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는 김소윤씨(여·39)가 살았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절약과 검소가 몸에 배었고, 한 푼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고 성실하게 돈을 모았다. 그러면서 부모를 극진히 모시던 효녀이기도 했다. 미래를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간호조무사 등 7개 자격증도 취득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코로나19로 아버지의 생계가 어려워자 도두동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2020년 8월30일 오후 5시쯤, 김씨는 일과를 마치고 편의점을 나섰다. 그의 집은 걸어서 약 1시간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지만 버스비를 아끼려고 늘상 걸어다녔다.
이날 김씨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편의점에서 조금 떨어진 제주민속오일장에 들러 칼국수로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온 후에는 오일장 주차장 방향으로 향했다. 항상 다니던 해안도로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김씨는 오일장 후문과 제주국제공항 사이에 난 농로로 접어들었다. 오후 6시50분쯤 양산을 든 채 집으로 향하던 그때, 한 남자가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가 점점 빠르게 접근하자 김씨는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잡았고, 김씨는 양산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런 김씨에게 달려든 남자는 무차별 흉기를 휘둘렀다. 목과 가슴 등 6곳을 칼에 찔린 김씨는 콩밭으로 떨어져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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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농로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범행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또한 3일 전부터 1톤 탑차를 끌고 다니며 범행 현장을 배회한 한 남자가 포착됐다.
그는 29세 남성 강아무개씨였고, 피해자인 김씨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탑차에서는 강씨가 범행 당시 착용했던 혈흔이 묻은 신발과 의류, 흉기 등이 발견됐다.
그는 김씨 살해 5시간 후인 다음 날 0시17분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시신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김씨의 휴대전화와 가방에 있던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가져간다.
이어 체크카드를 갖고 편의점과 마트에서 약 10만원어치의 야식거리를 구입하고, 탑차 안에서 먹어치웠다.
범행 당시 강씨는 뚜렷한 직업이 없는 무직 상태였다. 그는 또 5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1톤 탑차를 소유하고 있던 그는 한 달 전까지 택배회사 배송사원으로 일했다.
이런 그가 월급을 받은 후 택배일을 그만둔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지만 그가 일을 한 것은 석 달 정도뿐이었다. 이후 월세를 내지 못해 거주하던 원룸에서 쫓겨났고, 탑차에서 생활하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직업도 있던 그가 어쩌다가 수천만원의 빚을 지게 된 것일까. 경찰 수사에서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강씨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인 여성 BJ들에게 푹 빠져있었다. 심지어 한 여성 BJ와는 직접 만나 선물 공세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사이버머니를 통 크게 후원하면서 BJ들 사이에서 '큰손'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하루 최대 200만원에 달하는 사이버머니를 후원했다. 강씨가 거액의 빚을 진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강씨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범행을 줄곧 '우발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범행은 계획범죄일 가능성이 높았다. 범행 전 그의 행적을 보면 원룸에서 쫓겨난 후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CCTV에 포착된 정황을 봐도 강씨는 범행 사흘 전부터 탑차에서 생활하며 오일장 인근과 공원 등을 배회했다. 범행 당일에도 강씨는 차를 몰며 오일장을 돌고 있었다. 그러다 김씨가 나타나자 곧바로 차를 주차시키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범죄 전문가들 또한 범행 대상을 특정하고 흉기를 들고 뒤따라간 것과 피해자가 저항하자 곧바로 살해한 것은 전형적인 계획범죄 형태라고 판단했다.
김씨의 아버지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계획살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청원에서 "너무도 허망하고 억울한 마음에 국민 여러분들께 이렇게나마 청원을 올리게 됐다. 착하게만 살아온 제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에 대하여 한이 맺히고 억울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비통해했다.
그는 또 "저의 딸은 방탕하거나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 40년 동안 밤늦게 귀가하거나 외박 같은 것도 전혀 하지 않은 딸이었다. 직장과 집, 정시각에 출퇴근을 하는 바른 아이였다"고 허망함과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가해자는 그래도 1톤 탑차를 소유하고 택배일도 했다는데 일이 조금 없다고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수가 있나. 요즘 막노동만 해도 하루 일당으로 일주일을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물며 교통비를 아끼며 출퇴근하는 여성을 뒤따라가 흉기로 살인을 했다는 것은 계획적인 살해임이 분명하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1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처음 보는 젊은 여성이 돈이 많아 보였느냐"고 묻자 강씨는 "가방에 돈이 있는 줄 알고 훔치려 했고, 처음부터 살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위협하는 과정에서 놀라 찌르게 됐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강도살인죄는 반인륜적인 범죄로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으며, 죄질이 극히 나쁘다.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와 충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면서 "피해자 유족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을 그대로 인용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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