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푸른 눈의 외국인, 호머 헐버트
안그래도 조선을 향한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금치 못했던 그를 분기탱천하게 만든 일이 있었으니...
바로 일제의 은행 사기 사건!

1903년 고종 황제는 금괴와 엔화로 내탕금(비자금)을 예치
엔화로는 242,500엔, 마르크화로는 510,000마르크 정도 되는 돈
이후 1908년에는 원리금 총액이 100만 마르크
오늘 날 가치로 환산하기가 모호하지만 그알에서는 약 500억원이라 추정한다


그런데 군주의 비자금이라는 게 막 사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었고
전차, 전기 등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근대식 은행 설립하는데 투자하는데 쓰였다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당한 고종 황제는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쓰기 위해
1909년 호머 헐버트를 통해 내탕금을 찾아 오게 시켰으나
상하이 주재 독일 영사를 찾아간 헐버트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데...
덕화 은행(도이치 은행)에 맡겨둔 고종 황제의 돈이 이미 인출되었다는 것
누가 감히 황제의 돈을 훔쳤는가?
범인은...

통감부 총무장관 쓰루하라 사다키치 鶴原定吉

통감부 외무총장 나베시마 케이지로 鍋島桂次郞

이윤용 feat. 이완용의 형제
일본과 친일파가 합작해 날조한 서류로 돈을 빼간 것
그러나 그 배후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지긋지긋한 그 이름

이토 히로부미


이토는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고종 황제의 주변을 조사하다 내탕금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결국 독일 공사관과 덕화은행은 고종 황제가 가지고 있던 예치금 증서는 받지 않은 채
일본이 날조한 서류만으로 예치금을 지급해버린다


1907년 11월 15일 독일 공사가 본국 정부에 보낸 보고서에는
“고종 황제가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의전관 김초헌을 본인에게 보내 황제의 승인 없이는 돈을 아무에게도 내주지 말 것을 요청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진 헐버트는 변호사를 찾아 가기도 했지만
당시 미국에서 일본의 입김은 상당히 컸고 결국 그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헐버트는 포기하지 않고 내탕금의 예치, 인출, 통감부의 수수에 관한 증빙 자료를 사본으로라도 다 확보하여
1943년 〈고종 황제 예치금 진상보고서Statement of Facts〉를 작성해
스태거스John W. Staggers 변호사에게 맡겼고
나중에 스태거스 변호사가 이승만 정부에 헐버트가 남긴 서류를 보냈지만
전쟁 등이 겹쳐 한국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헐버트는 1948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내탕금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겠소.
내가 고종 황제의 수임권자로서 돈을 받게 되면 즉시 그 돈을 한국에 돌려줄 것이니 알아서 처분하시오.” 라면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오.”라며 편지를 끝맺었다

헐버트는 1949년 광복절 행사로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의 소원대로 한국땅에 묻혔지만 묘비명 없이 50년 가량 방치되다
1999년 50주기 추모식에서 드디어 묘비명을 갖게 된다.
"선각자요 한국의 친우인"
서울 합정동 외국인 묘지에서 헐버트의 묘비를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천팔백만 한국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싸워왔으며,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의 한민족에 대한 충심은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다트머스 대학 - 신상기록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