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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 중 1인인 이완용
1909년 12월 22일 독립운동가의 칼에 왼쪽 어깨와 오른쪽 등을 찔렸고 당시 최고 수준의 치료와 수술을 받아서 살아났으나
이 때부터 얻은 폐 쪽의 지병이 천식과 폐렴으로 발전해 평생 동절기마다 고생했고 훗날 사망 원인이 됨
(안타깝게도 금방 죽지는 않았고 1926년에서야 죽음)
이완용을 피습했던 독립운동가는 이재명 의사로 당시 나이는 23세
피습했던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고 살인 미수 혐의로 선 재판장에서 아래와 같이 일본을 꾸짖었음
나는 흉행이 아니고 당당한 의행을 한 것이다.
이 일에 찬성한 사람은 2000만 민족이다.
왜법(倭法)이 불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기는 하나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죽어 수십만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10년 5월 18일 사형 선고가 확정된 다음 아래의 최후 진술을 남기시고 24세의 나이로 순국하심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