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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야쿠르트 아줌마, 커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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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9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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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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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하나의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백 원짜리 하나를 들고 나가 야쿠르트를 사 오고 나면 가장 큰 고민은 빨대를 꽂아 먹느냐 바닥을 물어뜯어 빨아 먹느냐 냉동실에 얼려 먹느냐였다. 야쿠르트를 꼭 하루 한 병만 먹어야 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고, 두 병 이상 사는 것쯤 아무 일도 아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야쿠르트 아줌마를 기다리는 나이가 지나 있었다. 그런데, 봄바람과 함께 골목을 누비는 익숙한 유니폼을 다시 좇게 된 것은 커피 때문이었다.

시작은 SNS였다. ‘야쿠르트 아줌마에게서만 살 수 있는 커피’에 대한 소문에 이어 인증 샷이 줄을 잇자 궁금해졌다. 검색해보니 2015 US 바리스타 챔피언이었다는 찰스 바빈스키가 참여한 ‘콜드브루 BY 바빈스키’(이하 콜드브루)라는 제품이었다. TV와 버스 광고에서도 “로스팅 후 단 10일”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어차피 대량 생산되는 공장제인 마당에 이 낯선 외국인보다 더 구매욕과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모델은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였다. 전국에 1만 3천 명,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든 본 것 같지만 막상 만나려고 하면 한자리에 멈춰 있지 않은 그들과의 접선은 우연만으로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 25년 만에 야쿠르트 아줌마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한국 야쿠르트 어플리케이션에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 찾기’ 기능을 사용하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지도를 켜면 서울 강남구 신사동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아줌마’와 그냥 ‘가까운 아줌마’, ‘가까운 영업점’ 표시가 떴다. 스크롤을 움직여 경기도 평택까지 내려가다 강서구로 돌아왔다. 지도상 ‘가장 가까운 아줌마’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옆옆 동 사이에 표시됐다. 역시 프로는 단지 내 유치원과 놀이터가 있는 곳에서 영업을 하시는구나! 반갑게 달려갔지만 이미 수업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난 유치원 앞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약간의 오차는 발생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진정하고 큰길로 나갔다. 버스정류장 옆에 낯익은 미색 박스가 놓여 있었다. 배달 중이신 것 같았다.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하는 기능도 있지만 방해가 될 것 같아 다른 ‘가까운 아줌마’를 찾아보기로 했다. 옆 단지 공터에 표시가 떴다. 혹시라도 한발 늦을까 싶어 잰걸음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비둘기뿐이었다. 영상 7℃, 봄볕이지만 제법 쌀쌀한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단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손발이 점점 차가워졌다. 사시사철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일하는 이들이 체감할 날씨에 대해 새삼 생각하며, 다시 어플을 켰다. 이번에는 한 정류장 거리에 ‘가장 가까운 아줌마’가 떴다. 집을 나와 2.5km를 이미 걸은 뒤였지만 몸을 일으켰다. 건널목을 건너고 아파트 사이를 돌아 복지관에 계신 건 아닌지 들여다본 뒤 시장을 지나면서 또다시 허탕인가 싶던 찰나, 길 저편에 핑크색 조끼와 베이지색 모자가 보였다.

기쁜 마음으로 아메리카노(270ml) 네 병과 앰플(27ml) 두 병을 샀다. 야쿠르트 아줌마, 사측의 공식적인 호칭으로는 ‘여사님’이라 불리는 판매원 Y씨는 “라떼는 덜 나가서 덜 가지고 왔더니 다 떨어졌네. 앰플도 괜찮은데 아직은 아메리카노를 사는 분들이 더 많아요. 에스프레소처럼 물에 타 먹는 거라고 말씀드려도, 딱 보면 작아 보이니까”라고 말했다. 그가 담당하는 구역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사무실 일부, 주 고객은 야쿠르트 등 발효유를 구입하는 가정주부들이다. “우리나라에선 전체적으로 한 가지만 해서는 안 되고, 발효유 시장이 점점 줄어드니까 다른 것도 공략해야 해서 커피도 파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의 말대로 국내 발효유 시장 규모는 2012년 1조 8319억 원에서 지난해 1조 7198억 원으로 줄었고, 한국 야쿠르트는 치즈와 커피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신상품인 커피는 그들의 수입에 좀 더 보탬이 될 수 있을까. 170원짜리 야쿠르트에서 2,500원 하는 쿠퍼스 프리미엄까지, 판매액의 22~26% 사이 수수료가 그들에게 떨어진다. 콜드브루 아메리카노는 2,000원, 라떼는 2,300원, 앰플은 1,500원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아이템이다. “젊은 엄마들이나 사무실 여직원들이 마셔보고 괜찮다고 해요. 그래도 아직 야쿠르트 아줌마는 야쿠르트지 뭐. 하하. 이 동네는 그래요.” 이때 장을 봐서 지나가던 중년 여성이 “나 만 원만 빌려줘요”라며 말을 건넸다. “장조림 거리 샀더니 메추리알 살 돈이 모자라. 나 알죠? 저기 812동…. 내일 저지방 우유 하나만 갖다 주면 같이 돈 드릴게.” 이런 일이 드물지 않은 듯 돈을 건네는 Y씨는 “고정 고객은 거의 다 기억해요”라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니 오전 배달을 마친 J씨가 전동 카트 옆에서 야채 좌판을 펼쳐놓은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두 병과 앰플 두 병을 사자 “병에 붙은 딱지 열 장 모아오면 한 병 더 드려요”라며 쿠폰북을 건넸다. 그는 야쿠르트 한 병에 95원이던 90년대 초반 야쿠르트 판매원이 되었다. “이 동네에 이사를 왔는데 애기 아빠 혼자 벌어서는 힘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애기들이 다섯 살, 일곱 살이라 시간에 얽매이는 일은 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 동네 오시는 야쿠르트 아줌마한테 물어서 애들 데리고 대리점에 찾아갔어요. 일 좀 시켜달라고. 나 성격이 내성적이거든요. 뭘 보고 받아줬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창피해서 땅만 보고 다녔지만 캐리어를 타고 엄마를 따라다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직업’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스물아홉, 스물일곱 살의 어른이 됐다. “처음엔 야쿠르트가 없어서 못 팔았어요. 하루에 1,300개씩 넣었으니까. 슈퍼100이랑, 나중에 마쪼니까지 세 가지를 팔았는데 지금은 종류가 정말 많아졌죠. 그런데 커피는 정말 생소해서, 3월 초에 교육을 받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커피를 파나 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판매 할당량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영업소나 점장님 스타일에 따라 다를 텐데, 우리는 그렇진 않아요.” 그는 고령층이 주로 거주하는 구역의 특성상 커피를 사는 고객은 아직 많지 않지만, 더워지는 여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단 걸 좋아해서 내가 먹기는 좀 쓴데, 젊은 사람들한테는 반응이 좋아요. 그리고 그냥 라떼보다 앰플에 우유 타 먹는 게 더 맛있다고 그러던데요?” 그에게 ‘야쿠르트 아줌마 찾기’ 어플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나는 청구서 작성할 때 외에는 컴퓨터를 아무것도 못 해서 그런 건 잘 몰라요. 그런데 어차피 동네에 있으니까 전화 오는 건 괜찮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것은 판매원들의 실시간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담당 구역을 표시함으로써 고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기능이었다.

홍대 근처의 한 영업소에서 카트를 가지고 나오는 판매원 K씨로부터 라떼 두 병과 앰플 한 병을 샀다. 앰플을 타 마실 수 있는 종이컵과 시럽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건 아직 없는데. 대신 야쿠르트 하나 드릴게”라며 봉지에 담았다. 십 년 넘게 야쿠르트를 판매했다는 그는 “우리 커피 맛있죠? 오늘은 세 종류 합쳐서 삼십 개 정도 팔았어요. 저기서 중국 사람도 두 개 사 갔어. 이 사람(바빈스키)을 알고 산 거 같아”라며 자부심 넘치는 얼굴을 했다. “이 동네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다 보니 발효유는 취약해서 잘 안 팔렸는데, 아직 가정집 많은 지역 여사님들과 여론을 못 나눠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커피 수요가 좀 더 많지 않나 싶어. 여기는 한 집 걸러 커피점이 하나씩 있으니까 폭발적으로 나가지는 않더라도 먹어본 분들은 맛있다고 했으니까.” 시장 분석은 물론 영업 전략에 있어서도 그는 적극적이었다. “처음에 회사에서 커피를 영업용으로 몇 개씩 줬어. 아침에 길에서 팔 때 커피 들고 출근하는 언니들을 매일 보니까, 누가 커피 마시는지 알잖아요. 그래서 리플렛이랑 같이 줬더니 다음 날 또 사 가더라고.” 그는 Y씨, J씨와 마찬가지로 걷는 대신 타고 다닐 수 있는 신형 카트 보급을 기대하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여사님들은 모두 이동식 냉장고가 설치되어 있는 탑승형 전동 카트를 기다리면서 전동기 면허를 땄다고 했다. “그 차로 바꾸면 여름에 얼음도 더 준비해가지고 다녀야지. 젊은 사람들은 시원한 걸 좋아하잖아.”

이처럼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고, 판매원 한 사람마다 걸어 다니는 광고 모델이 되고 있는 신제품에 대한 사측의 평가가 궁금해졌다. 한국 야쿠르트 홍보팀 김수진 대리는 “업체의 특성상 방문판매 중심의 정기 구매자가 많다 보니 아직 출시된 지 1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제품에 대해 판단하기는 이르다. 현재 SNS 반응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1개월 이상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에서의 수요가 늘면 콜드브루가 마트나 편의점으로도 진출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일단 야쿠르트 여사님의 손에서 고객의 손으로 신선한 커피를 직접 전달하는 게 목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우연히 만난 여사님으로부터 포션을 구하는 데서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소하게 반가운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어른은 잠시 어린이가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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