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투자했다 (12)
이승연 이노폴리스파트너스 책임심사역
한경 긱스(Geeks)의 [그래서 투자했다]는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이승연 이노폴리스파트너스 책임심사역이 웹툰 스튜디오 '박태준만화회사'를 만든 더그림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한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웹툰 산업은 K팝이나 K드라마와는 달리 'K'가 붙지 않는 한국의 고유한 디지털 만화 장르다. 코로나 시국은 전통적인 출판 만화 시장의 점유율을 넘어서는 계기가 됐다.
더그림엔터테인먼트는 네이버웹툰의 1위 CP사다. 브랜드 이름인 ‘박태준만화회사’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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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역으로서 웹툰 시장의 개화와 플랫폼의 성장을 보면서 더욱 핵심이 되는 것은 지식재산권(IP)의 가치, 이를 생산하는 CP 사업자와 그 소속의 작가들이라고 생각했다. IP의 2차 사업화와 작가의 질 좋은 작품 생산을 위한 CP 사업자의 시스템이 보다 진보해야 한다.
웹툰 특성상 주 80컷 이상의 작업을 개인이나 개별 팀이 담당했다. 매주 스케줄이 있는 바쁜 연예인이 매니저, 프로듀서, 코디가 없이 혼자서 해야하는 수준 이상의 업무 로드를 소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수준이다. 이는 독자들에게 잦은 휴재와 낮은 퀄리티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작가의 건강 문제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얼짱' 출신 박태준…사업가 면모 갖춰

'얼짱' 출신 박태준 더그림엔터테인먼트 대표.
지난해 6월, 더그림엔터테인먼트의 경영 총괄인 안형수 이사와 초도 미팅을 진행했다. 회사는 박태준 작가의 대표작 '외모지상주의'에서 '싸움독학' '인생존망' '퀘스트지상주의' '김부장' 등 서로 맞닿아 있는 느슨한 세계관 속 신작들이 몇 편 되지 않는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요일별로 '히트'를 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업적 성공의 배경에는 독자의 재미를 충족하고 웹툰 형식의 특성을 이해해 소위 '후킹 컷'이라고 부르는 결제율을 높일 수 있는 노하우가 톱티어 작가들에 의해 내재화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4대 연예기획사에서 중독성 강한 후크송을 통해 성공을 거두고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의 위상을 높인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8월 중순, 투자 검토를 위해 회사 소속 작가 두 명, 작가 영입 담당 매니저, 그리고 박태준 대표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박 대표와는 3시간에 이르는 긴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모습과 달리, 박 대표는 생각보다 총명한 눈빛과 차분한 느낌을 풍겼다. 유튜브나 언론에 노출된 모습보다 실제로는 정제된 사업가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콘텐츠 스타트업들을 이끄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만나보면 능숙한 달변가의 면모를 보기는 어려웠지만, 박 대표는 꽤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소위 ‘빠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대주주로서 그는 대표이사라는 직함에 집착하기보다는 회사가 잘되는 방향에 대한 공감이 있었고, 박태준이라는 브랜드 밸류가 가져다주는 무게감과 부담을 동시에 인지하고 있었다. 전문경영인의 영입에 대한 고려를 할 정도로 매우 열려 있는 사업가였다. 본인이 감이 떨어질 수 있고, 몇 년 정도면 한계점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겸손함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 그가 매우 호감이었다. 웹툰이라는 형식으로 한국의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와 같은 걸작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고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했다. 판타지 장르를 그려서 이를 달성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에 덩달아 가슴이 설렜다.
연예기획사들이 그러하듯 더그림엔터테인먼트 역시 톱티어 작가들의 주 단위 작품 포스팅을 위해 액션 포즈를 잡는 것, 콘티를 짜는 것, 배경, 채색, 후킹 컷 등 많은 과정에서 분업화돼 있었다. 박태준 작가, 유호빈 작가, 병장 작가 등 핵심 인력이 CP(Chief Producer)라는 역할을 맡는 개념을 도입했다. 걸그룹을 담당하는 프로듀서처럼, 작품 전반을 지휘하는 CP제도를 적용, 인하우스에서의 실적을 견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례로 외부 작가들과 협력하는 공동 제작 모델의 작품이 약 50% 수준의 '작품 당 마진'을 보인 반면, CP제도를 도입한 인하우스 작품은 80%를 넘어서는 마진율을 보이며 회사의 수익성을 높였다. 이렇게 다섯 편 내외의 적은 작품 수로 더그림엔터테인먼트는 2021년 기준 29.3%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투자 이후, 생태계 뒤흔들다
투자 직후 회사는 공격적으로 외부 작가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대부분이 요일별 5위권, 10위권 이내의 성적들을 기록했다. '백XX' '캐슬2' '얼짱시대' '촉법소년' '사형소년' '보스였음' 등 대다수 신작이 히트를 쳤고 출시 예정인 기대작들이 더 많은 상황이라 장르의 다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외모지상주의' 등의 작품은 성공적으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출시됐고, 이를 외주 제작한 업체는 기업공개(IPO) 이후 상한가를 찍었다.
IP의 2차 사업화에서도 훌륭한 첫 단추를 뀄다. 지난달 '빵빵이의 일상' 팀은 유튜브 채널 쇼트폼 실적을 기반으로 여의도 더현대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폭발적인 인파가 몰려들어 '슬램덩크' 흥행을 며칠만에 앞질렀다고 한다. 단순 웹툰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쇼트폼의 영역에서도 콘텐츠 IP의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콘텐츠 분야 투자는 호흡의 길이에서 업의 KSF(핵심성공요인)를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짧은 길이의 K팝은 프로듀서의 역량이, 긴 호흡의 드라마는 스토리에 생명을 부여하는 작가의 역량이, 중간 길이의 영화는 PD와 작가가 KSF가 된다. 웹툰은 한 화의 호흡은 짧되 그 전체 스토리의 호흡은 수 년을 가져가고, 에피소드별로 몇 개월의 호흡을 갖는다. 즉, 전통적 콘텐츠의 KSF가 공존해 작가 외에 PD의 역할이 KSF가 될 수 있다고 봤다.
K팝의 성공으로 4대 연예 기획사가 글로벌 무대를 공략에 나선 선봉장이 됐듯, 더그림엔터테인먼트는 웹툰의 해외 진출 선봉장이 되리라 믿고 있다. 시장은 이제 대한민국의 표준에 맞춰 열리기 시작하고, 회사는 그 표준 속에서 압도적인 1위 업체로 전진하고 있다. 더그림엔터테인먼트는 마치 BTS, 블랭핑크, 뉴진스가 한 곳에 함께 있는 것과 같은 웹툰계의 최대 CP사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881864?sid=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