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748
이데올로기가 출산을 지배한다 - 시사IN
지난 2월27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출생아 수는 전년 (35만7800명)보다 8.6% 감소한 32만6900명이다. 이에 따라 작년 합계출산율(0.98명)은 역대 최저였던 전년(1.05명)보다 더 낮아졌다. 이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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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출생주의
반출생주의(反出生主義, Antinatalism 또는 anti-natalism)는 인간의 출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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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은 좋고, 죽음은 더 좋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
— 하인리히 하이네
“ 선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렇게나 노력하면서, 아이들의 모든 고통을 예방하는 확실하면서도 유일한 방법이, 그 아이들을 애초에 태어나지 않게끔 하는 것이란 사실까지는 대부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그토록 적다는 점은 매우 유별난 일이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은 그 아이들의 부모가 될 뻔한 이들의 이익에 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위해서는 최선의 결정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은 존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치열한 고통을 경험할 필요도 없이,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영원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 데이비드 베너타
테오필 드 지로: 벨기에의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 동지와 함께 '비부모의 날'을 정해 기념했다. 그는 태어나지 않을 권리, 그리고 이것이 이미 침해된 경우 좋은 부모에게 태어날 권리를 제창했다. 또한 아이를 낳는 대신 입양을 권한다.
반출생주의자는 인간이 아이를 만듦으로써 탄생되는 존재에게 그와 미리 합의되지 않은 고통 가능성을 강제하고, 이는 도의적으로 옳지 않기에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출생주의적 담론에 대해 혼자 자살하면 되지 않냐는 조롱이 곧잘 등장한다.
고통과 죽음을 구태여 후손에게 강요하지 말자는 반출생주의의 취지를 망각한 논점 일탈이자 본능적 거부감 표출에 불과하다.
반출생주의를 극단적인 소극적 공리주의(negative utilitarianism)나 사망주의(pro-mortalism)로 오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반출생주의자로서의 이상적인 행동은 자살이나 학살이 아니라, 계몽과 입양이다
- 이미 시작된 인생을 중단하는 것과 인생을 시작하지 않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46]
- 개인에게 죽음이 생존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지만, 죽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해악이다.[47]
- 자살은 고도로 진화한 생존 본능 때문에 매우 괴롭고 힘든 일이며, 안락사 역시 제한적이다. 또한 주변인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만큼 죽음이 실제가 어떻든 두려운 해악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필멸자를 낳아서는 안 될 이유가 된다.
- 심대한 고통이나 자살 충동을 겪는 사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고통받게 된 개인이 자살하면 그만이니 그럴 위험을 감수하고 낳아도 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고통·불행·악이 상존하는 곳이고, 고아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아이들도 많다. 또한 인구도 과밀하여 인간이 충분히 귀하게 여겨지지 못한다.
인간은 끊임 없이, 동의 없이 부모에 의해 이 세상에 강제로 던져진다
현대의 인구과잉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인권 문제,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 문제, 인간의 영리를 위해 잔인하게 희생당하는 가축과 실험동물 문제 등 동물 윤리•생명 윤리•환경 윤리와도 관련이 있다.
반출생주의를 통해 인구과잉으로 인한 기아 문제, 자원 고갈 문제 등을 해결 또는 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35] 하지만 이들은 자살 혹은 살인을 권장하지도 않고, 강제 불임 수술을 통해 사람들이 출산을 하지 못하게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 최대한 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가자고 할 뿐.
저출산을 재앙이라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출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것이 신생아에게 자신의 재앙을 떠맡기는 일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태아라면 더 많아진 노인을 먹여 살릴 납세자, 풍부한 수의 새로운 군인, 특정 정당의 이익을 편들 유권자가 되기 위해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했지만, 저출산 문제를 고심하는 이들에게 인간은 수단이다.
페미니스트 학자 13명이 쓴 〈재생산에 관하여〉(마티, 2019)에 발제문을 쓴 머브 엠리는 여자라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인류의 통념은 “존재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예컨대 출산은 모든 인간에게 고귀한 것이 아니라 이성애·인종주의·계급·가족이라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더 잘 반영하며 불임과 관련한 보조 생식기술(assisted reproduction)은 주류 이데올로기에 더욱 친화적이다. 보조 생식기술만큼 이데올로기로서의 생명정치 (biopolitics)의 실상을 더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한편 여성 작가 16명이 한 편씩 글을 보탠 〈나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현암사, 2016) 역시 반출산주의를 실천한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과 함께, 출산이 존재론과 무관한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거듭 웅변한다. 재즈 음악가인 남편과 작가인 아내는 각기 가장 중요한 연주와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지만, 여성만이 정작 ‘중요한 것’을 빠트린 것으로 비난받는다.
인도 종교의 윤회 사상도 반출생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고통의 유전적 재생산을 은유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불교·자이나교 등은 세상을 고통으로 가득찬 곳으로, 인간을 윤회의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이는 반출생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독교 주류는 반출생주의(Antinatalism)가 배격하는 출생주의(Natalism)를 지지한다. 이 때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일렀다는 구절을 그 근거로 든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에 의해 강제로 주입당한 자유의지로 인해 창조주의 맘에 안 드는 일을 하고 에덴에서 추방당했다는 이유로 인류 전체에게 연좌제로 원죄를 적용,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대속' 신앙을 요구한다.
그러나 의외로 성경에는 반출생주의를 대변하는 듯한 구절이 곳곳에 존재한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전도서4장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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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을 또 만들어야 할 도덕적 의무는 없지만, 불행한 사람을 또 만들지 말아야 할 도덕적 의무는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결정 때문에 태어난 누군가가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인해 그 결정을 후회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결정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가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누가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만, 누가 태어나지 않아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베너타 -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
자녀는 부모의 즐거움을 위한 애완동물도, 대리만족을 위한 아바타도, 노후를 위한 보험도 아니다. 그러나 국가·사회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태어날 아이의 높은 불행 가능성을 억지로 외면하고, 부모의 번식욕 충족과 기성 세대의 노후 부양만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ㅎㅊㅊ 우리동네목욕탕
그냥 이런 의견도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고 보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