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물건 갖고 있으면 갑(甲), 담배 한 개비 8만원 받고 팔아”
밖의 ‘동생들’ 통해 교도관에게 유흥업소 로비 벌여 사제물품 밀반입 하기도
교도소에서도 대장…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태도 불량하다고 집단 구타 당해
교도소는 신입 조폭들의 관문이다. 일부러 폭력사건을 저질러 ‘신고식’을 자행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소년원 이력이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반 기업체로 따지면 검증된 포트폴리오로 쳐준다는 것. 전직 조폭 이모(42) 씨는 1998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부산 사상구에서 친구들과 무리 지어 오토바이를 훔치거나 돈을 갈취하면서 생활했다. 지역 관할인 사상경찰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은 당연지사. 경찰의 관리를 받던 중 폭력사건을 저질러 징역 6개월을 받고 부산소년원에 들어갔다. 주먹으로 다른 소년수들과 서열정리를 했다는 그는 최고참 격인 ‘방장’이 됐고, 밖에서 ‘유망주’로 알려졌다. “출소 열흘 전에 문신은 하나 있어야겠다 싶어 서예반장을 불러 먹물을 갖고 오라고 했다. 방에 그림 잘 그리는 애가 하나 있길래 걔한테 먹물을 묻힌 바늘로 종아리에다 라인을 따게 했다.”
소년원 이력은 검증된 포트폴리오
조폭 세계에서는 어느 소년원을 나왔는지도 중요하다. 기자가 만난 다수의 조폭들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은 대전의 대덕직업전문학교(대덕소년원)가 가장 악명 높았다. 마침 이씨는 부산소년원 출소한 직후 다른 폭행 혐의로 대덕소년원에서 2년가량을 지낸 경험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2000년 5월 대덕소년원에서 벌어진 난동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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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대덕소년원에 있을 당시 이씨의 모습. 그는 1990년도 후반 부산소년원에 있을 때 먹물과 바늘을 이용해 문신을 했다. 현재는 조폭 세계에서 나와 레이저로 문신을 지우고 있다. / 사진:제보자
잡범들과 달리 조폭들은 교도소에서도 대접을 받는다. “교도소는 건달이 왕이다. 안에서 서로 부딪히지만 않으면 발 뻗고 잔다.” 전국구로 알려진 ‘현직’ 조폭 김모(42) 씨의 말이다. 그는 불과 3년 전까지 전주교도소에 있었다. 그에 따르면 범단으로 엮인 조폭은 노란 명찰을 받고 재소자 방에 들어간다. 방에서는 방장 밑으로 배식방장·규율방장 등 나름의 서열이 있는데, 조폭은 이를 무시하고 들어가자마자 방장이 된다. 나이 불문, 혐의·형량 불문이다. 설거지나 청소, 배식 등에서 자유롭다. 그는 “교도관들도 터치를 안 한다. 방에 조폭이 있으면 규율이 잡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교도관과는 공생 관계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교도관에게 진짜 골칫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거는 재소자다. “교도관도 사람인데 걸핏하면 코를 꿰려는 애들이 있다. 한여름에 더워서 교도관이 모자를 벗으면 ‘왜 세금으로 근무하면서 탈모(脫帽)하느냐? 30분마다 순찰을 돌아야 하는데 왜 1~2분씩 늦느냐’ 이런 식이다. 교도관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소장과 면담하겠다고 요청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어 괴롭힌다.” 하지만 조폭은 이런 재소자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든다. 장기 10~15년형이나 무기수가 아닌 바에야 사회 복귀만 기다리는 입장에서 조폭의 눈에 띄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교도소 안에서는 범죄 유형별로 순서가 정해진다. 김씨는 “조폭들이 가장 싫어하는 범죄자가 사기, 성폭행, 살인으로 들어온 재소자들이다. 사기범들은 접시꾼이라고 부른다. 걔들은 교도소에 들어와서도 입만 열면 거짓말과 허풍을 친다. 그래도 범털(영치금이 많은 사람)은 방에다 먹을 걸 사다 주니 어느 정도는 대우해준다. 성폭행범은 서열 제일 끝에다 두고 온종일 변기통만 닦게 한다. 나이 대접도 안 한다. 그리고 살인범의 경우 명분 없는 살인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안에 있다 보면 별의별 범죄자를 다 만난다. 매일같이 술 마시고 집에서 가족들에게 폭력 휘두르는 부친을 살해한 존속살인범이나 배우자가 바람난 사실을 알고 격분해 살인한 택시기사 같은 범죄자들이다. 우리가 그들한테 뭐라 하겠나.”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교도소에서 조폭이 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큰 무대는 공장이다. 흔히 출력을 나간다고 하는데 조폭들이 공장의 관리직을 맡는다. 2000년대 중반 중국 조직과 손을 잡고 대포통장 장사를 벌인 보이스피싱 1세대의 증언이다. “교도소에 있는 조폭이 전국구인지 아닌지는 공장에서 증명된다. 반장·작업반장·문방경리·소지반장·부식반장·요리반장 순으로 공장 서열이 나뉘는데, 직책 하나 못 얻은 애들은 족보도 없는 놈들이다. 돈 없고 내공 약한 반달들로 방구석에 앉아 일반 재소자들과 형님, 동생 하며 서열놀이 하는 거다.”

폭력조직 수노아파 조직원들이 전국 단위 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 / 사진:서울중앙지검
거물급의 생활은 또 다르다. 2011년 김해 교도소에서 범서방파 김태촌을 목격했다는 전직 조폭 강모(40) 씨의 회고다. “그때 몸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 공장에는 안 나왔다. 대신 6인 혼거실을 혼자 썼고 전담 소지(심부름꾼 역할하는 재소자)도 있었다. 보통 소지 1명이 재소자 30명을 관리하는데 그걸 교도소가 왜 모르겠나. 워낙에 조폭계 거목이니까 챙겨준 셈이다. 그래서 접견 갈 때 전담 소지가 휠체어 밀어주고 설거지나 빨래도 다 해줬다.”
실제로 조폭이 그 바닥에서 나오게 되는 계기는 결혼해서 자식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라고 한다. 그런 시기에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이다. 상해죄로 수원구치소에 들어간 이씨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선고 기일 전날 밤 ‘유서를 쓰는 심정’이라며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후회한다고 기자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대포폰을 쓰는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아내와 딸 사진이 있다.
“그것도 잠깐이다. 구치소와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면 그 생활이 편해져서 고삐가 풀어진다. 10년 전에 들어가나 지금 들어가나 그 안에 ‘너 또 들어왔냐’며 반갑게 맞는 조폭들은 항상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본인이 남에게 그런 인간이 되는 것이다.” 8년 전 그 세계와 절연했다는 전직의 충고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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