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陵遲)는 '능욕'을 '천천히' 가한다는 뜻의 말이다. 곧 천천히 육회를 뜨는 것,포를 뜬다는 뜻이다.
능지는 10세기 중국 오대(五代) 때 처음 등장한 극형으로 너무나 참혹한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형벌의 범위에 들어 있지 않았다 한다. 요(遼)나라 때 정식 형벌이 되어 법률에 들어갔고 宋, 元, 明, 淸代에도 존속되었으며 청나라 말인 1910년에야 폐지된, 인류사상 최악의 혹형이었다.
죄인을 벗겨 나무등걸에 묶어놓고 며칠 동안 회칼로 살점을 한점 한점 떼내는데 불행히도 전문기술자를 만나면 최다 4700점이 뜯기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마지막엔 온몸에 살점이란 거의 간 곳이 없다고 한다. 이 형벌은 칼을 잘쓰는 사람한테 당하면 나중에 죄인 스스로가 자신의 눈으로 외부로 들어난 자신의 내부장기 까지 볼수 있다고 하였다.. 살점을 베어낸 곳에는 보통 진흙을 발라둔다고 한다.
중국에서 황제만이 명할 수 있다는 이 능지형이 내려질 때는 능지 100도, 능지 200도와 같이 칼대는 숫자를 표시해서 형을 내리는 데, 명대때 모반죄를 범한 환관 유근은 무려 3,000회가 넘는 난도질을 당했다고 한다.
죄인은 최종적으로, 꺼내진 자신의 간장과 심장을 보고난 뒤에야 죽게 된다는 데, 정해진 칼질 횟수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죄인이 죽게될 경우는 사형집행인이 죽게 된다니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지 알 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지독하다 해도 이런 형벌을 가할 수 있겠으며 아무리 생명력이 끈질기다 해도 이런 상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점이 거의 다 뜯겨져나간 넙치가 사람들이 제 살점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도 눈을 껌뻑이면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면 끔직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이런 극악한 형벌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그것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자신이 차지한 권력에 도전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봉건시대 최고권력자의 경고를 담은 것이다. 중국 역사상 몇 차례 시행했다는 이 형벌의 대상자는 '역적(逆賊)'이었다.
처참(處斬)은 대개 목을 베는 참수형(斬首刑)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말의 '능지처참할 놈'은 능지나 처참해서 죽여야 할 놈이란 뜻이었다.
"머리를 자른 뒤에 사지(四脂)를 잘라내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동체와 합하여 여섯 토막이 되는 것이다." 달레(Dallet) 신부의 『조선교회사』의 한 구절이다. 이처럼 참수한 다음 몸을 여섯 토막 내는 것이 '조선식' 능지처참이었으니 중국에 비해서 크게 사정을 봐준(?) 것이라고나 할까....
우리가알고있는 능지처참 즉 사지를 줄에 매달아서 절단시켜버리는 형은 거열형임 ㄷㄷ
출처-디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