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텐트) 양면 올리셔야 해요. 올려드릴까요?”
12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출입문과 창문이 모두 닫힌 텐트를 향해 보안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수 초간 아무 반응이 없던 텐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텐트 하단 지퍼가 천천히 열리더니, 10대로 보이는 남녀 두 명이 방금 잠에서 깬 듯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변명하듯 “자느라…”라고 말하며 텐트 문을 열었다. 보안관은 잠에서 깬 이들을 달래듯 “여기가 야영 공간이 아니라서 그래요. 불미스러운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라고 설명했다.
시행 5년째를 맞은 이른바 한강 ‘밀실(密室)텐트’ 단속 현장을 취재진이 따라가봤다. 대부분의 텐트는 규정대로 문을 개방해놨지만, 10여개의 텐트는 ‘4면 중 2면 이상을 반드시 열어놔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있었다. 보안관이 “계십니까, 문 양쪽 열어야 해요”라고 말하자 시민들은 “아, 네”라고 답하며 황급히 문을 여는 모습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텐트 문을 닫고 있다가 단속반에 걸린 이모(17·여)씨는 “자는데 추워서 문을 닫았다. 문을 닫으면 안 되는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보안관은 “올려줄까요?”라고 물으면서 시민 대신 직접 텐트 문을 열기도 했다. 여의도 한강공원 노병권 보안관은 “단속을 하다 보면 커플의 애정행각 때문에 민망한 순간도 있다”며 “문을 열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거나 ‘잠시 후에 오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떠서 정리할 시간을 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한강 텐트 단속은 2019년 4월 22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 한강공원 보전 및 이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며 시작됐다. “텐트 문을 닫고 애정행각을 벌여 민망한 경우가 많다”는 민원이 잇따른 데 따른 조치였다. 기존엔 밤 9시까지 설치할 수 있던 텐트 허용 시간도 오후 7시까지로 앞당겨졌다.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서울시가 유일하게 시행 중이다.
다만, 이를 어길 시 과태료가 100만원 이상으로 높게 책정되면서 텐트 단속은 도입 당시부터 논란 대상이었다. 특히 텐트 2면 이상 개방 규정의 경우, 단속반이 돌아다니며 텐트마다 일일이 들여다보고 문 열기를 강제하는 행위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반발도 터져 나왔다.
단속 5년째를 맞은 현재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차모(21·여)씨는 “(애정행각을) 다른 데 가서 하면 되지 굳이 여기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단속하는 게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마찬호(32·남)씨는 “공공장소인 만큼 지킬 건 지키는 게 맞다. 텐트를 설치하게끔 편의를 봐줬으면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속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와 텐트 안에서 치킨을 먹고 있던 김모(33·남)씨는 “더워서 후드티 속에 러닝셔츠만 입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흉할까 봐 문을 닫고 싶다”며 “문을 열라고 강제하는 건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말했다. 전모(34·남)씨는 “솔직히 공원에서 키스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걸 국가가 통제하는 건 웃긴 일이다. 그런 논리면 한강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들도 다 차 문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발했다.
독일에서 온 마리아(22)는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공원에서 누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독일인 에디(23)는 “커플끼리 스킨십이나 키스를 하는 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문을 억지로 열게 하는 건 사생활 침해 같다”고 말했다.
이런 여론을 고려해 서울시는 과태료 부과 등 처벌보다는 계도에 주력하고 있다. 계도 건수는 2019년 2만 126건으로 가장 많았고, 2020년 1만 5117건, 2021년 1만 5672건, 2022년 1만 1345건, 올해 9월까지 5300여건으로 꾸준히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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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닫고 키스만 했다면 단속까지 안했겠지
단속까지 시행하게 된 이유가 뭐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