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해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어제 보고서는 주목할 만하다. 간병·육아의 돌봄 서비스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턱없이 모자란다. 한은에 따르면 노동 공급 부족은 2042년 최대 155만 명에 달한다. 보건서비스 일자리의 수급 불일치는 간병비를 밀어올렸다. 요양병원 등에서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면 지난해 기준 월평균 370만원이 든다. 가사·육아 도우미 비용도 계속 올라 지난해 월 264만원이다. 여성 경제 활동의 기회비용이 커지면 젊은 여성의 퇴직과 경력단절,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간병비 부담으로 ‘가족 간병’이 늘어나면 해당 가족은 일을 아예 하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42년 최대 77조원, 국내총생산(GDP)의 2.1~3.6%(연령별 평균임금 적용)에 달한다. 한은이 돌봄 도우미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자고 제안한 이유다. 지금은 재외동포 등 일부만 제한적으로 간병인으로 일할 수 있다. 홍콩·싱가포르·대만처럼 개별 가구가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면 사적 계약이라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일본·독일·영국처럼 돌봄에 고용허가제를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이 경우 돌봄 서비스업에 대한 최저임금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올해 필리핀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을 하는 서울시의 오세훈 시장도 인정했듯이 최저임금을 적용해 200만원 이상을 외국인 도우미에게 줄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문제는 사회적 갈등이다. 저임금 외국인 도우미 도입을 인권에 반하는 ‘현대판 노예제’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고,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엔 노동계가 결사반대다. 어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우리에게 이미 낮게 매달린 과일은 더 이상 없고,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려면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출생·고령화 같은 우리 시대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제 손만 뻗으면 잡히는 손쉬운 대책은 없으며, 설령 시끄럽고 불편한 논쟁이 벌어져도 어려운 선택을 피하지 말자는 뜻이다.
이젠 노동계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외국인 돌봄 도우미가 가장 필요한 이들은 ‘동료 노동자’, 즉 저소득층과 중산층이다. 인건비 부담으로 대부분의 요양시설이 최소 인력만 채용하면서 서비스 저하로 이어졌다. 요양병원의 환자 학대 기사가 툭하면 나오는 이유다. 김현철 홍콩과기대 교수는 “홍콩에선 휠체어를 타고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쇼핑하고 산책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우리나라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다”고 했다. 소득과 재산에 따른 차별 없이 누구나 안락하고 존엄한 노년을 누릴 권리가 있다. 열악한 서비스의 원치 않는 시설에서 노후를 보내야 하는 국내 사례와 외국인 도우미에게 재가 서비스를 받는 외국을 비교하면 한국은행의 제안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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