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성과 사회성은 어떻게 다를까?
2022.12.15 이송용 교육가
(상략)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싹싹하게 대하는 아이를 보고 사회성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성과 사교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교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사람을 쉽게 사귄다. 스스로가 다수의 인간관계를 원하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맞춰주는 일에 능숙하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그걸 사회성이라 볼 수는 없다.
어떤 아이가 사교적인가 그렇지 아니한가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교적이지 않게 태어난 아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많은 친구가 필요하지 않고, 한두 명의 친구면 족하다. 또 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덜 사교적인 사람일 뿐이다. 나의 여섯 자녀들만 보아도, 한 배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어디 가서 5초 만에 새 친구를 만드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구석에 가서 혼자 책을 보는 일을 즐기는 자녀도 있다.
그렇다면 사교성과 사회성은 어떻게 다를까? 태어나는 기질의 영역이지만, 사회성을 훈련을 통해 갖춰지는 성품의 영역이다. 처음부터 사회성을 갖고 태어난 이는 어디에도 없다. 반대로 이 사회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사회성을 갖추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성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누구나 잘 한다. 오히려 사회성은 자신의 선호도과 관계없이 자기가 마땅히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응당한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아이의 사회성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졌는가를 보지 않는다. 그건 사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교적으로 태어난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 갖고 태어나지 못한 것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부당하지 않겠는가? 대신 그가 자기 부모를 또 자기 형제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면밀히 살핀다. 그것이 그의 본모습이며 그의 사회성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 마땅히 풀어가야 할 관계를 제대로 풀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성의 영역이다.
밖의 사람들에게 친절한 아이가 자기 부모에게 친절하다. 그러면 안심이다. 가장 바람직한 사회성이다. 친구들에게 친절하지 못한데, 자기 동생에게도 친절하지 못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최소한 일관성이 있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외부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절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꾸준하게 가혹한 태도를 보인다면, 이것은 최악의 사회성이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안에서도 못나고 밖에서도 못난 이를 볼 때,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까?’ 하고 긍휼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위선에 대해서는 다르다. 위선이 드러난 사람에 대해서는 동정 없는 철퇴를 내린다. 왜냐하면 그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하지 않은 사람이며, 자신의 능력으로 오히려 사람들을 기만했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사람의 위선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옛말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안의 바가지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밖의 바가지에만 우리의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믿건 간에, 실상 안의 바가지와 밖의 바가지는 하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자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가 가정에서부터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어느 한 순간에 그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위선이 그 위선하는 이의 인격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겉모습과 본모습이 다른 상황이 오래갈수록 자괴감만 더해지고 자존감에는 중대한 상해가 간다. 쉽게 말해, 위선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스스로 행복하다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적으로 보았을 때, 가정과 학교의 삶에 있어서 위선이 보이는 아이가 있다면, 가장 신속한 도움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아이가 밖에서 잘 한다고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서 보이는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다. 아이의 진짜 모습을 챙겨야 그의 행복도 챙겨줄 수 있다.
https://www.ekoreanews.co.kr/news/articleViewAmp.html?idxno=64337
2022.12.15 이송용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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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싹싹하게 대하는 아이를 보고 사회성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성과 사교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교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사람을 쉽게 사귄다. 스스로가 다수의 인간관계를 원하기에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맞춰주는 일에 능숙하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그걸 사회성이라 볼 수는 없다.
어떤 아이가 사교적인가 그렇지 아니한가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교적이지 않게 태어난 아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많은 친구가 필요하지 않고, 한두 명의 친구면 족하다. 또 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덜 사교적인 사람일 뿐이다. 나의 여섯 자녀들만 보아도, 한 배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어디 가서 5초 만에 새 친구를 만드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구석에 가서 혼자 책을 보는 일을 즐기는 자녀도 있다.
그렇다면 사교성과 사회성은 어떻게 다를까? 태어나는 기질의 영역이지만, 사회성을 훈련을 통해 갖춰지는 성품의 영역이다. 처음부터 사회성을 갖고 태어난 이는 어디에도 없다. 반대로 이 사회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사회성을 갖추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성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누구나 잘 한다. 오히려 사회성은 자신의 선호도과 관계없이 자기가 마땅히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응당한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아이의 사회성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졌는가를 보지 않는다. 그건 사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교적으로 태어난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 갖고 태어나지 못한 것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부당하지 않겠는가? 대신 그가 자기 부모를 또 자기 형제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면밀히 살핀다. 그것이 그의 본모습이며 그의 사회성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 마땅히 풀어가야 할 관계를 제대로 풀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성의 영역이다.
밖의 사람들에게 친절한 아이가 자기 부모에게 친절하다. 그러면 안심이다. 가장 바람직한 사회성이다. 친구들에게 친절하지 못한데, 자기 동생에게도 친절하지 못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최소한 일관성이 있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외부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절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꾸준하게 가혹한 태도를 보인다면, 이것은 최악의 사회성이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안에서도 못나고 밖에서도 못난 이를 볼 때,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까?’ 하고 긍휼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위선에 대해서는 다르다. 위선이 드러난 사람에 대해서는 동정 없는 철퇴를 내린다. 왜냐하면 그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하지 않은 사람이며, 자신의 능력으로 오히려 사람들을 기만했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사람의 위선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옛말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안의 바가지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밖의 바가지에만 우리의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믿건 간에, 실상 안의 바가지와 밖의 바가지는 하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자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가 가정에서부터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어느 한 순간에 그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위선이 그 위선하는 이의 인격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겉모습과 본모습이 다른 상황이 오래갈수록 자괴감만 더해지고 자존감에는 중대한 상해가 간다. 쉽게 말해, 위선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스스로 행복하다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적으로 보았을 때, 가정과 학교의 삶에 있어서 위선이 보이는 아이가 있다면, 가장 신속한 도움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아이가 밖에서 잘 한다고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서 보이는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다. 아이의 진짜 모습을 챙겨야 그의 행복도 챙겨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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