고 판단한다고 했고,
새 관리자가 주방 보조를 보는 식으로 주방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더 일찍 나와서 준비해 줄 수는 없느냐, 였고,
내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버티고 있는 것도 근무 시간 및 노동 강도, 그에 따른 보상을,
보자면 이미 한계치였으니
더 할 말이 없었지요.
처음에 입사할 때는 분명,
한달간은 혼자 해보고 안 되면 인력 충원 해주겠다, 였습니다.
그것이 주방 매출 상황을 보건대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로 바뀐 상태였지요.
그런 상황에서 더 해달라, 라는 말을 들으면,
난 어떻게 반응했어야 옳은 걸까요.
주방 매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주방 돌린 거 고작 3달이고,
그 중에서 그나마 돌아가기 시작한 게 2달,
그 상황에서 마이너스를 설비를 제외한 식자재비 대비로
제 임금은 충당될 정도로 만들었으면,
앞으로는 더 이익이 기대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주방의 수익이 안 난다고 해도,
주방의 메뉴가 있으므로 해서 늘어난 맥주 판매는,
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지요.
난 퇴사하는 날까지,
우리 가게에서 팔던 맥주 다 못 마셔 봤고,(직원 디씨 포함해도 제 시급보다 비싸니까.)
맥주 원가가 얼마인지도 몰랐습니다.
알려달라고 요청해도 아무도 안 알려줬으니까요.
내가 얼마나 보탬이 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주방의 마진률 자체는 2배도 안 되는 수준으로,
매우 낮게 책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관리자가 바뀌고 며칠이 지나고,
퇴사가 확정된 날이 왔습니다.
그 날의 이야기에 앞서,
그 전날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관리자는 레시피를 <당연히> 달라고 말했고,
나는 생각해 본다, 고 했습니다.
정직원으로 전환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레시피야,
3개월 동안 주방 보조로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면,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고 정직원으로 채용해 주고
같이 간다는 확신을 심어줬다면,
알려 줘도 벌써 알려줬을 겁니다.
내 업무 부담을 줄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실제로 드문드문 주방 일손 도우러 오시는 분들에게는,
부분적으로나마 청소 방법이건 음식 스킬이건 그 공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 다 설명해 줬습니다.
완전한 배합 레시피만 안 줬을 뿐,
그 동안 각자 들었던 거 조합해보고 시험착오 거듭해 보면,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레시피만 안 줬을 뿐, 핵심 포인트는 이미 거의 다 알려 줬으니까요.
그깟 레시피, 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당연히 주셔야지요"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충격이었습니다.
레시피를 공유해 주면 좋겠다도 아니고,
쌍따옴표로 그대로 옮길 수 있을 임펙트라니.
그 날 퇴근했을 때 메일이 와 있었고,
메일 내용은
1. 재고조사 하자.
2. 레시피 알려 달라.
3. 레시피 그람 계량 해달라, 였습니다.
재고조사는 다음 날 같이 하자고 했으니 그러마 해서 넘겼고,
레시피와 레시피 그람 계량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봐야겠다 싶어서 넘겼지요.
그리고 다음 퇴사 확정의 날이 되었습니다.
관리자는 출근하셔서 여태 뭐 하셨냐, 고 그랬고,
전 밥 먹고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4시 반 출근해서 30분 정도 밥을 먹고 왔을 뿐인데,
출근해서 여태 뭐 했냐, 라니요.
고백하건대,
3개월 동안 일하면서 매장에 들어간 이후로,
나와서 밥을 먹었던 날,
손가락에 꼽습니다.
다섯 번,
많이 잡아도 10번은 절대 안 되지요.
출근하기 전에 식자재 반입하면서 밥을 먹고 갔던 건데,
식자재 반입을 서비스 열정페이라고 치면,
전 아예 근무 시간 내내 식사 시간도 없이 풀근무를 했던 셈이고,
식자재 반입이 서비스 열정페이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최저임금에 미달해도 한참 미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식자재 반입의 경우,
원래 구두 계약할 때는 근무 시간에 포함해 주겠다, 였지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반영이 안 되는구나, 라는 걸 알았지요.
그래도 메뉴를 생각해 봤을 때,
싱싱한 식재료 상급 품질의 식재료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열정 페이로 감당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차피 3개월 지나면 최저 시급은 될 테니까, 하고.
지금 쪼잔하게 억울한 건,
그 식자재 반입의 교통비입니다.
택시는 타도 되지만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일 경우는 타지 말라,
라는 지시를 곧이 곧대로 지켰기 때문에,
그리고 회사 돈이 없으니 경비는 아껴야지, 라는 바보같은 생각 때문에,
청구할 수 없는 교통비를 내고,
10킬로 15킬로를 등에 메고 어깨에 걸고 다녔습니다.
혹시라도 생연어 더운 날씨에 상할까,
앞뒤로 냉동감자로 연어팩을 싸고,
연어 모양 퍼질까 각 잡고 균형 잡아서.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 병신처럼.
아무리 얼마 안 되는 교통비 몇 만원이라고 해도,
월급 대비로 치면 적지 않은 부담이었는데.
당연하게도 다른 거래처 탐방도,
시간 외 열정페이였고 모두 사비였습니다.
오는 말이 절대 고운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밥에 대해선 민감했기에,
난 순간 굳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 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태 해왔던 근무는 전혀 평가받지 못 하고 있었구나, 하고.
선의로 해왔던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구나, 하고.
그 다음으로 메일 답장 왜 안 했느냐고 물어왔고,
전 오늘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레시피는 못 드리고,
제가 아는 한 그람 단위로 메뉴 개량은 못 한다, 라고 대답했지요.
만약 처음 계약 조건에 레시피 전수는 그렇다치고,
정확한 그람 개량이 있었다면,
전 처음부터 일을 시작하지 않고 못한다고 했을 겁니다.
그걸 왜 정직원 전환되는 타이밍에,
관리자가 바뀐 후에 들고 나와서,
그거 때문에 퇴사하게 되는 건지,
이 부분은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주 재료를 제외하고도,
1) 베이스를 만들고,
2) 베이스를 만들고,
주 재료에 1) 혹은 2)의 베이스를 입혀서,
제 3의 재료를 첨가하여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람 정량은 불가능합니다.
여기가 무슨 맥도날드도 아니고,
그게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주 재료 또한,
최대한 비슷하게 자르거나 등분을 낼 수는 있어도,
모든 그람을 똑같이 균일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연어를 예로 들면,
연어는 부위마다 두께와 넓이가 다르고,
당연히 부피에 대한 실제 중량은 부위 별로 차이가 납니다.
그 맛도 물론이고.
닭도 마찬가지로,
공급받는 닭의 사이즈가 일정한 것도 아니고,
킬로수를 맞춰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계도 아니고 손으로 일일히 자르는 방식이기 때문에,
도저히 그람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체인이 아닌 일반 업소에서 그런 식으로,
그람 정량을 하는 곳은 없습니다.
관리자는 내가 세상의 모든 업소를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고,
전 그것엔 동의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서른 가까운 곳에선 없었다,
이렇게는 못 한다, 라는 대답에,
관리자는 원래 수습 계약 기간을 되묻고 내가 대답하니,
그럼 그 때까지만 근무하는 것으로 하자,
라고 했습니다.
전 관리자와 이야기하기로,
계약을 종료하고 퇴사하더라도 2주간은 인수인계하기로 했다, 고 말했지만,
현 관리자는 상관없다, 이번 달까지 하고 나가라, 였습니다.
직급 체계상 전 관리자가 위였음에도,
그 말까지 무시하고 이번 주까지 해달라, 고 딱 잘라 말했지요.
이 때 저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정말 어지간히 나를 싫어했구나, 하고.
기회만 있으면 나를 내보려고 했구나, 하고.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해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싫어도 그걸 잘 감추는 타입이 있고 그렇지 않은 타입이 있는데,
후자라면 더더욱 아무리 눈치 없는 바보라도,
그건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처음 출근했던 날부터 느꼈었고,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는 전해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현 관리자가 주방장님 싫어하는 거 아시냐는 말에,
내가 바보도 아니고 모를 리가 있냐고 웃으면서 대답했지요.
그 말에 왜 싫어하시는지는 아시냐고 묻는 말에,
모른다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줬습니다.
전 관리자와 현 관리자가 함께 제 면접을 봤었는데,
현 관리자는 반대했음에도 전 관리자가 마음대로 뽑았다고.
자신은 마음에 안 들어서 싫다고.
그 말을 듣고,
설마 설마 했지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 때는 직계 상사도 아니었고,
내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서서히 결과를 내고 있었으니,
그냥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 하는 타입인가 하고 넘겼지만,
그랬던 사람이 새 관리자가 되었던 겁니다.
주방과는 업무 협력이 꼭 필요한 파트였는데,
다른 모든 이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았고,
고마움을 느꼈지만,
관리자에겐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필요해서 모시고 부탁드리고 있으면,
다시 할 일 있다고 데려가는 식이었으니,
내 입장에선 도움 요청하지 말라는 거구나,
라고 해석할 수밖에는 없었지요.
아무리 주방과 홀의 관계가 화목하기는 쉽지 않다고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물 취급 당하면,
그게 주방이라면 문제는 많이 복잡해 집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제 퇴사 이유는 단 한 사람과 맞지 않았던 겁니다.
그게 직계 관리자였다라는 게 문제였던 거고.
그러니까 입장이 달랐던 겁니다.
제 퇴사를 두고,
관리자는 내가 그만둔다고 보고를 올렸던 거고,
전 제가 부당하게 잘린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사단이 벌어지고,
전 관리자가 내려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 관리자는 왜 그만두시냐고 물었고,
전 그만두라고 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둘의 관계는 워낙 친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다른 덧붙일 말이나 지난 구차한 일들은 다 생략하고,
그날 벌어졌던 세 가지 팩트만을 말했습니다.
밥과, 레시피와, 그람 정량에 대해서만.
전 관리자의 입장은 현 관리자에게 사과를 한다면,
이번 건은 자신이 넘겨줄 수 있다, 였고,
전 사과는 진심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잘못한 게 없으므로 사과할 의사는 없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최후로 건넨 말은,
메뉴에 대한 그람 계량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과거 관리 체재로의 롤벡은 안 되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 시점까지,
전 전 관리자에 대한 믿음과 미안함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내가 다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능력을 쓰겠지 하는 믿음과,
나를 뽑고 일할 기회를 줬는데 안 좋게 나가게 되었다는 미안함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전 관리자의 입장은 십분 이해합니다.
더 친밀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한 사람의 보고를 믿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야기는 전 관리자가 현 관리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야기는 잘 풀리지 않은 채로 퇴사가 확정되었습니다.
현 관리자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인수인계를 위해서 원래대로 2주간 더 일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전 관리자에 대한 은의가 있었기에,
많이 찜찜한 상황이었지만 수락했습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고,
밤새 주간 청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원래 토요일에 했던 주간 청소인데,
도무지 토요일에 출근하기 싫어서
바꿨던 것이지요.
그날 밤새 혼자 청소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재고조사 중요하다고 하자고 했으면서,
사람 잘라놓고 자기 기분 나쁘다고
하자던 재고조사도 안 하고 퇴근해 버린 걸 떠올리면,
혼자 대청소하면서 얼마나 분하던지.
어차피 이제 내 직장도 아니고,
잘린 직장인데,
뭐 좋다고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다 퇴근한 주말 심야에
혼자 남아 청소하고 있는 건지.
대충 하고 가자는 나와,
안 돼, 그래도 퇴사하는 날까지 내 책임이야,
라고 하는 내가 싸우고 있었고,
결론은 닥쳐 씨발놈아
퇴사할 때까지 아무 사정 모르고 음식 드실 손님이 무슨 죄야
끝까지 정성을 다해,
그건 입사할 때 다짐했던 거잖아,
로 결론이 났지요.
그날,
마지막으로 혼자 청소한다는 마음으로
빡세게 청소했습니다.
애정이 묻은 튀김기는 물론,
평소 사용하지 않는 집기들까지.
제 기억이 맞다면,
토요일 아침 10시가 넘어서 퇴근했지요.
물론, 고민하면서 2-3시간 편의점 4캔에 만원짜리 맥주를,
2.5 세트 정도 쳐마시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리고 다음 주가 되어서,
인수인계 받는다고 바 요원이 한명 들어왔고,
주방 담당하시냐는 물음에,
따로 사람 구하고 있는 걸로 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의 주간 청소는,
인수인계를 받던 분이 불의를 부상을 당하여
다시 혼자하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혼자 하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인수인계 받는 사람이 부상이라면,
다른 사람이 받으면 되는 문제인 건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묵묵히 혼자 청소했습니다.
원래 3개월 수습 계약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으니,
계약 기간,
정직원으로 전환이 되든 그렇지 않든,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토요일에 퇴근하고나서,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지요.
퇴사 확정이라고.
계약은 종결되었으니,
그간 열정페이로 부담했던 부분은 모두 돌리니,
서비스의 품질 저하는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돈을 내고 드실 손님을,
속일 수는 없었으니까요.
마침내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황당했지요.
그간 인수인계를 받았던 분이,
오프닝조로 변경되었습니다.
구인 공고는 없었지만,
사람은 구하고 있었고 채용이 된 걸로 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지요.
이탈리안 전공자라고.
다시 처음처럼 모든 일을 거의 혼자 처리하게 되었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이런 식으로 부릴 수도 있구나,
아 끝까지 나는 시간 떼우기용 소모품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수인계 다 되지 않았는데,
대청소와 기기청소 위생관리
아무도 할 줄 아는 사람 없을 텐데.
부디 후임자가 요리만큼,
주방관리 기술도 가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토록 일궈놓은 벙커 주방의 청소와 위생관리는
곧 없어질 겁니다.
특별한 것, 특이한 것도 좋지만,
기본부터 착실히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에서는 특별한 서비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뽀대가 안 나고, 티가 안 나는 일은,
누구라도 하기 싫겠지만.
퇴사 무렵부터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처음부터 원래 뽑고자 하는 내정자가 있었는데,
주방 갈아엎는 것처럼 청소하고 집기 구비하고
시스템 정비하는 것은 품이 많이 들어가니,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마침 일하고 싶어 환장한 인간 하나가 있으니
일단 써서 궂은 일은 다 처리하게 만들어 놓자,
가 아니었을까요.
3개월 싼 값에 부려 먹고,
적당한 핑계 찾아 제 발로 나가게 하자,
라는 계획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걸면,
내보기는 쉬울 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괜찮은 메뉴 있으면 레시피도 뽑아내고,
못 뽑아내면 그거 핑계로 자르면 되고.
레시피를 전수한다고 했으면 안 잘렸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랬다면 레시피만 뺏기고 잘렸을 거라 거의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사건이 있고나서,
전 관리자도 레시피를 달라는 말을 했었으니까요.
조리하는 사람에게 독자 레시피는
책을 쓰는 사람의 저작권,
또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그것과도
같습니다.
그게 당연히 줘야 하는 거라면,
딴지가 중소기업 기술만 빼먹고 버리는 대기업과 뭐가 다릅니까.
회사 돈으로 재료를 사서 같이 만들었으니
당연히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논리에
할 말을 잊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너무 이른 시점에 나온 그렇다, 는 대답.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만든 게 아니라 내 기술 내 레시피로 혼자 여러 버전을 만들어서
그걸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같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충격이었습니다.
만들어진 음식을 맛보고,
그에 대한 품평을 했다는 것만으로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면,
만들어지는 음악을 듣고 좋네 아닌 것 같네를 말한 사람도 공동 작곡가가 되고,
이 스토리는 어때? 라고 한 사람도 공동 집필자가 되고,
원고 교열을 본 사람도 공동 저작권자가 될 겁니다.
그러한가요?
정황을 보자면,
관리자는 처음부터 나를 짜를 의지가 충만했던 것은 분명한데,
내가 끝까지 궁금하고 견디기 어려웠던 점은,
전 관리자도 과연 그랬는가, 하는 점입니다.
난 퇴사가 확정되는 날까지도
바보처럼 전 관리자는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입장을 존중하며 믿었습니다.
그런데 레시피 관련 이야기를 다시 들으며,
그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지요.
그간 전 관리자의 인내와 노력의 흔적을,
나는 충분히 느꼈고 감사해 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까 하는 마음의 동요.
그리고 배신감.
퇴사하는 날,
우연히 퇴근하는 전 관리자를 마주쳤을 때,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3개월만 쓸 작정이었냐고.
대답은 아닙니다, 였지만,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 퇴사하고도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도 상당히 많은 부분의 수정과 삭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소 고발 불사의 입장이었다가,
억울한 부분, 당했던 구체적 사례,
손님이 알면 곤란한 벙커 운영상의 치명점,
다 생략했습니다.
대신 퇴사를 앞두고,
너부리 편집장님을 만나 내가 느꼈던 부분은
가감없이 말하고 나왔습니다.
억울함을 토로하며,
이미 관리자 눈 밖에 난 거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달라고 그랬었는데,
나가는 사람
술 한잔 먹여서 보내는 인정이 없네요.
오랜 세월,
너부리님 글 좋아했고
만나서 술 한잔 나눠보고 싶어했었는데.
진하게 아쉽습니다.
대충 퇴사 후기는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32페이지네요.
다 생략한 부분 합치면 47페이였는데,
줄인다고 줄여도 괘 기네요.
마찬가지로 퇴사하는 날,
관리자는 말했지요.
오늘은 대청소 안 하시느냐고.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같이 할 사람이 남아 있었다면,
마지막까지 밤을 새서 대청소를 하며
청소 부분에서 인수인계를 해줄 생각이 있었지만,
다 가고 없는데,
오늘은 대청소 안 하시느냐니.
마지막까지. 하하
전 관리자는 내가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쓰지 말라고 했었지요.
회사에 안 좋은 이야기 쓰면 안 된다고.
그래서 메뉴 소개 겸 주방 인사도 못 나갔던 겁니다.
나중에 워크샵을 가서,
너부리님께 자유게시판 활동 안 하시냐는 물음에,
금지라고 대답했더니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해서,
그 뒤로 자유게시판에서 주방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전 관리자는 계속 글 쓰는 걸 싫어했었지요.
내 입장에서는 먹고 살려면 조금이라도 홍보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결과였는데.
지적 받으면 지적 받는대로,
숨기는 것 없이 정직하게 소통하고,
묵묵히 기본을 지키면서 정성을 담으면
늦을지라도 반드시 알게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난 바보인가 봅니다.
일단 퇴사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과연 나는,
스스로 그만둔 걸까요,
아니면 잘린 걸까요?
회사 측에서는 제가 임의로 그만뒀다고 합니다만,
제 입장은 조금 다른데,
내가 삐뚤어진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머지는 퇴사 후기와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한 때나마 실권은 없었지만 그래도 명목상은 책임자였던 고로,
마지막 양심을 담아 죄를 청하며 고백합니다.
벙커에서 일하면서,
음식이 두 번 잘못 나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처음으로 메뉴를 개시했던 날,
처음 주문 받았던 연어 튀김 대자 2개였습니다.
강헌 선생님 명리학 강의 뒤풀이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설비가 더 열악했고,
그 과정에서 한번에 물량이 몰리면서 대처하지 못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마요네즈.
그 놈의 마요네즈를 계속 달라고 채근하는 통에,
연어 튀김의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원래라면 내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는데,
첫날이고 채근 당하는 통에 그대로 내게 되었습니다.
테스트 과정에서 오케이를 받았던 품질과는,
같은 메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거 압니다.
많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청소고 위생이고 다 음식을 제대로 내자고 했던 노력이었는데,
막상 장사 개시 첫 날에 트러블이 발생하니
너무 분했습니다.
이런 트러블이 발생할 가능성도 미리 숙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주문량에 따른 예행 연습을 하루는 해야 된다고 했었던 건데.
이 날이 전 관리자를 찾아가,
너무 분하다고 죄송하다고 이대로는 못 한다고 했던 날이고,
그 뒤부터 피크 타임에 벙커 요원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업무도 많은 가운데서,
도와줬던 벙커 요원들 한분 한분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첫날,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메뉴를 드시게 됐던 분들,
깊이 깊이 고개 숙여 빕니다.
죄송합니다.
또 한번 음식이 잘못 나간 것은 파파이스 카라아게였습니다.
역시 처음 선을 보이는 개시 날의 처음 주문이 들어온 메뉴였습니다.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판매 개시 30분도 전에 미리 주문을 받아 놓았던 상태였고,
대량 생산의 첫 개시물이라,
그 감도 체크를 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테스트 버전으로 제가 먹을려고 놓아둔 것을,
실수로 다른 분이 가지고 나가고 말았습니다.
테스트 감도 체크용이라,
원래 예상 버전에서 30초 빨리, 정각, 30초 오버, 1분 오버,
1분 30초 오버가 된 버전이었습니다.
30초 빨랐던 것은 제대로 안 익었을 거고,
정각에서 30초 오버는 딱 괜찮았을 테지만,
1분 오버와 1분30초 오버는
육즙과 함께 제대로 된 바삭함을 느끼기엔
심하게 굳은 물건이었습니다.
후에 테스트 완료한 버전은 정각 카운트를 10초 늘린 버전이었으니,
첫 세트를 드시게 된 분께는 분명 잘못 나간 게 맞습니다.
이 때가 제가 입사한 이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화를 토로했었습니다.
리콜하고 사과드려야 한다고.
그 분 찾아서 사과해야 한다고.
지난 번 첫 연어 사태 때도 얼마나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며칠을 괴로워했는데,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무슨 유난을 떠냐는 듯한 모습에,
순간적으로 더 화가 났습니다.
내가 여기 딴지 벙커에서 일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제대로 된 음식을 양심껏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걸 지키지 못하면 내가 여기서 일할 이유도 의미도 없다고,
그렇게 화를 냈지요.
결국 찾아보자는 말에 화냈던 것을 사과하고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주문은 몰려 들고, 파파이스는 시작하고,
결국 그분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뒷모습을 봤을 때는 검은 머리에 보통 키의 여자분이셨는데,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 날 퇴근하고 게시판에 글이라도 써서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컴퓨터 앞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벙커에서 일할 때,
바른 말인 건 아는데 너무 맞는 말만 하면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단지 기본만을 말했을 뿐인데,
말할수록 제 처지만 곤란해졌습니다.
전 계속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혼자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마음으로
최대한 그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더 잘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적어도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딴지에 남은 억하심정은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딴지에 일하는 많은 분들도,
다들 박봉임에도 열심히 일하는 좋은 분들이 절대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친해지고 싶은 분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럴 기회도 없이 이렇게 나가게 되어서 매우 아쉽습니다.
연락처라도 땄으면 좋을 텐데.
딴지가 단지 진보 진영이라는 마켓을 보고 장사만을 하는 곳은 아니라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적 기업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하는 기업이라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급여조건과 노동환경만 빼고,
관리자와의 트러블만 없었다면,
짧으면 5년 길면 10년까지,
독립할 때까지 성심을 다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딴지 주점 프렌차이즈를 열고,
그 1호점으로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다 제 망상에 불과할 뿐이겠지요. 하하.
딴지 모집 공고에서
인간의 압축성장한계치에 도전하게 해준다는 말은
사실에 가깝다는 말을 보증합니다.
글을 쓰는 데에는 고작 3시간이 걸렸을 뿐이지만,
글을 덜어내고 수정을 하는 데는 그 배 이상의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 글 하나로 안 좋았던 기억은
다 잊겠습니다.
(하지만 잔여 임금을 지급해 주지 않으면 삐뚤어 질지도 모릅니다.)
대신,
오래 히키로 있던 제게 일할 기회를 줬다는 점,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게 해준 곳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이 글과,
혹시 이 글에 달릴지도 모를 댓글에 대한 대댓글을 마지막으로,
임마야라는 닉도 버리고,
몇몇 글눈이 좋은 분들은 눈치챈
원래의 닉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이 정도로 퇴사 후기를 정리하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임마야-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document_srl=122282457
요약하면
딴지에서 하는 벙커 주방에서 일하셨던분인데
최저시급도 안주고 주방으로 뽑고 잡일 다 시키고 심지어 레시피 알려달라고하고
수습이라고 뽑아서 악용하고 버리는 전형적인 테크
일명 진보의 선두주자라고 하는 김어준의 민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