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지젤`이 된 서울의대생…"십대 애들과 발레 유학"
4,973 9
2023.12.06 13:46
4,973 9
blWcNq


여느 때처럼 교정을 지나던 의과대학생 윤계진(윤엘레나·사진)의 눈에 교내 공연 소식이 들어왔다. 무심코 들어가 앉았는데 관객도 차지 않은 채 공연은 시작됐다. 무대 위의 시골처녀는 사랑에 빠져 연인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가 하더니 이내 비극적 운명에 부딪혀 괴로움으로 미쳐갔다. 사람들의 몸짓과 음악만으로 전개되는 애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대사 한마디 없이도 가슴에 또렷하게 박혀왔다.

1841년 초연 이래 줄곧 명작으로 꼽혀온 이 작품은 '지젤'. 당시 지젤을 연기한 무용수는 후에 한국 발레계의 전설이 된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장이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컸지만 어려서 몸이 약하기도 했고 학구적인 집안 분위기에 오래 고민해보지 못한 채 의대에 진학했어요. 의학 공부는 적성에 맞았지만 마음 속에는 지젤에 대한 열망이 자라고 있었나 봐요. 클래식음악 동호회에서 쓰는 닉네임을 지젤이라고 지어서 쓰기도 했을 만큼요."

어렵다는 의학 공부 중에도 서울의대 교향악단 활동에 열을 올렸다. 그에게 있어 의학은 예술과 꽤 닮은 점이 많았다. "결국 사람에 대한 탐구잖아요. 의대에 가기 전까지는 수학을 정말 잘 해야 하지만 정작 의대에서는 수학을 배울 일이 없지요(웃음). 저는 이과 학문 중 의학이 가장 인문학에 가까운 것이라고 느껴요. 인간에 대한 부단한 관심이 필요한 학문이죠."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결혼을 해서 아이도 둘을 뒀다. 커리어와 인생 모두 제법 탄탄해지며 입지를 다져가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불쑥 독일에 있는 발레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단다. 심지어 4년제 프로페셔널 무용학교인 뮌헨 인터내셔널 발레스쿨이었다.


kVDpKi


발레는 특히나 혹독한 것으로 악명 높은 예술이다. 끝없는 연습과 피나는 절제, 무한한 헌신을 요구한다. 사람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궁극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거의 모든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극한의 고통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게다가 발레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고작 너댓살에 토슈즈를 신기 시작해 십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는다. 그런데 발레스쿨에 가겠다고 나섰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마흔이 넘어 있었다.

"프로 발레리나들도 은퇴를 한 나이죠. 실제로 발레스쿨에서는 열몇살 된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어요. 이탈리아와 러시아 등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었고, 하루에 5시간씩 강도높은 수업과 훈련이 이어졌어요. 그마저도 제게는 딸들이 학교에 간 시간 동안에만 할 수 있는 것이었죠."

한계를 넘고 또 넘는 시간이었다. '하고 싶다'를 '할 수 있다'로 죄다 고쳐 쓴 시간이었다. 세계적인 스타 발레리노인 시릴 피에르가 예술감독으로 이끄는 아마추어 발레단에도 들어갔다. "독일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왜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잘하면 안돼?' 그 말이 가슴에 울림을 남겼어요. 이미 은퇴한 프로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고 더 잘해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를 다 잡았어요."


zptRVg


훈련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국내 최초 성인 아마추어 발레단 스완스발레단에 입단을 했다. 

지난 2019년 아마추어 발레단으로는 처음 전막 발레 '지젤'을 공연했다. 꿈에 그리던 지젤 역이었다. 학교 공연에서 처음 지젤을 본지 거의 30년 만이었다. 그는 "다들 발레를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도전했다"고 말했다. "저는 노력하면 꿈은 다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라고 더 힘을 준다.

이후 'ALLEYS 9'이란 작가 그룹과 함께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올해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피아노 협연도 해냈다. 오전에는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바로 연습실이나 작업실로 향한다.

"링에서 내려오지 말아요. 절대." 잘하는 것보다 그만두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면 성장하게 돼있다. 진부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진리'이기도 한 말이다. 노력에 지쳐서, 나이가 많아서, 재능이 없어서, 남들이 비웃어서, 누구나 자신이 싸우고 있는 링에서 내려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만 기권하고 수건을 던지고만 싶을 때가 온다. 그럴 때에 오늘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링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역전의 기회는 온다.


https://naver.me/xec3INMv


목록 스크랩 (2)
댓글 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졸리아우어🫧] 들뜸 없이 화잘먹 피부 만들기! #진정냠냠세럼 체험 이벤트 (50인) 216 03.12 29,714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968,44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935,39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959,276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274,453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65,468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516,450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30,236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02 20.05.17 8,640,61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6 20.04.30 8,521,657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407,496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18900 이슈 가수도 노래도 처음 보고 듣는 노래인데 한국인들이 단체정모중인 유튜브 노래영상 1 02:41 91
3018899 이슈 수지 K2 봄 화보 비하인드 현장컷...jpg 2 02:41 46
3018898 이슈 9년전 오늘 발매된, 안예은 "상사화" 1 02:24 61
3018897 유머 트럼프가 amazing한 대통령인 이유 말하면서 겟레디윗미 3 02:23 449
3018896 정치 장성철 "국힘, 이낙연 서울시장 출마 검토 중" 16 02:23 534
3018895 이슈 완벽히 한반도 모양의 호랑이 자세.jpg 9 02:22 776
3018894 유머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여초딩들한테 유독 인기많던 멤들(디지몬).jpgif 12 02:17 574
3018893 유머 전쟁 때문에 오른 기름값을 보는 트럭 기사 아저씨.jpg 6 02:10 1,454
3018892 이슈 영국의 스마트폰, 이어폰, 헤드폰, 스마트워치 제조 브랜드 '낫싱(Nothing)' 18 02:06 1,114
3018891 기사/뉴스 '역겹기도 하고 양심에 찔립니다' … 온리팬스 인기 이면의 '시간당 2달러' 노동자 12 01:53 1,485
3018890 이슈 구더기 남편 사건 정리‼️ (주의) 35 01:51 1,976
3018889 이슈 트위터에서 반응 터진 원피스 실사판 스모커대령 국내 더빙버전 14 01:50 1,001
3018888 유머 1인가구는 업보의 날이 싸이클처럼 돌아옴 38 01:50 2,091
3018887 이슈 커뮤니티에 낭만이 있던 시절 14 01:46 1,613
3018886 유머 (영상재생시 배경소리시끄러움)참새가 너무 뚠뚠하고 동그래요 6 01:40 662
3018885 이슈 14년전 오늘 발매된, 지연 X JAY B "Together" 1 01:39 112
3018884 이슈 90년대 후반 서울 길거리 풍경.jpg 18 01:37 1,668
3018883 유머 2020년 중국 아파트 보수공사중 풀에 가려진 거대 불상 위에 아파트가 지어진걸 발견함 16 01:36 2,295
3018882 이슈 중고차 거래 희망편 끝판왕 1 01:35 697
3018881 기사/뉴스 시내버스 타보니.. 위협 운전·욕설·화풀이 쉽게 목격 (2026.3.10 / 뉴스데스크 / 전주MBC) 10 01:33 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