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강력사건은 일어나지 않는 서울 한강변 아파트촌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건축가였고, 부부는 꽤 오랫동안 안락하게 살았습니다. 아내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요.
남편의 항변은 "사랑해서 죽였다"였습니다. 이 말만큼 황당한 거짓말이 또 있을까 싶지만, 배우자가 간병인 노릇까지 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남편은 부동산 등 아내 앞으로 된 재산을 모두 포기했고 범행 직후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아내를 간병한 시간은 무려 6년. 그 사이 아내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암세포는 이미 온몸의 뼈와 뇌로 전이된 상태였죠. 항암 치료를 받던 중 아내에게는 파킨슨병과 뇌전증, 간질,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종양내과 등 10여개 과목에서 진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아내가 보인 증상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스스로 걸을 수 없었고 잇몸이 괴사해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왼쪽 눈의 시력도 거의 잃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회사를 휴직했고 간호에만 전념했습니다. 24시간 아내의 고통을 온전히 지켜봐야 하는 그에게 아내는 "죽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고 정신이 들면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고 싶다고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는 넘어선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도 요양병원 입원을 권유합니다. 그런데 왜 이 남편은 간호를 고집했을까요?

하루가 멀다 하고 요양병원 학대 사건이 보도되는 세상입니다. 요양병원에 가족을 보내는 순간 수명이 2년은 줄어든다는 말도 있을 지경이죠. 이미 장인어른을 '안 좋게' 보낸 기억이 있는 그로서는 아내마저 그런 식으로 잃을 순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결심'부터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남편은 아내가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을 수 있도록 검색도 했고요.

범행 직후 남편은 두 시간 넘게 자살을 시도하다가 친구의 119 신고로 살아남았습니다. 아내의 친구들은 상속을 포기한 채 구속된 피고인의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장모님은 증인으로 나서 피고인의 구명을 도우려다 장남의 반대로 그러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미 인지장애가 찾아온 아내, 안락사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성을 잃어버린 남편. 재판 내내 차분하게 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삶과 죽음 그 어떤 것에도 의욕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요? 아내 없이 남은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그에게는 이미 형기이고 복역 중인 것 같았습니다.
영미권 사람들은 '치매'를 '롱 굿바이(the long good by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헤어짐을 오랫동안 준비한다는 의미로, 가슴이 참 먹먹해지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작별 인사가 길어지는 동안 상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처 주고 못되게 행동합니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치매'라는 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도, 간병하는 가족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이 사건 남편의 경우엔 오롯이 혼자 이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사회제도도, 다른 가족도 남편이 만족할 만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못했습니다.
검찰은 여러 사정을 양형에 반영해 8년을 구형했는데 사법부의 판단은 어떨까요? 1심 판결은 이달 12일 오후 2시에 선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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