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가 40세가 가까운 나이에 낳은 늦둥이 아들 성녕대군 이종
8살 때 성녕대군으로 봉해졌고 그해 12월에 성억의 딸과 결혼했다
워낙에 예뻐해서 결혼을 했어도(궁 밖에 집을 마련해 두었어도)궁에서 나가지 않고 궁 안에서 지냈으며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물고빨고 예뻐함
1418년 1월 26일에 홍역에 걸려 위독하게 되자 태종은 옷을 벗고 잠도 안자고 수라도 들지 않고 흥덕사에 기도를 올렸슴
(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 1월 30일 신사 1번째기사 ~ 임금이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병 때문에 정사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
충녕대군은 세종이 되어서도 동복만이 아니라 이복동생들도 챙기기를 잘했던 사람이고
당연히 성녕대군을 충녕도 예뻐했기에 동생이 아프니까 직접 노력함
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 2월 4일 을유 1번째기사
충녕 대군(忠寧大君)이 의원(醫員) 원학(元鶴)을 거느리고 밤낮으로 항상 종의 곁에 있으면서
자세히 방서(方書)를 궁구(窮究)하여 일찍이 손에서 놓지 않았고 친히 약이(藥餌)를 잡아 병을 구료(救療)하니,
양전(兩殿)이 그 지성에 감복하였다.
(이 양전이라는 태종과 원경왕후임)
그러면 이때 양녕은 뭐했는 가
태종이 양녕을 폐세자 시키면서 꼭 했던 말임
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 5월 10일 기미 1번째기사 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세자에게 어리의 일로 구전에 나가 거처하게 하다
중략 세자가 성녕(誠寧)이 죽었을 때에 궁중(宮中)에서 활쏘는 놀이를 하였다니,
동모제(同母弟)의 죽음을 당하여 부모가 애통하는 때에 하는 짓이 이와 같다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중략
(니가 사람이냐라는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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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녕대군이 죽고 나서 이 부부가 얼마나 슬퍼했는 지
고기도 거의 먹지 않고 양위를 할 때까지 막내 성녕을 그리워했던 태종임
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 3월 6일 병진 1번째기사 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양전에 육선을 드리다
의정부·육조(六曹)에서 양전(兩殿)에 육선(肉膳)을 드리니, 성녕 대군이 졸(卒)한 지 이미 35일째였다.
태종실록 36권, 태종 18년 7월 6일 갑인 2번째기사 1418년
육대언을 불러 전위한 뜻을 전하다
중략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나의 성의를 사랑함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성녕(誠寧)이 일찍 졸(卒)하고 날마다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으니, 어찌 나라를 위할 생각이 있겠는가 중략
중궁도 매일매일 울기만 했다고 함
성녕대군 일화가 이 두 명의 인성을 제대로 보여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