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주에게 용돈을 줄 수 있는 노후와 줄 수 없는 노후는 삶의 질 자체가 다르다.”(조선닷컴 독자 A씨)
70대가 되면 근로 활동을 접고 ‘완전은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소득이 끊기는 70대의 삶은 현역 때 얼마나 통장 관리를 잘 해두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젊었을 때부터 노후 준비를 체계적으로 했으면 편안한 70대를 보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쓴맛만 보게 된다. 말년에 나의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 주는 것은 부동산보다는 현금흐름이다.

27일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와 함께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토대로 70대 가구의 금융자산 현황을 분석해 봤다.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는 표본가구 수가 많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한국 고령세대의 부동산 편식은 주요국 중 압도적 1위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4%를 넘는다. 미국(28%)의 두 배가 넘고 일본(38%)보다도 훨씬 높다.
하지만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에 자산이 쏠려있는 노년 가정은 ‘돈맥경화’에 시달리기 쉽다. 당장 생활비가 모자라니 자녀에게 손벌리기 일쑤다. 부모와 자녀 모두 괴롭다. 은퇴자 커뮤니티에는 이런 하소연이 이어진다. “퇴직 전엔 아파트가 최고인 줄로만 알았다. 현금 자산이 가장 큰 힘이라는 걸 몰랐다.” “노후에는 현금 흐름이 좋아야 한다. 고가 아파트에 살면서 현금이 없으면 골치 아프다. 세금과 건보료가 꽤 많이 나가니까.”
통계청 자료에는 ‘집 한 채가 전재산’이라는 70대의 냉혹한 현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70대 고령가구의 42%는 저축액이 1000만원 미만이었다. 저축액이 1000만~3000만원 미만인 경우는 22.3%였다. 10가구 중 6가구는 저축액이 3000만원 미만인 셈이다. 저축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는 12.3%에 불과했다.
정보현 NH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융자산 비중이 높은데 노후 생활비를 금융 포트폴리오로 준비하기 때문”이라며 “저성장·고령화라는 거대한 사회 트렌드를 고려한다면, 부동산 투자는 자본차익보다는 현금흐름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70대는 젊었을 때부터 금융자산을 축적해 왔다. 일본 금융홍보중앙위원회에 따르면, 70대 가구의 46%는 저축 금액이 1000만엔(약 9000만원) 이상이다. 100만엔 미만인 가구 비중도 25%에 달해 높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1000만엔이 넘게 저축을 보유한 고령가구가 훨씬 더 많았다.
현금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70대는 한국 은퇴자들만큼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생계 고민이 크진 않다. 그보다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는 데에 더 관심을 갖는 편이다. 건강만 허락된다면 밖에 나가서 일을 해서 사회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다양한 지역 모임에 참여해 활동하고, 은퇴 후 나만의 취미를 찾는 데에도 열심이다.
그런데 70대의 평균 저축액 분포를 좀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일본 사회의 잔인한 ‘저축 격차’가 드러난다. 3000만엔(약 2억7000만원) 이상 보유한 70대 가구는 전체의 18%에 달했는데, 아예 통장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무저축 고령가구 역시 전체의 18%에 달했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일본 가계는 금융자산 비중이 60%를 넘어 부동산 비중이 높은 한국과는 정반대 상황”이라며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노후 빈곤율이 가장 높지만 금융자산 보유가 부족해 노후빈곤율이 단기간에 개선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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