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약 조사 받다가 극단선택
가로세로연구소·프리덤앤라이프
숨지기 하루 전 혐의와 관련없는
업소 女실장과 대화 녹취록 공개
소속사 “가족들 고통에 힘들어해”
警, 세번째 소환 비공개요청 묵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종결 방침
마약 투약 혐의로 3개월 가까이 경찰 조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배우 이선균(48)이 일부 매체와 유튜브 채널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보도와 ‘망신 주기’로 인해 가족과 지인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극도로 괴로워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이 씨의 소속사 등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0월 피의자로 입건된 후 무혐의 입증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한 지상파 방송 메인 뉴스에서 이 씨와 서울 강남 유흥업소 실장 A(29) 씨의 사적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며 심리적 타격을 입었다. 숨지기 하루 전인 26일에도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프리덤앤라이프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또 다른 녹취록이 공개됐다. 몇몇 매체는 이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이 사건의 본질인 마약 혐의 입증과는 관계없는 사적 대화였지만 10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의혹만 확대 재생산됐다. 이 씨의 소속사 관계자는 “이 씨는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하며 그의 지인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일부 보도 때문에 힘들어했다”면서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을 무엇보다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이 씨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3개월간 세 차례 ‘포토라인’에 서며 사실상 공개수사 대상이 된 것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씨가 숨지기 나흘 전인 23일 마지막 조사에선 경찰에 비공개 소환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행위는 수사공보 규칙 위반이다. 경찰 관계자는 “소환 일정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경찰서 주변에 기자들이 진을 친 상태였기 때문에 비공개 소환이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그동안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왔다.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와 제보자인 A 씨와의 대질 조사도 검토했지만 모두 진행되지 않았다. A 씨로부터 수면제인 줄 알고 받아 투약했고, 이후 협박을 받아 3억5000만 원을 갈취당했다는 게 이 씨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이 씨는 26일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경찰에 요청하기도 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마약 정밀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사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사생활이 드러나고 명예가 실추되는 상황과 더불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섞여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씨가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관련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타살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씨의 죽음으로 일부 매체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와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의 행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작사가 김이나는 27일 SNS를 통해 “어디서 흘러나온지도 모르는 녹취록을 이어폰을 꽂고 몰래 들으며 어머어머 하고, 가십성 콘텐츠도 클릭해보고, 마지막에 ‘너무 사람 망신 주기 하네, 심하다’라는 말로 스스로 면죄하던 내 모습이 선명해서 차마 감히 추모도 못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씨의 빈소에는 동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내인 배우 전혜진이 상주로 조문객을 맞는 가운데 고인과 작품을 함께했던 설경구, 이성민, 조진웅, 하정우를 비롯해 정우성, 이정재, 전도연, 류준열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안진용 기자(realyong@munhwa.com)
김규태 기자(kgt90@munhwa.com)
강한 기자(str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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