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동성애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린 엄연한 ‘사실’이다. 궁녀들 사이에는 ‘대식(對食)’이라 불린 동성애가 성행했는데, 서로를 방동무·벗 등으로 부르며 엉덩이에 ‘朋(붕)’자를 문신하기도 했다고 실록은 전한다. 또 세종 임금이 동성연애를 한 궁녀들에게 곤장을 치는 벌을 내리고, ‘삼강행실도’를 배포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당시 ‘맷돌부부’ 궁녀에게는 장 70∼100대의 처벌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략)
이밖에도 판소리나 구비문학 등에서 보부상·사당패들의 남색행위와 승방에서 남성이나 여성들의 동성애가 구전되고 있다.
예부터 우리가 ‘맷돌부부’나 ‘비역’(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이란 말을 써왔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동성애는 ‘감춰지기는 했지만, 엄연히 있었던’ 사랑의 한 모습이었다.
〈엄민용기자 margeul@kyunghyang.com〉
기사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44/0000003101?sid=103
/


조선시대 세종 때에도 왕족이었던 이선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평상시 집에 있을 때는 방 하나를 따로 두어 예쁜 사내종 하나와 함께 잠자기를 처나 첩처럼 하니, 동네에서 그 종을 가리켜 ‘이 정승의 첩’이라고 부른다. 그 종은 안방에도 거침없이 출입하고 그의 처와 동침까지 하게 되어 추잡한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세종실록 29년(1447) 4월 18일이 뒤로는 조선시대 동성애 기록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풍습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감추어졌을 따름이다. 이능화는 이 풍습이 “조선조 철종 말년부터 고종 초까지 대단히 성행했으나, 오늘날에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1893년에 한반도를 여행한 일본인 혼마 규스케는 “팔도 가는 곳에 남색이 유행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여기저기 남자가 볼기살을 팔고 다니는 것을 ‘벽장사’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이규경(1788-?)이 편찬한 백과사전에는 남색에 대한 국내외 자료를 망라한 뒤에 “이것이 무슨 아름다운 풍속이라고 온 천하가 풍습을 같이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민간의 무뢰배들이나 사찰의 추한 중들이 서로 이런 짓을 할 뿐이다”고 적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성애와 남녀추니 (시집가고 장가가고 - 가족과 의식주, 2009. 12. 25., 송기호)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2028&docId=2179168&categoryId=62028
-
조선시대에도 동성애는 있었으나 그것을 굳이 기록에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ㅇㅇ (숨기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뭐 이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