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심심한 사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개인적으로 이 사태의 핵심은 '어휘력' 보다는 '비난' 자체라고 느낀다.
51,458 441
2022.08.22 19:16
51,458 441
https://img.theqoo.net/SHcNZ

'심심한 사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사태의 시작은, 한 업체에서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에 네티즌들이 '뭐가 심심하냐'라고 반발하면서 일어났다. 당연히 심심한 사과의 뜻은 지루한 사과는 아니고, 마음 깊이 사과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까지 '문해력'을 거론하고 나섰다는데, 개인적으로 이 사태의 핵심은 '어휘력' 보다는 '비난' 자체라고 느낀다.

기존에도 계속 일련의 '한자어'를 놓고, 이를 모르는 세대를 탓하는 일들은 있어왔다. 그러나 나는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한자어를 모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책들을 읽다보면, 모르는 한자어들 투성이다. 언어란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반대로 보면, 기성 세대는 새로운 세대들이 쓰는 신조어나 외래어는 거의 모르기도 한다. 문제는, 특정 어휘를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소통에 대한 태도 자체의 변질이다.

업체가 사과 말씀을 전하면서, 심심하니까 대충 사과한다고 말할 리가 없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존재한다면, 어떤 어휘를 쓰든 간에 그것이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 내가 모르는 단어를 누군가 쓰더라도, 특정 맥락 안에서 어련히 적절한 이야기를 했겠거니,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소통에서의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통에서 신뢰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악의적 오독'의 전쟁이 된다. 당신의 마음을 믿을 수 없으므로, 믿을 수 있는 건 눈 앞에 있는 단어 하나하나 밖에 없다. 우리 시대의 거대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말실수 기다리기'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사업가든 누구든 단어 하나 실수하기를 기다려서,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격하고 악플다는 현상은 이제 매우 보편적이 되었다. 타인의 마음을 믿지 못하므로, 믿을 건 단어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직조' 같은 어려운 단어를 쓰는 평론가의 마음은 믿을 수 없다. 그는 진짜 평론을 하는 게 아니라 잘난 척하려는 마음으로 그런 어휘를 쓰는 것이다. '심심한 사과'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은 드디어 사과하기 싫은 마음이 폭로된 '말실수'의 순간이다. 당신들의 진심 같은 건 모두 믿을 수 없다. 진실은 당신들이 쓰는 '이상한 어휘'에 있다. 혹은 정신분석학적인 '말실수'의 순간에 있다. 모든 건 허위이고 거짓이고 위장이므로, 우리는 당신의 팩트를 당신의 어휘에서 발견한다. 바야흐로 정신분석가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 등에 흥행하는 '저격 문화'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인들의 어휘에 집착하는지 더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해왔던 모든 말들을 수집해서 앞뒤가 맞는지 아닌지 분석한다. 나아가 어떤 말실수를 포착하는 순간, 드이어 비열한 '진심'이 나타났다면서 악마화하기 시작한다.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완벽한 언술행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악마화'를 일상화하는 세상이 그렇게 착실히 만들어진다.

예전에도 나는 문해력의 위기란 "나와 타자가 속한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라고 쓴 적이 있다. 이런 위기는 바로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비난하고, 저격하는 데 신이 난 문화와 무관치 않다고 이야기했다(<내가 잘못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에도 이 글이 실려 있다). 문제는 어휘가 아니라 맥락이다. 그리고 이 나와 당신 사이의 맥락에 대한 이해는, 당신에 대한 신뢰, 나와 당신이 속해 있는 총체적 의미에서의 '사회'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신뢰가 무너진 시대에는, 대화는 없고 어휘만 남는다.

악의적 오독의 시대, 우리는 점점 더 결별 위기의 커플처럼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ㅊㅊ 정지우 작가님 페이스북


독해력 문제는 둘째치고 꽤나 일리있는 말이라 가져와 봄
목록 스크랩 (64)
댓글 44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구달 X 더쿠💛] 순수비타민 함유량 27% 구달 청귤 비타C 27 잡티케어 앰플 체험 이벤트 347 05.11 24,228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619,151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370,610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760,234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890,77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5 21.08.23 3,581,669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8 20.09.29 2,437,183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59 20.05.17 3,151,895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4 20.04.30 3,721,62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스퀘어 저격판 사용 무통보 차단 주의) 1236 18.08.31 8,099,587
모든 공지 확인하기()
2407375 유머 뜨게질 그 자체였던 'Ain't no other man' 샘플링 과정 21:03 28
2407374 유머 팬싸템으로 야구복 입고 귀 불타는 세븐틴 우지ㅋㅋㅋㅋ 3 21:01 398
2407373 기사/뉴스 끝까지 법원에 의대 배정위원회 명단 안 낸 정부 2 21:00 248
2407372 유머 변우석 vs 주우재, 누가 더 배고파보여? 3 21:00 390
2407371 이슈 연봉 1억, 5억 버는 사람도 돈에 미치는 이유.jpg 3 20:57 2,355
2407370 유머 런닝맨 촬영중 변우석한테 주접이 폭발한 하하ㅋㅋㅋ 11 20:57 1,220
2407369 유머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게 뭔지 알아? 월요일... 9 20:56 998
2407368 이슈 1년만에 찐복근으로 돌아온 남돌 2 20:54 1,562
2407367 이슈 1800만뷰 다 되가는 그때 그 새우논쟁.shorts 3 20:54 642
2407366 이슈 온앤오프 - Bye My Monster (레코딩 필름 무반주 ver.) 11 20:53 171
2407365 이슈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봐... 노는 것도 너무 고양이 같음.twt 4 20:53 771
2407364 이슈 카타르 행사에서 라이브 찢은 아이돌 1 20:53 651
2407363 정보 예쁜 여자 많고 많은 트리플에스 사회 숫자 이름 유닛 한 번에 알려주는 만능짤.sss 16 20:51 1,138
2407362 기사/뉴스 김영철 “돌아가신 父 존중 안해..술만 마시면 상 엎어 너무 무서웠다” 1 20:51 1,568
2407361 기사/뉴스 ‘킹갓 현대차’ 도요타마저 뛰어넘었다…마침내 세계 1위 등극 8 20:50 716
2407360 정보 작곡가가 두곳 이상에 곡을 파는 더블 판권 (샤이니, 소울스타) 7 20:50 1,112
2407359 유머 제주에서 도민만 가는 맛집 14 20:50 2,438
2407358 이슈 호불호 갈리는 냉면 먹는 방법.....gif 37 20:49 1,733
2407357 이슈 5세대 아이돌 개인 중국 팬덤 상위권 멤버 35 20:49 2,145
2407356 이슈 폐점정리 하는 가게 특징.JPG 11 20:48 2,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