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희(1929~2019)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4남 6녀 자녀들중 장녀로
현 한솔그룹의 초대 총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기업 총수이기도 함)
우리나라 1세대 여성기업인이기도한데 이병철 창업주가 매우 아낀 자녀임.
삼성그룹이 창업되기도 전인 1929년 출생
첫딸이라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어린시절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았고
부모님이 오르간을 사주어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다고 함.
공부를 잘해서 당시 명문학교였던 경북여고에 진학해 국내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이화여대 가정학과에 진학.
다만 이분도 일제강점기 당시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와 양조장을 지배인에게 맡기는걸 보셨고
태평양전쟁 당시 모심기, 과수원 열매따기, 군복과 군화 깁기 등에 동원되기도 했다고 함.
이병철 회장은 일본에서 출장을 다녀오면 "여사장학"이라는 책과 경영관련 도서 수십권을 선물해주기도 했음.
또한 공장 시찰에도 데리고 가는 등 여성 경영인으로서의 성장을 도왔다고 함.
그러나 이인희 고문이 경영일선에 뒤늦게 나선건 1979년 50세가 넘어서였음.
지금 현재는 조카 이부진 사장이 경영중인 호텔신라의 고문으로 선임됨.
이인희 고문은 서울 신라호텔의 개보수작업, 제주 호텔신라 건립을 이끌었다고 함
제주 호텔신라 건립 당시 나무 한그루까지 몸소 골랐다는데
현재 제주호텔신라를 감싸고 있는 동백나무 150그루를 구하려고
한라산 중턱의 농원을 찾아 700그루 나무를 하나하나 다 살폈다는 일화가 존재함.
또한 이인희 고문은 경영진이 채울수 없는 비품, 서비스, 음식, 기물, 유니폼, 객신, 식당 구석구석을 직접 꼼꼼하게 다 챙겼다고 함
한식당의 음식맛이 나지 않자 자택에저 직접 장을 담가 나르기도.
또한 이 당시 호텔도 주식시장에 상장할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떠올려
호텔신라를 주식시장에 상장시키게 됨
이러한 모습을 본 이병철 회장은 이인희 고문을 보고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길 재목"이라고 호암자서전에서 당시 평했음.
이인희 고문 자서전에 따르면 이화여대에서 가정학을 전공해
음식, 서비스, 인테리어 등 섬세한 터치가 필요한 호텔사업이 잘 맞았다고 함.
이후 이인희 고문은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게 됨
그러던 중 1987년 이병철 창업주가 78세로 타계하고
뒤이어 이병철 회장의 셋째아들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회장이 됨.
이건희 회장은 이인희 고문의 남동생으로 13살 나이차이가 남.
이인희 고문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전주제지, 호텔신라,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을 상속받게 되었음.
이후 1991년 이인희 고문은 본인이 경영에 참여하던 전주제지 계열사를 가지고 삼성그룹에서 독립을 함.
완벽하게 계열분리가 마무리된건 1993년임.
이후 전주제지그룹을 순 우리말인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영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고 함.
한솔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독립 후 급성장하게 되는데 1996년 당시 재계순위 22위로 지정되면서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기업집단으로 인정받음.
동시에 이인희 고문은 한솔그룹의 총수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경제계에서 여성이 대기업 총수로 지정된건 이인희 고문이 최초임.
1997년 당시 재계순위 16위, 1998년 당시 15위, 1999년에는 12위까지 올라감.
2019년 91세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함.
공식적으로 마지막에 모습을 비춘 건 2015년 남동생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장례식.
현재 한솔그룹은 아들들인 조동혁 회장, 조동길 회장이 경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