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6살에 과거 시험에 합격해서 관직에 나아감
(당시로서는 꽤 늦은 나이)
* 포인트 = 문관이었음 (나머지 우리나라 3대 대첩의 주인공인 을지문덕 장군, 이순신 장군 다 무신)

차근차근 승진해서 62세의 나이에 예부시랑(오늘날 외교부 차관정도) 되심.
2. 거란이 침입했을 때, 다른 대신들은 다 항복하자고 하는데 혼자 끝까지 저항하자고 주장하심

"폐하께서 거란군의 손에 잡힌다면 나라의 존망이 흔들리게 됩니다. 물러나서 (몽진하여) 서서히 이길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항복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하여,
현종은 나주로 몽진했고, 정말 거란이 물러나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음.
이후에 현종은 "당시에 강공(강감찬)의 계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온 나라가 모두 야만인이 되었으리라"라고 말하기도 했음.
3. 거란이 소배압을 압세워 10만 군사로 재침략했을때, "물을 이용해서" 군사 1만명으로 큰 피해를 입힘 (흥화진 전투)

근데 이게 장군으로 출전한 첫번째 전투에서 세운 계책.
왜냐면 문신이었으니까... (=행정직 공무원이었는데 현장 투입된 첫날에 이런 공 세우신거)
4. 국경에서 싸우면서도, 개경에 군사 보내서 수도 방비까지 하심.
(실제로 요나라-거란- 군대는 무작정 개경으로 가려던 계획. 적의 계획 모두 간파한거)
5. 그리고 사실 전쟁 전에 왕께 말씀드려서 경상도에 있던 본인 땅을 '자식을 전쟁에 보낸 사람들'에게 나눠주시기도 함.

이유 = 전쟁에 나간 사람들이 집걱정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6. 아무튼 개경까지 온 거란군.
개경 함락 못시킨 소배압이 고려측에 철수한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이었음), 절대 방심X. 속지 않고 척후병 모두 잡아냄
7. 퇴각하는 거란(요) 군대 예상하고 미리 귀주에서 기다림.

요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고 대승을 거둠. 이것이 우리나라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
귀주대첩 당시 강감찬 장군 나이 72세
귀주대첩 이후로 동북아에 균형이 잡힘.
7. 귀주대첩 이후, 강감찬 장군이 쉬고싶다고 하니까 현종이 쉬지 말아달라고 부탁함. 그러니까 진짜로 은퇴 안하고 조정 나오셔서 업무보심.
이 때, 개경에 나성 축조하는 일을 지휘. (그리고 10년 뒤 세상을 뜨심)
8. 낙성대라는 대학교를 건..ㄹ

은 아니고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신 곳.
시호는 인헌. 관악구 인헌 초등학교, 인헌중학교, 인헌고등학교 모두 강감찬 장군 시호 딴 것.

↑ 관악구 마스코트 강감찬 장군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방영되어서 예전에 쓴 글 끌올함 ㅋㅋ
감히 고려 최고의 장군 (문신으로 과거 급제 하셨지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듯..
~끝~
+ 강감찬의 도시 관악구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