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는 대기업 VC그룹 계열의 광고대행사인 VC기획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우아하게, 때론 처절하게 그린 작품이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정상에 오르는 주인공 고아인은 그 위치에 가기 위해 맹렬하게 싸우고 외로움도 고통도 혼자 감내한다. 마지막에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내적 성장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결론을 맺지만, 당연히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는 않다.
엄마에게 버림 받고 어릴 적부터 고된 인생이었던 고아인은 돈이 없어 명문대학교에 합격하고도 지방대를 나와야 했고, VC기획에 만점으로 입사해 19년간 앞만 보고 달려 국내 최고의 광고인이 됐다. 하지만 학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원 인사에서 밀려날 뻔 했고, 가까스로 임원이 됐지만 1년짜리 얼굴마담 임시 임원 자리였다. 그래도 고아인은 버텼고, 결국 위기에서 살아남아 VC기획 사장 자리까지 올라간다.
배우 이보영은 이런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봤다. 물론, 겉은 강해보이지만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고아인이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은 채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고, 남에게 독설을 서슴지 않으면서 독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고아인을 보며, 이보영은 "아인이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잘 버텨내고 싶다"며 고아인도 자신도 응원했다.
이보영은 어느덧 연기 경력 20년이 된 배우다. 그 20년이란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었겠나.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으로 얼굴이 안 움직이고, 감독한테 혼나는 게 겁이나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버티다 보니 언제부턴가 연기가 재미있어졌고 현장이 좋아졌다. 그렇게 배우 이보영도 고아인처럼 버티고 버텨 여기까지 왔다.
연기를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이제 작품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 평소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조차 일로 느껴져서, 그 자체에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보영이다. 하지만 이번 '대행사'는 그녀에게 특별하고 고마운 드라마다.
고아인과 닮은 구석은 없다지만, 이보영은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고아인과 다른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아인을 보며 제가 생각이 났어요. '얘도 이렇게 버티고 있고, 나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고, 앞으로도 잘 버텨야겠다. 정말 잘 버텨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모두가 다 하루하루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요? 내 삶을 책임지게 되는 순간부터, 그 짐을 어깨에 얹고 살아가는 그 순간부터, 계속 버티는 거잖아요. 그래서 옛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인이도 잘 버티고, 나도 잘 버티자며."
이보영은 배우 생활 20년동안 잘 버텨온 자신을 감쌌다. 연기를 중간에 그만둘 뻔 했던 경험이 있기에, 지금까지 버틴 것에 남다른 의미를 두게 된다. '연기 대상'까지 수상한,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오른 이보영이 처음에는 연기가 적성에 안 맞았다니, 자칫 소중한 배우 하나를 잃을 뻔 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 이 쪽 일이 정말 적성에 안 맞았어요. 도망치고 싶었고, 현장에 가기 싫었고, 감독님께 혼나는게 겁이 났어요. 열심히 준비해서 가도 카메라 앞에 서면 얼굴이 안 움직이고,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게 싫었어요. 아인이가 초년 시절에 깨지는 걸 보며, 제 옛날 생각을 했어요. 다들 그렇잖아요?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 그렇게 힘든 시기가 있죠. 전 그 때 기계적으로 끌려 다니면서 연기를 하다보니, 무섭고 두렵고 바보 같았어요. 그러다 일을 쉬게 됐는데, 역시 사람은 일이 없으니 간절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절 찾아주는게 감사하고, 연기하는 게 재밌고, 제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지금도 현장에 가면 너무 설레고, 그 현장 공기가 너무 좋아요. 진짜 내가 된 거 같고, 누군가 날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이보영은 남편인 배우 지성과 '대상 부부'로 불린다. 부부가 모두 연말 방송사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자타공인 연기력을 인정받은 부부다. 부부가 모두 연기를 잘하니, 서로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오빠(지성)는 이번 드라마 재밌다고 했어요. 전 객관화가 안되니, '진짜 재밌냐'고 묻고 그랬죠. 평소 연기에 대해서는 서로 관여하지 않아요. 각자 최선을 다하는 걸 아니까, 작품 고르는 것도 전혀 터치하지 않죠. 서로 자극제가 되지도 않아요. 솔직히 연애할 땐 자극이 있긴 했어요. 제가 연기를 열심히 하게 된 게, 오빠가 열심히 하는걸 보고 그게 큰 자극이 돼서 였거든요. 근데 같이 살면서는, 잘되면 서로 좋은 거니까 그냥 서로 박수쳐 줄 뿐이죠.(웃음)"
단아하고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에 똑 부러지는 성격 때문인지, 이보영은 전문직 여성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법조인 캐릭터를 수차례 맡았고, 이번 '대행사'에서도 카리스마와 지성을 겸비한 대기업 여성 임원 캐릭터로 전문성을 보여줬다. '사연 있는 전문직 캐릭터'가 유독 많이 들어온다는 그녀다.
"저도 다양한 거 하고 싶죠. 근데 잘 안 들어와요. 망가지는 것도 하고 싶고, 밝은 것도 하고 싶은데, 제가 그렇게 안 보이나 봐요. 전 사연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런 캐릭터만 들어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딱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전 대본을 읽었을 때 재미있거나, 제가 연기하고 싶은 신이나 확 꽂히는 신이 있으면 하고 싶다고 느껴요. 그런데 차기작(TVING 오리지널 '하이드')도 또 전문직에 사연 많은 캐릭터네요.(웃음) 그 대본을 재밌게 봤거든요."
마지막으로 이보영은 세상의 고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고아인을 연기하며 '얘는 진짜 왜 이렇게 살까'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뭐가 행복인지, 뭐를 즐겨야 하는 지, 세상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고 사는 친구였죠.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 농담으로 가장 많이 한 말이 '뭣이 중헌디'였어요. 아인이가 추구하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세상에서 중요한 건, 내 심신의 건강, 내 안에 서있는 것들이죠. 아인이가 나중에라도 뭐가 중요한 지 알아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도, 그러길 바라요."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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