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행적을 미화하고 성폭력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상영금지 등의 제지를 당하고도 일부 지지자들의 왜곡된 추모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박 전 시장의 유족들이 경남 창녕에 위치한 박 전 시장의 묘소를 '민주화의 성지'로 알려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이장한다는 소식이 여성신문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공동묘지인 모란공원은 고인이 된 민주화운동가와 노동운동가가 안장되는 묘지로 유명하다. 노동운동에 힘쓴 전태일 열사·이소선 어머니를 비롯해 YH 여성 노동자 김경숙, 민주화운동가 박종철, 통일운동가 문익환, 노회찬 국회의원 등 150여명이 이곳에 묻혔다.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씨는 주위 관계자들에 이장 소식을 알리며 "시장님께서도 뜻을 모아 한 시대를 함께 고민했던 많이 동지들이 계신 곳이어서 좋아할 거다"며 이장식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장 소식이 알려지자 다수의 정당과 시민단체는 "성범죄를 저지른 박 전 시장을 민주열사에 견주어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유족 측의 2차 가해"라며 이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4월 1일 오전 7시 언론 취재를 피해 이장을 강행했다. 묘지는 전태일 열사가 묻힌 자리의 뒤편에 자리 잡았다. 오후에는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 등 최측근 수십 명이 참석해 안장식을 거행했다. 추모사를 맡은 전모 목사는 "박 시장님은 가장 예수님과 부처님을 닮으신 분"이라며 박 전 시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측근들은 박 전 시장 사망 3주기인 7월 9일 빗길을 뚫고 다시 모란공원으로 결집했다. 박원순 선거캠프 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수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수천수만의 지지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 온 너에게 저열한 주홍글씨가 씌워질 리 없다"며 박 전 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달 28일에는 박 전 시장의 묘비가 검은색 스프레이로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유족과 지지자들은 "고인이 된 박 전 시장을 두번 죽이는 비윤리적 행위"라며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안장식과 추모식에서 발생한 2차 가해 발언에 대해서는 침묵하던 이들이 묘비 훼손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진영에 따라 선택적으로 윤리적 잣대를 들이민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곧이어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은 그의 성범죄를 부정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전국에 상영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5월 박원순 다큐멘터리 제작위원회인 '박원순을믿는사람들'은 영화 '첫 변론'의 포스터를 공개하며 박 전 시장 사망 3주기인 7월에 극장 개봉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공개한 예고편에서는 박 전 시장 측근들의 입을 빌려 성폭력 피해자가 비서실에서 일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박 전 시장이 사망해 반론을 펴지 못하니 (성폭력이라고) 마음대로 얘기하는 것이라는 등 피해자의 진술을 왜곡하는 발언이 담겨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시민단체 등 각계의 규탄에도 불구하고 제작발표회와 전국시사회가 강행됐다. '첫 변론'을 만든 김대현 감독은 다큐멘터리 상영을 반대하는 이들을 군부독재에 빗대며 "개봉 취소 요구는 야만적이고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상영을 막기 위해 7월에는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8월에는 서울시와 피해자가 서울남부지법에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시는 국가기관과 사법부가 박 전 시장의 성희롱 등의 행위를 인정했음에도, 영화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을 담아 심각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판사 김우현)는 '첫 변론'의 필름을 받아 면밀히 분석한 끝에 지난 20일 피해자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판결에 따라 제작진 측은 다큐 영상과 음원을 파일형태로 복제하거나 그 복제된 파일을 담은 DVD, 비디오 CD, 비디오 카세트를 제작, 판매, 배포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은 "다큐멘터리를 통한 주된 표현내용은 진실이 아니고 만일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 공개될 경우 피해자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등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인 김대현 감독과 박원순을믿는사람들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결정은 사실적·법리적 측면에서 수긍하기 어렵다"며 "즉각 가처분이의절차를 밟을 예정이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2021년 직권조사 결과 박 전 시장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동을 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 유족 측은 인권위가 피해자 주장만 듣고 범죄자로 낙인을 찍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인권위의 조사를 인정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유족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냈다. 여기에 '첫 변론' 제작진의 가처분 이의제기까지 더해져 피해자는 성폭력 이후로도 끝없는 법정 다툼에 고통 받고 있다.
박은하 직장갑질119 젠더폭력특별대응위원 위원장은 지난 6월 46개 시민단체가 진행한 '첫 변론' 개봉 규탄 기자회견에서 "가해자는 죽었지만 망령이 돼 피해자를 괴롭히고 있다"며 "박원순이 살아생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이고 피해자의 노동환경을 지옥으로 만든 사람"이라며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그의 죽음을 변호하는 건 명백한 2차 가해"라고 강조했다.
전문 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10603?cds=news_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