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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토스 머니스토리 공모전 DRAFT 2023 수상작 <비혼주의자의 축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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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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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무슨 사이야?

 

30대에 들어서니 가계부에 가장 많이 찍히는 지출처는 다름 아닌 ‘축의금'이다. 현금영수증조차 안 떼어 주는 순수한 지출. 경조사비 예산을 따로 잡아 놓았지만 내 가계 사정에 따라 친구들이 결혼 날짜를 정해주는 건 아니니 예산을 초과하기 일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또 있겠냐마는, 청첩장을 받으면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축하할 일이 많은지! 최근에는 축구단에 가입했는데, 30명의 축구단 친구에게 청첩장을 받을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축구보다는 소인원인 풋살을 할 걸 그랬나!

 

축의금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암묵적인 룰이 있다. 한 취업 정보 사이트의 조사에 의하면, 동호회 일원이나 직장 동료에게는 5만 원, 개인적으로 자주 소통하는 직장 동료라면 10만 원, 거의 매일 연락하는 친한 친구는 20~3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사실상 정찰제 아닌 정찰제인데,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축하 받는 사람과 축하 하는 사람 사이에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맞아. 나도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그 후로 먼저 연락하기 어렵더라고.” 여러 해 전 결혼을 한 언니들의 증언이 아직도 생생하다. 5만 원을 할까 10만 원을 할까 골머리를 앓을 때면 차라리 대놓고 “우리, 무슨 사이야?”하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달의 체면치레 고지서입니다

 

흔히 축의금 5만 원은 ‘최소한의 체면치레’라고들 한다. 식을 올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밥값 빼면 남는 것 없는 금액이지만, 귀한 주말 낮을 바쳐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정장을 빼입느라 배가 조여 잘 들어가지도 않는 밥을 먹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초대받은 첫 번째 결혼식은 갓 졸업한 동아리 선배의 결혼식이었다. 좋아하는 참치김밥과 500원 저렴한 야채김밥 사이에서 매일 갈등하는 대학생이었으니 그 최소한의 체면치레가 퍽 부담이었다. 선배는 “축의금은 됐으니 와서 뷔페나 많이 먹고 가”라며 마음을 써줬지만, 다들 “너는 축의 얼마 할 거냐” 하고 속닥대는 것을 듣고 눈치껏 축의 봉투를 준비했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가는 게 처음이니 ‘하객룩’이라 불리는 차림새를 준비하는 데에도 돈이 들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몇 주 동안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주린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향했다. 대단히 차릴 것도 없는 체면인데 값이 제법 비쌌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부터는 끼니를 거르는 대신 커피값을 꼬박 아껴 축의 봉투에 담는다. 벌이가 늘어서 상대적으로 체면 값이 싸졌지만, 챙길 사람이 늘었으니 부담은 그대로다. 갑자기 옆 팀 과장님이 밥을 사러 온다는 소식이라도 들으면 흔들리는 동공을 감출 수 없다. 또 고지서가 날아드는구나!

 

돌려받지 못할 축의금

 

나는 비혼주의자,

그러니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비혼주의자마다 비혼을 지향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나 역시 결혼을 원치 않는 이유가 여럿이다. 그중에서 하나를 꼽아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과 경제 공동체를 맺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있다.

 

내게 결혼은 마치 원치 않는 옵션을 끼워 파는 패키지여행 상품 같다. 물론 운이 따라준다면, 매력적인 데다 정서적으로 교감이 잘 되는 상대와 생활 습관도 꼭 맞고 소비성향과 투자성향까지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면이 맞춘 듯 마음에 쏙 드는 상대가 있더라도, 경제적으로 중요한 결정과 그에 따르는 리스크는 온전히 나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소중한 사람의 조언은 귀담아듣겠지만,

 

“아니, 나는 돌려받지도 못하는데 회사에서 경조사비랍시고 내 복지포인트를 멋대로 떼어가더라? 뉘신 줄은 알고 축하를 하고 싶다고요.”

 

30대 비혼주의자 친구들은 쌓인 게 많다. 결혼만이 경사도 아니고 조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겠지만, 30대에게 제일 가까운 경조사는 역시 결혼이다. 비혼주의자 친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의 답례품이 책상에 올려져 있으면 양심 고백하고 돌려줘야 하는지’ 같은 시답잖은 고민을 나눈다. 다달이 결혼식 축의금 내는 게 아까워 죽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면 ‘역시 저렇게 사회성이 떨어져서 결혼을 못 하나 봐' 하는 열불나는 소리를 들을 것이 빤하기 때문에 우리끼리 모였을 때나 남몰래 외치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런 고민을 익히 들어 아는 결혼주의자 친구들도 내게 청첩장을 내밀 때 조심스럽다.

 

“축의금, 안 해도 괜찮아.”

 

사려 깊은 친구의 제안이 고맙긴 하지만, 친한 친구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나라고 없을까.

 

“걱정하지 마. 비혼식 올려서 회수할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반은 농담이었고, 친구도 농담으로 받았으나 그렇다. 그 비혼식은 현실이 되었다.

 

왜 비혼식을 올렸냐고요? 다진 마늘이 녹아서요

 

사실 친구들이 비혼식 얘기를 농담으로 받았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비혼식을 올리겠다’는 말을 꽤나 자주 했다. 하객으로 참석한 결혼식에서 ‘사랑하는 친구가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기를 응원한다’는 축사를 들으며 고인 눈물을 훔치던 나는 축사와 축가가 있는 잔치를 꿈꿨다. 비록 결혼과 같은 계기는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앞으로도 잘살아 보겠습니다. 응원해 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자리를 꼭 한번쯤 만들고 싶었다. 아끼는 마음을 꼭 말로 표현해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들으면 더 감동적인 법이니까.

 

물론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결혼주의자보다 비혼주의자 비율이 더 높은 친구 무리는 ‘서로 축의금을 언제 주고받을 것이냐’라는 안건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역시 식당이라도 빌려서 작은 잔치라도 열어야 축하할 맛이 나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렸다.

 

신혼집 가전을 장만하는 사람처럼 들떴으나 이미 모아둔 현금을 죄 집값에 보태기도 했고, 오래 쓸 가전은 의미를 담은 선물로 받고 싶다는 생각에 우선 중고로 샀다.

 

본래 임시방편이긴 했지만, 어쩜 딱 한 해 만에 냉장고가 망가졌다. 주방 공간이 애매해서 냉장고를 북향의 작은 베란다에 내놓고 썼는데, 겨울 한파를 버티지 못하고 냉동고가 탈이 났다. 기껏 소분해 놓은 다진 마늘이 녹아 진액이 되어 버린 것을 보자, 잊고 있던 비혼식이 떠올랐다. 추울 때는 베란다가 자연 냉동고 역할을 해줄 테지만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었다. 날이 풀리기 전에 축하와 응원의 마음이 담긴 새 냉장고가 필요했다.

 

이일의 비혼식, ‘이립잔치’에 초대합니다

 

비혼식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립잔치에 초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모바일 청첩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립(而立)은 서른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마흔을 가리키는 불혹, 쉰을 가리키는 지천명과 마찬가지로 논어에서 유래했다. 공자는 서른이 되자 마음이 확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립을 맞아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을 세웠으니, 앞으로도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해달라는 메시지를 담아 초대하는 글을 썼다. 초대하는 글 아래에는 덕담 전하기, 수필집 후원, 이립잔치 참석, 독립 선물 보내기 이렇게 네 가지 참여 방법을 제시했다. 참여 방법을 선택하고 ‘참여하기’ 버튼을 누르면 참가 비용을 확인 후 입금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거 청첩장을 가장한 위시리스트 아냐?”

 

청첩장을 받아 본 동생이 핀잔을 주었지만, ‘축의금을 얼마 준비해야 할지’, ‘언제 봉투를 건네야 할지’ 하는 소모적인 눈치 게임을 하게 만드느니 뻔뻔스러운 게 낫다고 생각했다. 덕담 전하기(0원)부터 식기세척기 선물하기(33만 원)까지, 각자의 벌이와 씀씀이에 맞춰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담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청첩장을 보내니 “정말 비혼식을 하는구나” 하고 흥미로워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 친구는 청첩장은 사진 보는 재미인데 사진이 빠졌다며 영 아쉬워했고, 또 한 친구는 덕담 게시판에 서른 편이 넘는 덕담을 써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결혼도 안 하는데 친구들이 축하해 주러 오냐”며 마냥 신기해했다. 청첩장을 통해 참여 인원을 파악하고 나니 남은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식순을 정하고 스태프를 섭외하는 내내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에 부풀었다

 

규모의 경제는 잔치에도 통하는 말이다. 한창 유행처럼 번지던 ‘작은 결혼식'은 규모가 작은 결혼식이지 결코 예산이 작은 결혼식은 아니랬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작은 비혼식도 적자였다. 사진을 찍을 스튜디오도, 화려한 드레스나 메이크업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잔치 준비에 들어간 비용을 축의금으로 메꾸고도 내 돈 250만 원가량을 더 썼다. 여유롭게 잔치를 즐길 수 있도록 하객 인원의 두 배를 수용할 수 있는 식장을 넉넉한 시간 대여하고, 먹고 마실 것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오후 두 시에 시작된 비혼식은 아홉 시가 다 되어서 주인공인 내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진 탓에 끝났다.

 

사실 계획할 때부터 예상된 적자였는데, 최근에 결혼식을 치른 친구에게 “결혼식은 원래 적자냐”고 슬쩍 물어보니 “의외로 많이 남는 장사”란다. 비결은 집안 어른들과 어른들의 하객들이라고. 하지만 내가 축하와 응원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데면데면한 친척 어른들이 아니라 정말로 나의 삶을 함께할,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뿐이었다

 

비록 적자 엔딩이었으나,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비혼식에 참석한 친구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다. 하객 상당수가 비혼주의자였기에 나의 친구라는 공통점 외에도 서로 통하는 데가 많았던 모양이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지만, 어쩌면 하나의 비혼인 공동체가 생긴 셈이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나이 들어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사는데, 이제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유독 지치는 날, 친구들이 선물해 준 냉장고를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 ‘나를 아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날 받은 축하와 응원으로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기운이 다하면 또 잔치를 열어야지. 그땐 주머니 사정이 더욱 넉넉할 테니 청첩장에 ‘축의금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고 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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