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세종이 아들들의 혼인 문제에 (다수) 간섭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필요있는 간섭이었다는 사실을 송씨부인을 통해 증명하고자 써봄..ㅇㅇ
쟁점은 킹세종은 왜 막내며느리 쫓아냈나.. 단순히 막내아들을 싸고돌아서 결혼 문제까지 간섭하는 독한 시아버지였냐는 거임....
우선 내용을 이어나가기 앞서 앞서 세종이 며느리를 쫓아낸 예시를 들어보자면

쫓겨난 며느리 no. 1 휘빈김씨 죄목은 세종 재위시절 세자였던 문종의 총애를 얻기 위해 뱀의 정액을 닦은 천을 속옷으로 만들어 입고.. 신발을 태워 잿가루 물을 마시게 하는 등...기타등등

쫓겨난 며느리 no.2 순빈봉씨 죄목은 음주, 폭행, 동성애.... 기타등등
이렇게 세종은 시대를 벗어난 사고 며느리들을 쫓아내버린 초 스펙타클한... 전적들이 있었고 세종이 내쫓은 이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영응대군 부인 송씨의 이유도 궁금한 역시 현대의 역사가들이 실록과 기록들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검증해봤음



위의 기록 상황에서는 세종이 이미 송씨를 쫓아내고 영응대군을 재혼시킬 상대를 고르며 나온 기록이며 위의 기록을 바탕으로 세종이 송씨부인을 쫓아낼 법했던 이유를 추리할 수 있음
1. 악질이 있는자 - 해당사항: 문종의 첫 세자빈들
2. 음란함이 있는자 - 해당사항: 문종의 전 세자빈들
3. 불충 불효를 저지른 자 - 해당사항: 이하동문
4. 세계가 평미한 자 - 해당사항: 한마디로 정신이 정상을 가출해버린이라는 의미인데 이 경우는 문종의 전 세자빈들도 포함되지만... 세종이 강제이혼 시킨 임영대군의 부인과 가장 가까움
#임영대군의 부인에 대해 잠깐 풀어보자면.... 임영대군의 부인 남씨는 12살이 지났는데도 소변을 가리지 못하였고 눈빛이 바르지 못한데다가 혀가 심히 짧아 말이 어눌하며 가끔 정신질환을 보이기도 하였다. 종실에서는 그런 딸을 속인 채 대군의 부인으로 시집보낸 남지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상은 조용히 이혼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서 군부인 남씨는 혼인한 지 한 달 만에 이혼을 했다. 군부인 남씨는 친가, 외가에서 비슷한 병 경력을 지닌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유전적으로 타고난 병인 듯하다.
---세종실록 15년 6월 14일-----
물론 세종이 위의 쫓겨난 며느리들을 저격하며 고를 대상을 선별한 것은 아닐것이지만 그저 며느리들에게 세종이 기피한 문제점들이 다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으로 봐도 의미가 깊다는 것이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킹세종은 지금부터 좀 억울한 입장일 것임..ㅇㅇ
(순빈봉씨도 임영대군의 정신질환 며느리도 여러번 넘어가 주고 조용히 이혼시킨 세종이 송씨를 쫓아냈다는 것은 송씨에게도 무슨 문제가 존재하긴 했었을 것이므로...왜냐면 킹세종이니까..)

송씨부인의 이혼 사유는 실록에 의하면 질병으로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석연찮은 점은 여러 기록을 비교해봐도 송씨에겐 이혼을 당할 만큼의 치명적인 질병같은 것이 없었음.....
(몬가 적당히 둘러댄 것 같은 스멜이...)
암튼 그래서 일단 송씨의 폐출 원인이 질병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됨.. 다만 송씨의 성격에 대해 실록에 전해지는 그 기록에 따르면 송씨는 성품이 거칠고, 질투심이 많았으며, 인색하고 그 정도가 주위로부터 인심을 얻지 못하였을 정도였고, 그럼에도 사찰과 관련된 일이라면 재물을 아끼지 않는 성품이었다고도 전해지고 있음..
성품이 거칠고... 질투심이 많았으며 인색하고... 하나하나가 주옥같이 킹세종의 눈 밖에 벗어날만.... ;

일단 그럼에도 어린날의 영응대군은 송씨를 아꼈음. 아빠 죽고나서 바로 재혼까지 후려갈길 정도로...
하지만 그 전에 알아야 될 쟁점은 영응대군과 송씨부인이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는 제3자가 끼어들었다는 것임...
그게 누구냐고?

수수양대응애
수양대군ㅋ
(이 인간이 등장하면 별로 좋지않든데...)

영응대군은 어릴 때부터 세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아들이었음 세종이 그렇게 예뻐한 까닭에는 영응대군이 다른 대군들에 비해 어린데다 성격도 유난히 조심스러우며 소심하고 대략적인 표현으로 순해서였다고 함 (이거 딱 휘둘리기 안성맞춤이라는...)
이런 성품의 영응대군이 아빠가 이혼시킨 부인을 자의적으로 다시 만날 순 없었음.. 아마 시도조차 못했을거라고 보이는데 그대로 둘이 영영 이별해버리려고 했다면 일종의 전제조건이 필요했다는 것임
(두 사람의 재결합에 적극 뛰어든 누군가)

수양이 없었다면 말임..ㅎ
한 마디로 영응대군과 송씨가 다시 만나고 재혼까지 하는 그 과정엔 수양대군이 깊숙히 개입되어져 있었음.
실제로 영응대군 부인 송씨는 수양대군 쪽 집안사람이었고 반면, 영응대군과 재혼하고 이혼당한 정씨는 경혜공주 남편 정종의 친누나라는 점에서 단종과 경혜 공주의 측근이었음.

재결합하게 된 송씨는 세조 측근이라 정씨와의 이혼 반대가 단종을 지키려는 사육신 계열에서 나왔다는 점도 흥미로움
수양대군이 권력을 손에 쥐자마자, 그러니까 계유정난이 일어난 지 한 달 뒤 수양대군은 단종의 어명을 빙자하여 춘성부부인 해주 정씨를 폐출하고 송씨를 다시 영응대군의 부부인으로 불러들인다. 법적으로 완전한 재결합이 이루어진 셈이다.
- 역사 칼럼중에서

다시 말해서 송씨부인은 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추정하기를 세종이 쫓아낼 정도로 성격적인 부분에서의 결함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세종 사후 영응대군과의 재결합이 오로지 둘만의 세기의 사랑으로 된 걸까 의문점이 들 수 밖에 없는 것...

상대가 대군이라 해도 측실의 지위는 한계가 있는 데다 승부욕과 질투심이 유난히 강한 정실 송씨는 버거운 존재였을 것이다. 영응대군도 송씨를 두려워하여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어도 송씨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그나마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 영응대군이 송씨를 사랑하였으나, 송씨의 성품이 질투심이 많고 거칠어서 송씨를 두려워하였다. 영응대군이 어떤 사람에게 헐은 옷 한 벌을 주고 싶어도 송씨의 허가를 얻지 못하면 끝내 주지 못할 정도였다. 영응대군이 죽을 무렵에 첩에서 낳은 아들에게 옷 장식품을 주었는데, 송씨가 뒤에 그것을 모두 도로 빼앗아 버렸다. 영응대군이 죽자 송씨는 보물을 팔아서 사찰을 짓는데 보태니, 그 경비가 1백만이었다.
- <예종실록> 예종 1년 10월 6일 기사 중에서

재결합에 성공한 송씨는 대방부부인(帶方府夫人)에 봉작되어 영응대군의 저택으로 들어와 거만(巨萬)의 부와 권력을 행사한다. 부왕이 사랑한 아들이라는 이유로 세조는 아우 영응을 각별히 예우하고, 송씨는 그 관계를 백분 활용한다. 송씨는 자신의 친정 조카를 단종의 비(정순왕후 송씨)로 들이는가 하면, 왕실 행사에 부부의 저택을 제공하고 미래 권력인 어린 왕자들을 솔선하여 양육한다. 성종과 연산군도 왕자 시절에 이 집에서 자랐다. 국중 거부로 이름난 영응대군이 3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자 그 재산은 송씨 차지가 되었다. 권력과 재물에 탁월한 감각을 가진 송씨의 행보는 영응대군 사후 더 활발해지는데, 왕실을 등에 업고 송사 중인 재산·전답·노비 등을 차지하고, 왕실 재산인 답십리의 채전(菜田)과 양천의 초장(草場)을 불하받는 방식이다. -역사 칼럼중에서
정리해보자면.... 영응대군은 12살 꼬꼬마 시절에 결혼한 송씨부인을 첫사랑으로 좋아했지만 둘째 형(수양)의 도움으로 재결합하고 나서는 어린 날과는 다르게 부인을 두려워하고 유약하게 타고난 성격탓인지 휘둘리는 듯한 기미가 없지 않았음.
앞서 세종이 보기에도 성격이 드센 편이었던 송씨는 전혀 얌전해보이지가 않고 착해보이지도 않고.. look like.... 마치 쫓아낸 며느리들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고...결국 똑같이 쫓아내버렸던 송씨 부인은 세종의 우려?대로 영응대군 사후 엄청난 사고들을 많이도 쳤음.....
----승려와의 간통추문
부인 송씨는 남편 사후 군장사의 중 학조와 간통하여 물의를 빚었다 군장사란 절에 올라가 설법을 듣다가 계집종이 깊이 잠들면 승려 학조와 사통을 했다 (예종실록) 1498년 7월 12일에 김일손은 “또 이른바, ‘영응대군 부인 송씨(? ~ 1507년)가 군장사(窘長寺)에 올라가 법(法)을 듣다가 시비(侍婢)가 잠이 깊이 들면 승려 학조(學祖)와 사통(私通)을 했다.’는 것은 박경(朴耕)에게 들었다.’고 공초하였다. (연산군일기)
-----권력남용



이 외에도 송씨는 영응대군의 부인이라는 지위로 여섯 왕으로부터 막강한 비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한 송씨는 임금의 뜻에 영합한 대사헌을 움직여 송사가 일어난 재산·전답·노비 등을 가로채기도 하면서 80여살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고함ㅇㅇ...
그래서 의문이 든다

킹갓제너럴 임페리얼 킹세종의 사람 보는 눈은 과연 틀렸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