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일격을 당했다.’
한국 영화는 쓴잔을, 일본 영화는 축배를 들었다. 한국 영화가 연말·연시를 맞아 총 공세에 나섰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반면 일본영화는 주특기인 애니메이션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뿐만 아니라 21년 만에 실사영화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비를 이뤘다.
지난달 21일 개봉했던 ‘영웅’(윤제균 감독)은 기대보다 아쉬운 스코어를 받아들었다. 손익분기점이 350만 명이지만 306만 명(31일 기준)을 기록 중이다. 지난 30일 관객 수가 9766명으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퇴장 수순이다. 크리스마스+연말+연시+설날 연휴까지 있었지만 관객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윤 감독은 ‘해운대’(1145만 명) ‘국제시장’(1425만 명)으로 1000만 감독 타이틀을 보유했지만 이번엔 고배를 마셨다.
‘교섭’(임순례 감독)도 반응은 냉담했다. ‘교섭’은 지난 18일 개봉해 3주차를 맞이했지만 누적 관객 수 146만 명으로 손익분기점인 350만 명까지 갈 길이 한참 멀다. 심지어 설날 연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도 만족할 만한 관객 수를 얻지 못했다. 임순례 감독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액션과 드라마를 변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만듦새였다.
고배의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들 작품은 베테랑 감독에 톱스타들로 라인업을 채웠다. 하지만 몸집에 비해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고 잔뜩 힘이 들어간 점도 주된 흥행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영웅’은 항일운동, ‘교섭’은 분쟁지역에서의 자국민의 구출기를 그렸다. 그야말로 신선도 측면에서 제로에 가깝다. 그동안 비슷한 소재들이 쏟아졌기 때문에 관객들을 불러드리기엔 웬만해선 역부족이었다.
반면 일본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가 누적 관객 수 195만 명으로 200만 관객을 목전에 뒀다.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개봉작 가운데 5위를 자치한 것이다. 90년대 만화 잡지 ‘주간 소년 점프’와 단행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 원작. 스포일러랄 것도 없이 잘 알려진 결말이지만 탄탄한 편집과 디테일로 향수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연재 종료 25년 만에 극장판 개봉이지만 당시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작품의 위력은 남달랐다.
실사 영화도 바람을 일으켰다. 멜로물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미키 타카히로 감독, 이하 오늘 밤)가 꾸준한 입소문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 2002년 개봉한 ‘주온’ 이후 국내 개봉 일본 실사 영화 중 무려 21년 만의 기록이다. 더 나아가 일본 실사 영화 흥행 1위인 ‘러브레터’(1999)의 115만 명 기록까지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결은 뭘까. 정통 멜로 문법이 주효하면서 ‘멜로가 사라진’ 극장가에서 순항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일본 영화는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외에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밤’이 기지개를 켜면서 향후 다양한 작품들의 소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 영화는 참신한 신인 감독의 발굴 및 내실 있는 작품 연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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