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인물편〉은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https://img.theqoo.net/YNLqHI
라파엘로가 로마에 오고서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라파엘로는 예고 없던 비에 쫄딱 젖었다. 그가 물줄기를 피하고자 찾은 곳은 작은 빵집이었다. 그 안에 소녀가 있었다. 갓 구운 빵을 꺼내오고 있는 마르게리타 루티였다. 라파엘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챙 모자를 들고서 루티를 봤다. 밤처럼 검은 눈, 풍성하고 윤기나는 머릿결, 곧게 편 허리가 들어왔다. 깜짝 놀란 루티의 얼굴은 곧 포도주처럼 붉어졌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 사이 두 사람 틈에서 사랑의 종이 울렸다. 라파엘로가 테베레강을 지나던 중 우연히 멱을 감던 루티를 봤고, 곧장 첫눈에 반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 둘의 나이 차는 12살로 추정된다. 10~17살 차이로 보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다른 사람과 약혼했다.
상대는 마리아 비비에나였다. 사실 라파엘로는 오래 전부터 교황청의 유력 인물인 메디치 비비에나 추기경에게 "내 조카와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추기경과 꽤 깊은 우정을 쌓았던 라파엘로는 마지못해 그 강요 같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라파엘로 입장에선 마리아가 훨씬 더 현실적인 상대였다. 마리아 뒤에는 돈과 권력이 있었다. 그의 명예로운 삶은 더 명예로워질 수 있었다. 반면 루티는 시에나 출신 빵집 주인 프란체스코의 딸이었다. 루티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롱과 비난만 받을 게 뻔했다.
그런데도 라파엘로는 루티를 포기하지 못했다.
라파엘로는 마리아가 아닌 루티와 손을 잡았다. 마리아와의 결혼을 3~4년씩 늦췄다. 바쁘다는 말로 계속 버텼다. 1518년, 라파엘로는 결심한 듯 루티 앞에서 붓을 들었다. 라파엘로는 루티에게 터번을 올려줬다. 한 손으로는 가슴, 한 손으로는 다리 사이를 가리도록 했다. 정숙한 비너스,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의 자세였다. "그대로 있어줘. 나를 믿어." 라파엘로의 귓속말에 루티는 쑥스럽게 미소 지었다. 라파엘로는 춤추듯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는 루티 뒤에 은매화 나무를 그렸다. 비너스의 상징이었다. 모과나무도 함께 그렸다. 세속적 사랑의 상징이었다.
라파엘로는 막바지쯤에 붓질을 망설이는 듯했다.
그는 이내 마음을 굳힌 듯 다시 붓을 댔다. 루티의 왼손에 반지가 그려졌다. 루티의 팔에는 리본이 새겨졌다. 'RAPHAEL URBINAS(우르비노의 라파엘로)'. 라파엘로가 한 글자씩 또렷하게 박은 서명과 함께였다. 이는 루티를 향한 사랑의 맹세로 보인다. 그 다짐을 역사에 영원히 박제한 것이다. 그림은 관능적이다. 루티의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하고 있다. 얇고 투명한 베일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라파엘로가 신화적 여성 말고 벗은 여성을 그림에 담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다. 이 그림은 훗날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제빵사의 딸)'로 알려진다. 라파엘로는 루티를 성모 마리아, 성녀 세실리아,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 등의 모델로도 삼았다고 한다. 라파엘로에게 루티는 비밀의 연인이자 한껏 드러내고 싶은 뮤즈였다.
https://v.daum.net/v/20230415002026839
제목이 저 내용이라 저 부분만 퍼왔는데 전문 보면 그냥 라파엘로의 일생임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인물편〉은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https://img.theqoo.net/YNLqHI
라파엘로가 로마에 오고서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라파엘로는 예고 없던 비에 쫄딱 젖었다. 그가 물줄기를 피하고자 찾은 곳은 작은 빵집이었다. 그 안에 소녀가 있었다. 갓 구운 빵을 꺼내오고 있는 마르게리타 루티였다. 라파엘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챙 모자를 들고서 루티를 봤다. 밤처럼 검은 눈, 풍성하고 윤기나는 머릿결, 곧게 편 허리가 들어왔다. 깜짝 놀란 루티의 얼굴은 곧 포도주처럼 붉어졌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 사이 두 사람 틈에서 사랑의 종이 울렸다. 라파엘로가 테베레강을 지나던 중 우연히 멱을 감던 루티를 봤고, 곧장 첫눈에 반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 둘의 나이 차는 12살로 추정된다. 10~17살 차이로 보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다른 사람과 약혼했다.
상대는 마리아 비비에나였다. 사실 라파엘로는 오래 전부터 교황청의 유력 인물인 메디치 비비에나 추기경에게 "내 조카와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추기경과 꽤 깊은 우정을 쌓았던 라파엘로는 마지못해 그 강요 같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라파엘로 입장에선 마리아가 훨씬 더 현실적인 상대였다. 마리아 뒤에는 돈과 권력이 있었다. 그의 명예로운 삶은 더 명예로워질 수 있었다. 반면 루티는 시에나 출신 빵집 주인 프란체스코의 딸이었다. 루티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롱과 비난만 받을 게 뻔했다.
그런데도 라파엘로는 루티를 포기하지 못했다.
라파엘로는 마리아가 아닌 루티와 손을 잡았다. 마리아와의 결혼을 3~4년씩 늦췄다. 바쁘다는 말로 계속 버텼다. 1518년, 라파엘로는 결심한 듯 루티 앞에서 붓을 들었다. 라파엘로는 루티에게 터번을 올려줬다. 한 손으로는 가슴, 한 손으로는 다리 사이를 가리도록 했다. 정숙한 비너스,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의 자세였다. "그대로 있어줘. 나를 믿어." 라파엘로의 귓속말에 루티는 쑥스럽게 미소 지었다. 라파엘로는 춤추듯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는 루티 뒤에 은매화 나무를 그렸다. 비너스의 상징이었다. 모과나무도 함께 그렸다. 세속적 사랑의 상징이었다.
라파엘로는 막바지쯤에 붓질을 망설이는 듯했다.
그는 이내 마음을 굳힌 듯 다시 붓을 댔다. 루티의 왼손에 반지가 그려졌다. 루티의 팔에는 리본이 새겨졌다. 'RAPHAEL URBINAS(우르비노의 라파엘로)'. 라파엘로가 한 글자씩 또렷하게 박은 서명과 함께였다. 이는 루티를 향한 사랑의 맹세로 보인다. 그 다짐을 역사에 영원히 박제한 것이다. 그림은 관능적이다. 루티의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하고 있다. 얇고 투명한 베일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라파엘로가 신화적 여성 말고 벗은 여성을 그림에 담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다. 이 그림은 훗날 '라 포르나리나(La Fornarina·제빵사의 딸)'로 알려진다. 라파엘로는 루티를 성모 마리아, 성녀 세실리아,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 등의 모델로도 삼았다고 한다. 라파엘로에게 루티는 비밀의 연인이자 한껏 드러내고 싶은 뮤즈였다.
https://v.daum.net/v/20230415002026839
제목이 저 내용이라 저 부분만 퍼왔는데 전문 보면 그냥 라파엘로의 일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