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의대 증원뿐 아니라 무엇이 더 필요한가.
"공공 개입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국가가 의료에 돈을 써야 한다. 한국은 정부가 의료에 투자한 경험과 역사가 없는, 전세계적으로 아주 예외적인 나라다. 영국처럼 공공의료 비중이 100%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일본도 20%가 넘는다. OECD 꼴찌로 10%도 안 되는 우리도 이젠 미국·일본 수준까진 공공 의료기관을 늘려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은 그 기로에 섰다는 임계 신호다. 기존 공공의료원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공공의료원은 낙후됐다'는 낙인과 인식은 공공의료원을 구조조정 대상으로만 치부해온 국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 정부도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나 수가 인상 등을 제시했다.
"말장난일 뿐이다. 이미 지역엔 시장 매커니즘이 무너진 상태인데, 수가 좀 올려준다고, 지자체와 계약해서 지원 좀 더 받는다고 의사들이 지역으로 내려갈까? '지역 내 건강보험 진료비 비중' 데이터를 보면, 영호남 많은 지역들이 30% 선에 머물러 있다. 70% 가까이가 자기 지역을 벗어나 진료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절망적인 수치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시설·인력·재정·관리 등 의료이용 전달체계 전반을 다 바꿔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이다. 의대 증원이 개혁의 시작점은 될 수 있지만, 모든 의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의대 증원만으로 지역의 '소아과 오픈런'이 사라지진 않는다."
- 지역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가.
"순천 인구가 28만 정도 되는데 순천에 있는 전체 소아과 의사가 30명 정도다. 그나마 이 정도면 지역 치고 사정이 아주 좋은 편에 속하지만, 우리 병원에서도 의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이 문제를 잘 와닿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이건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에도 사람이 있는데 오로지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그들의 건강권이라는 국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지경이 되도록 국가가 책임을 외면할 수 있었던 한국만의 특수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건강보험제도라는 착시다. 사회보험 형식으로 잘 정착된 건강보험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국가가 마치 의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거대한 착각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시스템 없는 시스템'이었다. 손이 모자란 응급·중증환자들을 어떻게 할지, 쓰러지는 지역·필수 의료를 어떻게 할지 국가는 그저 민간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넘겼다. 책임은 안 해놓고 의사 수만 쥐고 흔들려 하니 반발이 커지는 것이다."
- 지난 20일부터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이야 빅5를 중심으로 전공의 파업 여파가 크겠지만, 지역은 조용하다. 일부 대학병원 이송 환자가 차질을 빚는 경우는 있어도 일상 의료는 평소와 똑같다. 기본적으로 어떤 직종이든 단체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료는 공적 가치가 중요한 영역이다. 파업이 끝났을 때 사회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성패와 상관없이, 당사자들은 그 책임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의사들은 무엇보다 국민들과 시민들, 대중을 친구로 삼는 방식은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생들을 싸잡아 '공부만 잘 했지 이기적이고 나쁜 놈들'이라고 몰아가는 건 선배 의사로서 마음이 아프다. 잘못은 그런 체계를 만든 어른들과 기득권이다. 의료계 입장을 속되게 요약하면 '나는 내 돈 내고 학교 다녀서 면허 딴 자영업자인데 국가가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다. 각자도생인 것이다. 보건의료에서 공적 가치를 세우지 못한 국가 실패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현 의사 교육 체계 안에도 공적 가치를 강조하는 내용이 약하다. 모델이라고 할 게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라는 기대수익뿐이니 학생들이 거기 따라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 문재인 정부 때 국립중앙의료원장과 공공보건의료발전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재임 당시인 2020년에도 의대 정원 문제로 의사 단체들이 파업을 벌였다.
"당시는 400명 증원 규모였고, 공공의대 신설 등 공공의료 강화가 큰 줄기로 제시됐다. 정권 초기부터 의료개혁 흐름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논의가 끊기고 말았다. 아쉽다. 복지부 등 정부 의지가 약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단, 당시와 지금 의사단체들의 반발 양상은 매우 다르다고 본다. 당시 의협(대한의사협회)은 '정부'가 아닌 '문재인'을 타깃으로 극렬하게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윤석열'이 아닌 '정부'만 표적으로 삼고 있다. 강성 발언이라고 해 봤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정도를 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색이 강한 의협이 굉장히 정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24010?sid=102
기사 일부만 가져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