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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리스트, 그 후의 삶<6> 조혜정, “비난은 선수 아닌 배구인의 몫이다”

무명의 더쿠 | 08-17 | 조회 수 2555

http://sports.news.naver.com/volley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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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구기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선사했던 여자배구 대표팀의 조혜정 선생. 리우올림픽에서 뛰었던 후배들의 분전을 지켜보며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뒤엉켰다고 말한다.(사진=이영미)>


“잘했지만 (김)연경이 혼자로는 역부족이었어요. 김연경 같은 선수가 상대팀에 두세 명이 있는데 힘들지. 연경이가 내게 그런 말을 했어요. 자기 소원이 두 명 놓고 때리는 거라고. 매번 세 명이 블로킹을 서니까 힘든 거예요. 여섯 개의 손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봐. 나도 선수 생활할 때 매번 집중 마크를 당해서 블로킹 한 명 세우고 때려봤음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상대편에서 제일 장신의 선수가 날 상대했어요. 정말 그 벽을 뚫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신장 165cm의 작은 키에도 대표팀 주축 선수로 맹활약했던 동메달의 주역, 조혜정(63) 전 GS칼텍스 여자배구 감독은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에서 고군분투했던 대표팀 김연경과 선수들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연경이를 비롯해서 다른 선수들도 모두 잘했어요. 그 정도 했으면 됐죠. 결과를 놓고 선수들이 비난받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본적인 건 우리 배구가 초·중·고에서부터 성적을 내기 위해 아이들을 ‘반쪽짜리’ 선수로 만든 환경이 문제예요. 왜 (박)정아가 욕을 먹어야 하죠? 그건 우리 배구인들이 받을 비난입니다. 어제(8월16일 네덜란드전) 경기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났어요. 선수들은 충분히 잘했습니다. 모든 비난은 저를 비롯해서 배구계 어른들이 받아야 해요.”


‘나는 작은 새’ 조혜정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대표팀 조혜정의 별명은 ‘나는 작은 새’였다. 작은 키를 만회할 만한 점프력을 빗대 당시 외국 기자가 만들어낸 수식어였다.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에는 조혜정, 정순옥, 윤영내, 유경화, 유정혜, 변경자, 백명선, 이순옥, 이순복, 마금자, 장혜숙, 박미금 등 12명으로 구성됐다.


외국 선수들보다 평균 신장이 10cm나 작았지만 한국 특유의 조직력과 끈질긴 수비를 앞세워 강하게 맞섰다. 첫 경기 상대는 이 대회 준우승팀 소련(러시아). 접전 끝에 1-3으로 졌지만 이후 동독(독일)과 쿠바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둬 조 2위로 준결승전에 올랐다. 준결승전 상대는 일본. 0-3으로 패한 끝에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만나 3-1 승리를 거두고 감격스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우린 하루 11시간씩 연습을 했어요. 잠 자려고 누우면 발바닥이 퉁퉁 붓고 통증이 심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정말 지독하게 훈련했어요. 그땐 15점제라 연습 경기할 때도 매 게임이 14-14 마지막 공격이라고 상상하며 매달렸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느냐고요? 신분 상승하고 싶어서요. 당시엔 여자가 운동한다고 하면 깡패나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장 우리 엄마도 그런 생각을 하셨으니까요. 국제대회에서 메달 획득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배구가 얼마나 멋진 운동인지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조혜정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북한한테 패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을 때 조혜정은 숙소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고 얘기한다.


“당시 내 나이가 열아홉 살이었어요. 대표팀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겠어요. 그런데 3,4위전 상대가 하필이면 북한이었어요. 잘하면 본전, 못하면 돌 맞기 십상이었죠. 그렇게 긴장했던 경기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기자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지지 않을까를 더 간구하며 경기에 나섰어요. 그럼에도 패했고, 우린 4위에 머물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린 북한과 일본전에서 패하면 난리나잖아요. 한국에 그냥 못 돌아오는 분위기였어요. 그때 선수촌 숙소가 17층에 있었거든요. 그냥 거기서 뛰어내리고 싶더라고요. 너무 참담해서.”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4년 후 몬트리올올림픽을 맞는 감정은 복잡 미묘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져도 그때만큼 최선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했다”는 말 속에는 메달에 대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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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여자 배구대표팀 12명의 선수들.(사진=대한체육회)>


'빨간 색' 부적 찾아다녔던 올림픽 에피소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헝가리와 또 다시 3,4위전을 맞게 됐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상하게도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 서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극도의 긴장감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플레이가 안 나오는 거예요. 경기 중 작전타임을 걸고 모이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야,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정리 차리자. 여기서 절대 무너지면 안 돼’였어요. 우리가 1세트에선 12-15로 졌어요. 2세트 들어가기 전 한 선수가 내게 달려와선 부적이 없어졌다고 하는 거예요. 엄마가 주신 부적을 브래지어 안에 넣어놨는데 그게 없어졌다며 울상이더라고요. 경기 시작되기 전에 부적 찾느라 얼마나 헤맸는지 몰라요. 그러다 한쪽 구석에 있던 빨간색 부적을 찾았고, 그걸 유정혜에게 줬죠. 그걸 받아든 그 선수가, ‘언니 됐어. 우린 이길 수 있어’하며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나요. 그 부적 때문일까요? 그 후 우린 15-12, 15-10, 15-6으로 역전승을 거뒀으니까요.”


눈물바다를 이뤘던 헝가리와의 동메달 결정전 이후 승리에 도취돼 라커룸에서 시상식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조혜정은 옆의 선수에게 자기 얼굴을 꼬집어달라고 부탁했단다.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변경자 선수에게 ‘우리가 메달 딴 거 맞아?’라고 물어보기도 했고, 이 꿈이 깨지면 또 다시 시합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리 볼을 꼬집어도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시상식을 앞두고 라커룸에 있는 칠판에다 선수촌에서 아침마다 불렀던 ‘승리의 노래’ 가사를 적었어요. 그걸 부르며 기쁨에 겨운 마음으로 시상식을 기다렸습니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의 근황이 궁금했다.


“유정혜는 미국 LA에서 체육회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변경자는 이탈리아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배구를 가르치고 있어요. 윤영래는 카자흐스탄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유경화는 배구협회에서 유소년, 청소년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순옥은 복싱의 황철순과 결혼해서 딸도 배구하고 있고, 백명선은 아들 셋이 다 수영선수로 뛰고 있어요. 그 외의 선수들은 소식을 잘 몰라요.”


젊을 때는 구기 종목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란 수식어가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한다. 은퇴 후엔 그 기록이 하루 빨리 깨지고 후배들이 그 영광을 이어가길 소원했다는 얘기를 덧붙인다.


“올림픽에서 구기 종목 사상 최초로 메달을 따며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배구계는 우릴 참으로 섭섭하게 대했어요. 배구인의 밤에도 초대를 못 받을 정도이고, 배구 관련 시상식장에 가도 우리들 좌석 하나 없습니다. 그냥 ‘원로인석’으로 모여 앉아야 해요. 제일 서러운 건 후배들이 날 알아보지 못할 때입니다. 난 반가운 마음에 손을 덥석 잡으며 ‘고생한다, 열심히 해라’라고 얘기하지만 상대 선수는 날 전혀 못 알아보는 거예요. 그래도 GS칼텍스 감독까지 했는데 말이죠. 누구 탓을 하겠어요. 다 제 탓이죠.”


은퇴 후 이탈리아에서 제2의 전성기


조혜정은 몬트리올 올림픽 이듬해인 1977년 스물 세 살의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당시 국세청과 대농(미도파)에서 실업팀 선수로 활약했지만 고질병이었던 무릎 부상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스물 세 살의 나이에도 (김)연경이처럼 정상을 지킬 수 있었다면 선수 생활을 계속했을 거예요.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고 싶었고, 정상을 지키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몸이 따라주질 않았으니까요. 배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 있던 중에 마침 이탈리아 라이온스 베이비란 팀으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았어요. 운동량이 한국처럼 많지 않다는 것과 즐기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얘기에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실생활은 정말 어려운 일 투성이었어요. 말도 안 통하고, 저녁에 2시간 훈련하는 것 외엔 운동을 너무 안 하더라고요. 그 2시간을 제외하곤 혼자 지내는 일상의 반복인데 얼마나 무료하고 외로웠겠어요. 결국 향수병에 걸려 불면증이 심해졌었죠.”


한국 배구선수로 해외 리그에 처음 진출한 선수는 조혜정이었다. 그는 1979년 이탈리아 세리에 A1에 속한 라이온스 베이비 앙코나에 입단한 뒤 1981년까지 뛰었다.


향수병으로 고생했던 이탈리아 생활의 은인은 가수 양희은이었다. 조혜정과 양희은은 1970년대 후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다가 친분을 맺었다. 당시 양희은은 ‘아침이슬’이 금지곡으로 묶이며 해외 출국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였지만 조혜정의 구단 측(라이온스 베이비는 의류 회사였다)에서 조혜정을 위해 양희은에게 초청장을 보내준 바람에 이탈리아로 날아갈 수 있었다. 


“양희은이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이탈리아의 명문팀인 파르마에서 김호철 감독을 영입하고 싶다며 내게 다리를 놔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계약을 진행하려면 영어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때 양희은이 김호철 감독의 통역을 자처했고, 파르마 관계자와 김호철 감독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어요. 결국 김 감독이 이탈리아로 건너왔고, 셋이서 6개월가량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도 세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어요.”


조혜정은 처음 이탈리아 라이온스 베이비 팀 관계자를 만났을 때의 장면을 잊지 못한다. 구단 관계자와 이탈리아 공항에서 첫 대면을 하는데 그는 조혜정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것.


“마치 사기당한 사람 표정이었어요. 한국의 최고 스타플레이어라고 해서 영입을 했더니 키도 작고 옷차림도 남루하고, 한 마디로 배구를 전혀 잘할 것 같지 않은 여자가 나타났던 거죠. 그 구단 사람이랑 같이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한 마디도 안 하더라고요. 말을 해도 내가 못 알아 들었겠지만요. 내가 뛴 첫 해 라이온스 베이비 팀이 2부에 있다가 1부로 승격된 것은 물론이고 리그 5위를 차지했어요. 2년차 때는 코치 겸 선수로 뛰었고요. 상당히 수준 있는 지도자들 밑에서 재미있게 배구를 했습니다.”


조혜정은 1981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을 맡았던 조창수 전 감독과 결혼식을 올리며 스포츠 커플로 화제를 모았다. 두 부부 사이에는 조윤희, 조윤지, 두 딸이 있고, 현재 골프 선수로 활약 중이다. 


“아이들 골프 뒷바라지를 위해 대구의 한 백화점에서 냉면 가게를 운영했었어요.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 차린 건데 내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가게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남편이 그만 두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고요. 기다렸다는 듯이 가게를 접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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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GS칼텍스 배구팀 감독으로 선임됐지만 성적 부진으로 1년 만에 하차하게 됐던 조혜정 전 감독.(사진=이영미)>


프로 스포츠 사상 첫 여성 감독


현대건설과 송원여고 코치, 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 한국배구연맹 경기 운영위원 등으로 배구와 인연을 이어가던 조혜정은 2010년 조혜정은 GS칼텍스 감독에 오른다.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이었다(그의 인생은 ‘최초’와 연결된 게 의외로 많다). 그러나 주위의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성적 앞에선 그도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1년 만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것이다.


“한꺼번에 팀 분위기를 바꾸려 했던 게 패착이었어요. 3년 계약이었기 때문에 첫 해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4승20패로 나타나더라고요.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현대건설과 시즌 마지막 경기를 펼쳤는데 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가 원하는 경기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4승20패에 대해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고, 그게 나였던 거죠. 최초의 여자 감독이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GS칼텍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조혜정은 병원 신세를 자주 졌다고 한다. 치과 내과 이비인후과 등 1년 동안 가슴앓이 했던 후유증이 몸의 이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분명 자신의 실수가 있었고, 그게 실패로 나타났지만 만회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회한이 그를 몹시 힘들게 만들었다.   


“이전엔 그 ‘만회’를 배구로 돌아가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만회는 배구로만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국민 생활체육 진흥을 위해 뛰는 것도 실패를 만회하는 방법이라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코리아하이파이브 K-스포츠클럽에서 농구의 박찬숙, 정미라 선생과 함께 클럽 스포츠를 맡고 있습니다.”


며칠 전 조혜정 선생 인터뷰를 마친 후 17일 오전에 다시 전화 통화를 나눴다. 전날 열렸던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 대한 소회를 듣기 위함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푹 잠겨 있었다.


“어제 배구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줬고, 그런 환경에서 배운 배구를 하다 보니 어제 한국 여자배구의 한계를 봤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정말로 배구인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반성 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4년 후 우린 똑같은 실수와 안타까움을 반복할 겁니다. 박정아는 잘못 없어요. 그 선수는 어릴 때부터 대성할 그릇이었어요. 워낙 실력이 뛰어나다보니 그를 가르친 지도자들이 센터, 레프트, 라이트 등 포지션을 바꿔가며 뛰게 만들었어요. (김)연경이 처럼 한 포지션에서 더 잘 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정아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을 겁니다. 우린 올림픽에서 뛴 선수들에게 비난할 자격 없어요. 평소 여자 배구 경기장에 나와 응원했던 팬이라면 비난할 자격이 있습니다. 프로리그 경기엔 관심도 없다가 국제대회에서 성적 내지 못했다고 손가락질하는 건 비겁한 일입니다.”


조혜정 선생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돼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준 김연경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글의 마무리는 그 내용으로 대신한다.


“연경아, 마지막까지 후배들을 다독이며 경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에 대견함과 미안함이 물밑 듯 했다. 너희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과는 우리의 바람과 어긋났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최고였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 김연경과 같이 코트에서 선수로 뛰어 보는 거야. 연경아, 넌 진짜 넘버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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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에서 고생한 후배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선배 조혜정.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4년 후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배구인들이 반성하고 반성한 부분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사진=연합뉴스)>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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