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에 사는 이모(21)씨는 최근 인터넷으로 대출을 알아보다가 “신용불량자도 받을 수 있는 저금리 대출” 광고를 발견했다. 광고속 카카오톡 계정으로 문의하니 자신을 ‘저축은행 상담사’라고 소개한 사람에게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모임통장을 여러 개 개설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모임통장 계좌의 거래 내역을 늘리면 신용등급이 일시적으로 올라가 대출 한도가 높아진다고 유혹하면서다. 그는 “기존 대출금이 있어도 대신 상환해줄 수 있고 낮은 금리로 대출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씨가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에 모임통장을 만들자 이 상담사는 모임통장으로 돈을 여러차례 보내 이씨 신용등급을 높여 주겠다고 했다. 실제 이씨 계좌엔 순식간에 한 번에 8만원부터 640만원까지 수십 건 내역이 찍혔다. 총 금액은 5000만원 상당. 상담사는 이어 이 돈 전체를 자신이 일하는 저축은행 계좌로 다시 이체하도록 지시했다. 그러고 며칠 뒤 이씨는 자신이 중고거래 사기에 휘말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상담사는 사실은 ‘당근마켓’ ‘중고나라’ ‘트위터’ 중고거래 사기조직의 일원이었고, 이씨 모임통장을 중고거래 사기 피해자의 송금 창구로 활용한 뒤 종적을 감췄다. 피해자들은 모임통장 계좌주인 이씨를 사기범으로 지목했다.
대출사기 명의도용 피해자 이모씨가 저축은행 상담원이라고 소개한 이와 대화한 내역. 상담원은 신용동급을 올려주겠다며, 카카오뱅크와 토스 등에서 모임통장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모임통장에 들어오는 돈을 다른 계좌로 입금하라고 지시했다. 사진 이씨 측 제공
이씨는 자신의 모임통장에 송금한 중고거래 피해자에게 “기존 대출을 갚으려다가 휘말렸다”며 “다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피해자들은 믿지 못했다. 이에 이씨는 지난 23일 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씨 아버지는 “절박한 상황이었던 딸이 사기꾼들의 교묘한 수법에 더욱 쉽게 속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28일 전남 목포경찰서는 이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분석하는 등 사망 원인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가 연루된 이 사건의 피해자는 400여명, 피해 금액은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외에도 같은 중고거래 사기조직에 대출을 받을 목적으로 ‘모임통장’ 계좌를 이용하게 해준 이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이씨가 지난 24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 사진 이씨 측 제공
중고거래 피해자들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가해자 명의, 아이디, 계좌번호 내역. 범행에 쓰인 계좌번호는 대부분 카카오뱅크, 토스 등 오픈뱅킹에서 만든 모임통장이었다. 사진 중고거래 피해자 측 제공
이씨처럼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모임통장을 쉽게 개설·해지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중고거래 사기의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다. 카카오뱅크·토스 등의 모임통장은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가상계좌로, 해당 은행에 계좌를 가진 사람이면 별도 인증 없이 1분 만에 수십 개를 만들고 바로 해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사기 조직이 대포통장 1개를 보이스피싱 등으로 어렵게 구했다면, 지금은 범죄에 쓸 계좌를 쉽게 다량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기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경찰 추적도 쉽지 않다. 이씨가 연루된 사건도 전국에 피해자들의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계좌를 추적해 같은 사건으로 보일 경우 다중 사례로 묶어 조사한다”면서 “하루에도 수십건씩 중고나라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라 해당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인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측에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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