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에도 종별이 많다. 최하 종 4품의 숙원에서부터 최고 정 1품의 빈嬪까지 있으나 이에 대하여는 앞의 제 1장 '궁녀'에서 언급하였다.
이들은 사실상 왕의 부실[첩]로서, 내명부에 속한다. 빈 중에서 처음부터 간택을 하여 후궁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으나 이는 궁녀 출신의 빈과는 신분이 다르다. 궁녀에서 요행히 승은을 하고 왕자녀를 낳게 되면, 이들은 최하 종 4품 숙원부터 정 1품 빈까지도 올라갈 수있는데, 빈은 대개 그 소생이 세자가 됐을 경우다.
후궁들이 왕자녀를 대할 때 정실 출신의 대군, 공주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소생들에게도 '해라'체를 못 쓴다. 그것은 왕을 존중해서이다.
효종 후궁 안빈 이씨가 자기 소생 숙녕옹주에게 '너'라 불러, 왕이 중죄로 다스리고자 했는데 왕비의 만류로 간신히 진정되었다고 한다.
선조 후궁 인빈(원종의 친모) 김씨의 일화가 있다. 그는 4남 5녀를 낳고 왕의 사랑을 각별히 받은 후궁이었는데도 소생 왕자녀들이 평소에 어머님이라 부르면 몸둘 바를 몰라 불안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불행하여 곤전[왕비]에서 탄육[귀한 아이를 낳아 기름]을 못 하시고 나 같은 것이 자녀를 둔 것은 단지 배를 빌려 드린 것에 불과한즉, 어째 내가 제諸 왕자군들의 어머니일 수가 있겠읍니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황실뿐 아니라 귀족층 사회도 그렇다. 왕조말 덕혜옹주 생모 양 귀인과 堉육[이름이 육인듯] 왕자의 생모 광화당도 역시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후궁은 친소생이라도 왕자녀에게 '해라'도 못하고 '너'라고도 못함을 알 수 있다. 실지로 고故 삼축당 김씨나 덕혜옹주의 유모였던 변복동 여사의 생전의 증언에 의하더라도 이게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양 귀인은 백날 안 아기에게도 하오체가 아니라 '아기씨 이러십시오, 저러십시오' 깎듯이 공대를 바치더라고 하였다.
요약:
후궁은 자기 소생 왕자, 왕녀에게도 '해라' 못함. '너'라고 못 부름. '어머니' 소리도 듣기 민망하게 여김.
출처는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김용숙 교수, 1987)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425509
그만큼 옹주와 후궁의 신분이 달랐다...
이들은 사실상 왕의 부실[첩]로서, 내명부에 속한다. 빈 중에서 처음부터 간택을 하여 후궁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으나 이는 궁녀 출신의 빈과는 신분이 다르다. 궁녀에서 요행히 승은을 하고 왕자녀를 낳게 되면, 이들은 최하 종 4품 숙원부터 정 1품 빈까지도 올라갈 수있는데, 빈은 대개 그 소생이 세자가 됐을 경우다.
후궁들이 왕자녀를 대할 때 정실 출신의 대군, 공주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소생들에게도 '해라'체를 못 쓴다. 그것은 왕을 존중해서이다.
효종 후궁 안빈 이씨가 자기 소생 숙녕옹주에게 '너'라 불러, 왕이 중죄로 다스리고자 했는데 왕비의 만류로 간신히 진정되었다고 한다.
선조 후궁 인빈(원종의 친모) 김씨의 일화가 있다. 그는 4남 5녀를 낳고 왕의 사랑을 각별히 받은 후궁이었는데도 소생 왕자녀들이 평소에 어머님이라 부르면 몸둘 바를 몰라 불안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불행하여 곤전[왕비]에서 탄육[귀한 아이를 낳아 기름]을 못 하시고 나 같은 것이 자녀를 둔 것은 단지 배를 빌려 드린 것에 불과한즉, 어째 내가 제諸 왕자군들의 어머니일 수가 있겠읍니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황실뿐 아니라 귀족층 사회도 그렇다. 왕조말 덕혜옹주 생모 양 귀인과 堉육[이름이 육인듯] 왕자의 생모 광화당도 역시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후궁은 친소생이라도 왕자녀에게 '해라'도 못하고 '너'라고도 못함을 알 수 있다. 실지로 고故 삼축당 김씨나 덕혜옹주의 유모였던 변복동 여사의 생전의 증언에 의하더라도 이게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양 귀인은 백날 안 아기에게도 하오체가 아니라 '아기씨 이러십시오, 저러십시오' 깎듯이 공대를 바치더라고 하였다.
요약:
후궁은 자기 소생 왕자, 왕녀에게도 '해라' 못함. '너'라고 못 부름. '어머니' 소리도 듣기 민망하게 여김.
출처는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김용숙 교수, 1987)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425509
그만큼 옹주와 후궁의 신분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