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대로 협상 테이블이 유독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던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베테랑 외야수이자 한국시리즈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선보인 김강민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상황에서 구단은 두 가지 방향을 모두 고민해야 했다. 하나는 우승 보너스, 하나는 2023년도 연봉이었다. 우승 보너스부터가 복잡했다. 김강민이 2022년 가을에 보여준 대활약을 고려하면 최상위 등급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구단이 원칙을 깨야 했다.
포스트시즌 배당금 구조가 원인이었다. KBO는 포스트시즌 전체 수입 중 제반 비용을 제외한 50%를 정규시즌 우승 팀에게 먼저 준다. 그리고 나머지 50%를 포스트시즌 성적에 따라 5개 팀에 지급한다. 이런 구조인 까닭에 SSG는 우승 보너스 산정에도 정규시즌 고과를 포함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이 구조에서 타격을 받는 선수가 김강민이었다. 김강민은 2022년 정규시즌에서는 84경기 출전에 그쳤다. 정규시즌 고과는 출전 경기 수와 타석, 이닝 등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정규시즌 고과가 고려된다면 최상위 등급을 받기 어려웠다는 게 당시 구단 관계자들의 이야기였다.
영웅적인 활약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SSG는 활약상을 고려해 김강민을 일단 원칙에서 예외로 한 뒤, 우승 보너스는 최상위 등급을 매겼다. 대신 연봉 협상에서는 양보할 수 없다고 버텼다. 김강민의 2022년 연봉은 1억6000만 원인데, 구단의 고과 시스템에 2022년 성적을 돌리면 오히려 삭감 대상자라는 것이었다. 반대로 김강민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마지막 잔상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동결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협상이 해를 넘어 캠프 출발 직전까지 갔던 이유다.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준비했나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시점,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테이블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구단도, 김강민도 은퇴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당장의 연봉과 별개로 자연스럽게 추후 코치직, 지도자 연수 등 여러 논의가 있었다. 구단이 먼저 제안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약간의 '어음성' 성격이 있었던 셈이다. 현역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김강민도 결국 추후 구단의 대우를 기대하며 동결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게 올해 1월의 일이었다.
올 시즌을 거치며 김강민의 은퇴가 다가오고 있다는 정황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선수의 지난해만 활약상이 못했다. 또한 최지훈이라는 주전 중견수가 탄생하고, 수비력이 좋은 외야수인 김정민의 지명, 그리고 공격에서는 구단 내 최고 유망주라는 김창평의 외야 전향, 대수비와 대주자 몫을 능히 해낼 수 있는 채현우의 제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구단은 김강민 없는 2024년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강민 또한 현역의 마지막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현역을 연장하느냐, 지도자 생활로 접어드느냐에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팀에서 현역을 이어 갈 생각이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어쨌든 여기서 끝을 내고 싶었다. 이게 시즌 중반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 SSG는 중대한 첫 번째 실책을 저지른다. 1월 협상 당시 김강민의 '은퇴 이후'를 거론했던 구단이, 정작 '은퇴 이후'의 설계에 대해 확실한 준비를 해놓지 못한 것이다. 이를 테면 지도자 연수를 가려면 언제부터,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할지를 알아봐야 했다. 말을 먼저 꺼냈다면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는데 생각이 어떤가"라고 물어보는 게 제대로 된 프로세스다. 하지만 구체적인 준비가 부족했다. 1월 당시 구단과 이야기했던 것이 머리에 생생했던 김강민으로서는 구단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두 번째 단추가 잘 들어갈리 만무했다. 현재 R&D 센터장으로 보직이 변경된 김성용 단장은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한 직후 팀의 최선임인 추신수 김강민과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강민에게 지도자 연수 등의 확정된 대안 없이 팀의 샐러리캡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짜 그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샐러리캡을 이야기하며 연봉의 삭감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전달한 건 선수에게는 은퇴 종용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모든 폭발의 시작점으로 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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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SSG의 세 번째 실책은 연이어 나온다. 매번 협상이 오래 갔던 전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2차 드래프트 전 어떤 방식으로 빨리 합의를 해야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구단의 움직임이 굼떴다.
당시 SSG는 2022년 통합우승을 이끈 김원형 감독을 사실상 경질하고,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을 때였다. 또한 코치들이 줄줄이 팀을 떠난 상황에서 새로운 코치들을 영입하는 것도 급선무였다. 말 그대로 일이 많았을 때다. 하지만 협상의 주체인 김성용 단장이 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김강민을 챙기지 못했다는 게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실제 추신수와 함께 만난 자리 이후로는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 정도 더 만난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단독으로 만난 자리는 한 번뿐이었다는 것이다. 김강민으로서는 초조함을 넘어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이어졌다.
뭔가의 합의도 지지부진했다. 협상에서 양자의 눈높이가 다른 건 꼭 프로야구단뿐만 아니라 우리네 일상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실제 SSG과 김강민은 코치 초임 연봉, 지도자 연수 기간 등을 놓고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그런데 구단이 준비한 게 마땅치 않으니 제대로 된 설득이 될 리 만무했다. 가장 결정적인 실책이자, 네 번째 실책은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2차 드래프트 35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것이다. 안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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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책은 마지막까지 계속됐다. 다섯 번째 실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구단의 안을 제대로 풀어놓지도 못한 것이다. 초임 연봉, 지도자 연수 기간 등에서 이견이 있자 SSG 내부에서는 영구 결번을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한다. 일반 은퇴라면 타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들과 유의미한 차이를 두기 어렵지만, 영구 결번 선수라면 아무래도 차이를 둘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강민의 영구 결번 자격은 논란이 있었지만, SSG 내부에서는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쳐 2000경기 동안 팀에 공헌한 부분은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던 터다. 설사 성적이 슈퍼스타급은 아니어도, 팀을 위해 20년 넘게 근속하며 공헌한 선수는 영구 결번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상징도 만들어주려 했다. 4월 초 은퇴 경기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만남 자체가 적은 가운데, 협상 책임자인 김성용 단장이 2차 드래프트를 전후해 구단이 가진 안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지 못하면서 마지막 기회조차 날렸다. 김강민은 플레잉코치를 하다 적당한 시점에 지도자 연수를 떠나겠다는 안을 역제안한 상태였으나 SSG는 플레잉코치에 대해서는 줄곧 난색인 상황이었다. 플레잉코치가 부담스럽다면 대화를 통해 뭔가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대화까지 부족하니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이 짙어지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길게는 1년, 짧아도 20일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김강민은 지쳐갔다.
결국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하고, 자신의 의견도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기미가 없는데다 한화의 러브콜까지 오자 김강민의 마음도 움직였다. 김강민이 '원클럽맨'의 영광스러운 칭호, 그리고 어쨌든 언젠가는 올 것이었던 코치와 지도자 연수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팀을 떠난 배경이었다. 구단에 대한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본 SSG도 김성용 단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자신이 총책임자였던 김강민 협상 테이블에 실패한데다 잡음까지 만든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특히 다섯 번째 실책이 경질의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는 추측이다. 구단 내부에서도 "우리가 안을 만들었다고 누가 믿어주겠느냐"는 자조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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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KBO를 시끄럽게 할 만한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고 있었던 손시헌 퓨처스팀 감독을 데려오는 과정에서도 NC와 껄끄러운 관계를 남겼다. 여기에 이숭용 감독 선임 이후 배영수 송신영 강병식 코치 등 이미 다음 시즌 해당 팀의 구상에 포함된 코치들을 연이어 데려오거나 접촉했다. 해당 구단들은 더 중요한 보직으로 가기에 이해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남겼으나, 야구계 전반적으로는 "SSG가 상도의 없는 짓을 하고 있다"며 매서운 눈으로 바라본다. SSG를 바라보는 리그 전체의 시선이 너무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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