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youtu.be/IgB_hW46t9Q
이건 관련된 영화
우간다의 독재자였음
1. 그의 잔혹성
전술한 것처럼 검은 히틀러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이디 아민이 집권 중에 저지른 엽기적이고 추악한 행각은 역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다. 자국민을 수도 없이 살해하고 탄압한 이디 아민은 기분에 따라 똑같은 죄라도 누구는 재판도 없이 무죄 석방시키고, 누구는 지독한 고통 속에 총살시키거나 쇠망치로 때려 죽이게 하는 처벌을 내렸다.
그리고 아민은 수도인 캄팔라의 옛 궁궐 내에 강제 수용소를 지었는데, 이 수용소의 복도는 전류가 흐르는 물 웅덩이로 가득 차 있었고 감옥의 입구에도 전류가 흘렀기 때문에, 탈옥을 시도했다가는 바로 감전사했다. 감옥에는 방마다 창문과 환기 장치 하나 없는 5개의 구역이 있었는데, 이러한 한 구역에만 100명 이상이 수감되었기 때문에 수감된 이들은 감방에서 굶어 죽거나 질식사했다.
이 수용소에서는 10*12피트(3.05*3.66m) 정도의 감방에 34명이 갇혀 있었고,일주일에 식사가 단 2번만 주어져도 운이 좋다고 여겨졌으며 심지어 13일 동안 감방에서 물도 마시지 못한 채 굶어야 했던 수용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굶주린 죄수들은 간수들에게 무자비하게 채찍 등으로 구타당했고, 심지어 이 곳의 교도관들은 총상을 입은 사람들을 전술한 물 웅덩이에 집어넣기까지 했다. 이렇게 이 곳에서 무려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아민 본인이 보좌관들과 같이 감옥에 방문한 후 죄수들을 직접 구타해 죽이기도 했는데, 아민이 집권 기간 8년 동안 손수 죽인 죄수들은 무려 200여명에 달했다고 전해지며, 아민이 자기 손으로 2천 명(!)의 죄수들을 죽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게다가 1972년 3월에 장교들 36명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싱가포르'라는 이름을 붙인 감방은 얼마나 참혹한 고문이 이루어졌는지 피가 바닥에 1cm 두께로 고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너무 잔인하니 이하는 나무위키 가서 확인하길 바람)
https://namu.wiki/w/%EC%9D%B4%EB%94%94%20%EC%95%84%EB%AF%BC#s-2.5
2. 그의 최후
1줄 요약 :반이스라엘이였던 그의 행보를 어여삐 본 사우디국왕이 방 15개의 저택을 제공했고 거기서 편하게 잘 살다 78세에 죽음ㅅㅂ
결국 1979년 4월 11일 되려 탄자니아군과 우간다 국민해방전선의 반격에 수도가 점령당하여 아민은 리비아로 도망쳤다. 하지만 반이스라엘적으로 뜻이 맞던 카다피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기에 리비아에서는 나와야 했다.나중에는 이라크로 향했지만 거기에서도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에게도 홀대받아 결국은 이라크를 떠나 1979년 12월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마지막 망명지로 택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우디 정부가 내준 저택에서 살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직자들은 아민이 충실한 이슬람 신도가 아니라며 국왕에게 아민을 추방시키자고 건의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이스라엘에 맞섰다는 점 하나로 편의를 봐 주었다고 한다.
아민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방이 15개나 있는 넓은 집에서 한 달에 3만 달러의 연금을 받고 운전사와 하인을 고용한 채 아랍어를 공부하고 가라데와 복싱을 배우며 조용히 생활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민은 자연의 비아그라라며 하루에 40개의 오렌지를 먹었기 때문에 당시 사우디 사람들로부터 붙은 별명이 'Dr.Jaffa'였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민은 적어도 2003년 7월 초까지는 여든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나름 건강하게 지냈지만, 2003년 7월 18일부터 고혈압과 신장기능 마비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져 제다에서 투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3. 이런 그도 세계 학살자 탑텐에 들진 못함
https://img.theqoo.net/VPmlF
10위가 100만명 이상 학살함
이디 아민은 공식 30만명 비공식 50만명 학살자임..
이건 관련된 영화
우간다의 독재자였음
1. 그의 잔혹성
전술한 것처럼 검은 히틀러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이디 아민이 집권 중에 저지른 엽기적이고 추악한 행각은 역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다. 자국민을 수도 없이 살해하고 탄압한 이디 아민은 기분에 따라 똑같은 죄라도 누구는 재판도 없이 무죄 석방시키고, 누구는 지독한 고통 속에 총살시키거나 쇠망치로 때려 죽이게 하는 처벌을 내렸다.
그리고 아민은 수도인 캄팔라의 옛 궁궐 내에 강제 수용소를 지었는데, 이 수용소의 복도는 전류가 흐르는 물 웅덩이로 가득 차 있었고 감옥의 입구에도 전류가 흘렀기 때문에, 탈옥을 시도했다가는 바로 감전사했다. 감옥에는 방마다 창문과 환기 장치 하나 없는 5개의 구역이 있었는데, 이러한 한 구역에만 100명 이상이 수감되었기 때문에 수감된 이들은 감방에서 굶어 죽거나 질식사했다.
이 수용소에서는 10*12피트(3.05*3.66m) 정도의 감방에 34명이 갇혀 있었고,일주일에 식사가 단 2번만 주어져도 운이 좋다고 여겨졌으며 심지어 13일 동안 감방에서 물도 마시지 못한 채 굶어야 했던 수용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굶주린 죄수들은 간수들에게 무자비하게 채찍 등으로 구타당했고, 심지어 이 곳의 교도관들은 총상을 입은 사람들을 전술한 물 웅덩이에 집어넣기까지 했다. 이렇게 이 곳에서 무려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아민 본인이 보좌관들과 같이 감옥에 방문한 후 죄수들을 직접 구타해 죽이기도 했는데, 아민이 집권 기간 8년 동안 손수 죽인 죄수들은 무려 200여명에 달했다고 전해지며, 아민이 자기 손으로 2천 명(!)의 죄수들을 죽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게다가 1972년 3월에 장교들 36명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싱가포르'라는 이름을 붙인 감방은 얼마나 참혹한 고문이 이루어졌는지 피가 바닥에 1cm 두께로 고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너무 잔인하니 이하는 나무위키 가서 확인하길 바람)
https://namu.wiki/w/%EC%9D%B4%EB%94%94%20%EC%95%84%EB%AF%BC#s-2.5
2. 그의 최후
1줄 요약 :반이스라엘이였던 그의 행보를 어여삐 본 사우디국왕이 방 15개의 저택을 제공했고 거기서 편하게 잘 살다 78세에 죽음ㅅㅂ
결국 1979년 4월 11일 되려 탄자니아군과 우간다 국민해방전선의 반격에 수도가 점령당하여 아민은 리비아로 도망쳤다. 하지만 반이스라엘적으로 뜻이 맞던 카다피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기에 리비아에서는 나와야 했다.나중에는 이라크로 향했지만 거기에서도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에게도 홀대받아 결국은 이라크를 떠나 1979년 12월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마지막 망명지로 택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우디 정부가 내준 저택에서 살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직자들은 아민이 충실한 이슬람 신도가 아니라며 국왕에게 아민을 추방시키자고 건의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이스라엘에 맞섰다는 점 하나로 편의를 봐 주었다고 한다.
아민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방이 15개나 있는 넓은 집에서 한 달에 3만 달러의 연금을 받고 운전사와 하인을 고용한 채 아랍어를 공부하고 가라데와 복싱을 배우며 조용히 생활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민은 자연의 비아그라라며 하루에 40개의 오렌지를 먹었기 때문에 당시 사우디 사람들로부터 붙은 별명이 'Dr.Jaffa'였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민은 적어도 2003년 7월 초까지는 여든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나름 건강하게 지냈지만, 2003년 7월 18일부터 고혈압과 신장기능 마비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져 제다에서 투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3. 이런 그도 세계 학살자 탑텐에 들진 못함
https://img.theqoo.net/VPmlF
10위가 100만명 이상 학살함
이디 아민은 공식 30만명 비공식 50만명 학살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