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전, 그 시절부터 한국바둑이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13) -장문, 스압-
무명의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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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
조회 수 3134
https://theqoo.net/2358051759 0편 (첫편)
https://theqoo.net/2362406221 12편 (전편)
https://theqoo.net/2362860273 14편 (다음편)
주의사항
중간중간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사진들은 실제 상황과는 조금 다를수도 있음. 조금씩 각색한 부분도 있음
인터뷰, 취재기사, 책, 특집다큐 등 여러 개를 참고해서 쓴 글
정보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기때문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물의 발언이나 좀더 극적인ㅋㅋ 자료를 참고해서 씀
-미처 다 뽑아내지 못했던 가능성-
조훈현과 조남철의 첫 지도대국 일화는 소개해준적이 있지?
https://img.theqoo.net/Vcpyf
그 일화를 보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조훈현은 한국에 있을때 경이로운 재능을 자랑하며 한국 바둑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야
무려 9세 7개월에 프로에 입단하며 한국 바둑계 역대 최연소 프로 기사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
(아 호적이 1년 늦게 올라갔다는걸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10세 7개월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10세 7개월이어도 한국바둑 역대 최연소 기록인건 달라지지 않아)
거기다가 바둑보다는 만화를 좋아해서 종종 기원을 빠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조훈현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어
이미 초등학생의 나이에 프로 초단이었던 조훈현이 유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1963년 연초. 11세(실제로는 12세)
조훈현은 한국일보의 주최 하에 일본 기타니 도장의 유망주와 대국을 가지게 되었어
조훈현이 한국 기원에서 1수를 두면 조남철이 국제전화로 상대에게 알려주고, 일본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했어
https://img.theqoo.net/Wnkpb
이것이 세계 최초의 전화대국!
조훈현의 상대는 일본기원 연구생 1급이었던 이시다
연구생 1급이면 사실상 거의 프로에 가까운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직 프로는 아닌 상대였지
결과는?
대한민국의 바둑 신동으로 불리던 조훈현의 믿기지 않던 참패
흑을 잡은 조훈현이 19집반 차이로 패배했어. 쉽게 설명해서 축구로 따지면 한 10:0으로 진 수준
또 말하게 되서 슬프지만 이때는 한국 바둑과 일본 바둑의 수준 차이가 엄청나게 컸거든
그리고 이 패배가
잠재력을 모두 뽑아내지 않았던 조훈현의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하는 도화선이 되지
조훈현은 이 패배 이후로 선진 바둑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그 해 가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운명적인 만남-
유학길에 오른 초등학생 조훈현
저번 에피소드에서 설명했듯이 세고에와 조훈현의 사제관계는 정말 의도치 않게 이뤄졌어
70년 넘게 살며 제자라고는 딱 2명밖에 없었던 세고에가 마지막으로 점찍었던게 조훈현
사실 그 당시 조훈현의 기력은 일본의 유망주 사이에서 몇명 있는 수준의 기력이었거든?
실제로 세고에의 제자가 된 이후 일본 기원에 가서 급수 판정을 받았는데 4급 판정을 받았어
한국에서 프로 2단을 따냈던 조훈현에게는 대굴욕이었지만 그만큼 일본의 바둑 인프라가 탄탄했던거지
https://img.theqoo.net/WfRkH
그렇다면 세고에는 어떤 점을 보고 조훈현을 내제자로 들이기로 결정했을까?
조훈현이 자신만의 기풍이 제대로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세고에의 마음에 들었어
지금은 몰라도 훗날 대성할것이라는 그런 확신이 세고에에게 보였던거지
또 세고에가
"바둑은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온것이다. 오청원을 가르치면서 중국 바둑계에는 보답을 했다. 조훈현을 훌륭하게 길러내면 한국 바둑계에도 큰 보답이 될 것."이라고 한 적이 있어
한국의 손꼽히는 기재였던 조훈현을 거둬들인것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였던거지
https://img.theqoo.net/inHni
=================
참고로 엄밀히 말하면 오청원은 대만 출신이긴 한데
오청원이 태어났을 당시 대만은 지금의 대만이라기보다 중국을 통치하는 대만이었기때문에 그냥 중국인으로 봐도 무방했어
이후 오청원의 국적은 대만-일본-대만-일본으로 계속 바뀌었어
이렇게 세고에가 2번째 내제자로 들였던 오청원은 훗날 신포석을 기타니와 함께 연구했고, 압도적인 기력으로 일본 기사들을 패퇴시키며 현대 바둑에서 가장 위대한 기사 중 1명으로 꼽히게 돼
=================
어찌됐든 이 둘의 만남이 매우 극적으로 이루어진것은 확실하지
뭐 졸지에 새로운 한국인 제자를 기다리고 있던 기타니는 유망한 제자를 뺏겼지만 워낙 대선배의 결정인지라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지
하지만 이 이후로 세고에와 기타니는 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졌다고...
https://img.theqoo.net/Alrdl
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많은 기대를 받으며 바둑 왕자처럼 자라왔던 조훈현은 꽤 힘든 유학생활을 보내게 돼
무려 60살 이상의 나이차가 나는 스승과 살갑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애초에 유학 처음 갔을때 조훈현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지도 못했거든
게다가 세고에가 직접 바둑을 두면서 자신을 가르치는게 아니고 한동안은 허드렛일만하며 독학하며 지내야 했어
뭐...예전에 조남철이 처음 바둑 유학을 갔을때와 비슷하지?
1가지 더 안 좋았던 일을 꼽자면 세고에의 문하에는 다른 제자가 없었어. 기타니 도장에서처럼 손꼽히는 유망주들과 경쟁하며 배울수는 없었지
그리고 세고에는 기타니보다도 엄격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어린 조훈현이 혼자 견뎌내기에는 힘든 시간이었어
대신 반대로 세고에의 제자는 조훈현 1명이었던 것이 도움이 된 것도 있어
가정을 책임지던 세고에의 며느리가 조훈현을 아들처럼 아꼈거든. 조훈현도 이 분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따랐다고 해
그리고 세고에가 엄격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매몰찬 성격은 아니었어. 무섭긴 해도 별 이유없이 조훈현을 혼내거나 그러지는 않았거든
https://img.theqoo.net/DmhmX
(조훈현 고등학생 시절, 키우던 개 뱅케이)
일본어가 서툰 조훈현이 마음 붙일 친구가 없을 것을 걱정해서 그에게 강아지를 선물해주기도 했어. 이 강아지가 조훈현의 유학 생활에서 큰 버팀목이 되었다고 해
-2명의 스승. 그리고 불세출의 천재-
세고에는 직접 바둑을 가르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바둑에 한해서는 정답이 없다며 자율을 강조하는 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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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행동강령, 예와 도를 제자 조훈현에게 철저히 가르쳤지
'바둑 기사는 기보가 목숨보다 중요하다.'며 기보 챙기기를 습관화시켰어
바둑을 통해 직접 가르치기보다 다른 옛 바둑 기사들의 기보를 통해 스스로 바둑 철학을 세우는것을 유도했지
'바둑은 예와 도의 스포츠. 승부 이전에 예와 도를 갈고 닦아야한다.'며 조훈현의 마음가짐을 다잡게 했어
내기바둑, 술 같은 것들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각별히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어
어린 조훈현도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며 소프트웨어를 하나둘 장착시켰지
이렇듯 세고에는 공부 습관, 바둑 외적, 바둑 철학적 스승이었다면
조훈현의 바둑 실전 스승은 따로 있었어
후지사와 히데유키
애주가, 도박꾼, 여색을 밝히며 돈도 펑펑 쓰는 등 기행을 서슴치 않는 이상한 바둑 기사
하지만 그는 바둑 실전에 있어서 조훈현에게 좋은 스승이었어
그는 연구회를 만들었고 누구던 상관없이 받아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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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조훈현은 이 연구회에 자주 갔고 후지사와는 연구회의 막내 조훈현에게 애정을 듬뿍 주면서 상대해줬지
바둑 철학을 확고하게 갖춘 조훈현이 후지사와와 속기 바둑을 두며 실전 경험을 불려나갔어
거침없는 속기, 화끈한 싸움바둑을 추구하는 후지사와와 그 장점을 체득하기 시작한 조훈현
스펀지같은 흡수력을 보이며 빠른 바둑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조훈현은 하루하루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어
후지사와는 기행을 벌이는 돌아이이긴 했지만 실력은 확실해서 당대 일본 톱클래스 기사였고
이곳저곳 활동을 다니는 일이 많았지
당연히 주위 사람들도 이것저것 물어볼때가 많았어
"현재 일본 바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 후지사와 씨의 눈에 띄는 기사가 있나요?"
"일본 바둑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그때마다 술냄새가 몸에 밴 후지사와의 대답은 비슷했지
"훈현이는 세계 최고의 기재야.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훈현이가 초일류가 될거라고."
"조훈현?"
"일본에서 바둑으로 밥 빌어먹는 양반들. 밥그릇 안 뺏기려면 잔뜩 긴장해야할걸?"
처음 넘어올때만 해도 돋보이지 않았던 조훈현
13세 일본기원 프로 입단
당시 최연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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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재능 조훈현
그에게 있던 무한한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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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사진들은 실제 상황과는 조금 다를수도 있음. 조금씩 각색한 부분도 있음
인터뷰, 취재기사, 책, 특집다큐 등 여러 개를 참고해서 쓴 글
정보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기때문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물의 발언이나 좀더 극적인ㅋㅋ 자료를 참고해서 씀
-미처 다 뽑아내지 못했던 가능성-
조훈현과 조남철의 첫 지도대국 일화는 소개해준적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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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화를 보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조훈현은 한국에 있을때 경이로운 재능을 자랑하며 한국 바둑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야
무려 9세 7개월에 프로에 입단하며 한국 바둑계 역대 최연소 프로 기사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
(아 호적이 1년 늦게 올라갔다는걸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10세 7개월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10세 7개월이어도 한국바둑 역대 최연소 기록인건 달라지지 않아)
거기다가 바둑보다는 만화를 좋아해서 종종 기원을 빠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조훈현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어
이미 초등학생의 나이에 프로 초단이었던 조훈현이 유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1963년 연초. 11세(실제로는 12세)
조훈현은 한국일보의 주최 하에 일본 기타니 도장의 유망주와 대국을 가지게 되었어
조훈현이 한국 기원에서 1수를 두면 조남철이 국제전화로 상대에게 알려주고, 일본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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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세계 최초의 전화대국!
조훈현의 상대는 일본기원 연구생 1급이었던 이시다
연구생 1급이면 사실상 거의 프로에 가까운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직 프로는 아닌 상대였지
결과는?
대한민국의 바둑 신동으로 불리던 조훈현의 믿기지 않던 참패
흑을 잡은 조훈현이 19집반 차이로 패배했어. 쉽게 설명해서 축구로 따지면 한 10:0으로 진 수준
또 말하게 되서 슬프지만 이때는 한국 바둑과 일본 바둑의 수준 차이가 엄청나게 컸거든
그리고 이 패배가
잠재력을 모두 뽑아내지 않았던 조훈현의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하는 도화선이 되지
조훈현은 이 패배 이후로 선진 바둑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그 해 가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운명적인 만남-
유학길에 오른 초등학생 조훈현
저번 에피소드에서 설명했듯이 세고에와 조훈현의 사제관계는 정말 의도치 않게 이뤄졌어
70년 넘게 살며 제자라고는 딱 2명밖에 없었던 세고에가 마지막으로 점찍었던게 조훈현
사실 그 당시 조훈현의 기력은 일본의 유망주 사이에서 몇명 있는 수준의 기력이었거든?
실제로 세고에의 제자가 된 이후 일본 기원에 가서 급수 판정을 받았는데 4급 판정을 받았어
한국에서 프로 2단을 따냈던 조훈현에게는 대굴욕이었지만 그만큼 일본의 바둑 인프라가 탄탄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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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고에는 어떤 점을 보고 조훈현을 내제자로 들이기로 결정했을까?
조훈현이 자신만의 기풍이 제대로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세고에의 마음에 들었어
지금은 몰라도 훗날 대성할것이라는 그런 확신이 세고에에게 보였던거지
또 세고에가
"바둑은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온것이다. 오청원을 가르치면서 중국 바둑계에는 보답을 했다. 조훈현을 훌륭하게 길러내면 한국 바둑계에도 큰 보답이 될 것."이라고 한 적이 있어
한국의 손꼽히는 기재였던 조훈현을 거둬들인것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였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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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엄밀히 말하면 오청원은 대만 출신이긴 한데
오청원이 태어났을 당시 대만은 지금의 대만이라기보다 중국을 통치하는 대만이었기때문에 그냥 중국인으로 봐도 무방했어
이후 오청원의 국적은 대만-일본-대만-일본으로 계속 바뀌었어
이렇게 세고에가 2번째 내제자로 들였던 오청원은 훗날 신포석을 기타니와 함께 연구했고, 압도적인 기력으로 일본 기사들을 패퇴시키며 현대 바둑에서 가장 위대한 기사 중 1명으로 꼽히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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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이 둘의 만남이 매우 극적으로 이루어진것은 확실하지
뭐 졸지에 새로운 한국인 제자를 기다리고 있던 기타니는 유망한 제자를 뺏겼지만 워낙 대선배의 결정인지라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지
하지만 이 이후로 세고에와 기타니는 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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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많은 기대를 받으며 바둑 왕자처럼 자라왔던 조훈현은 꽤 힘든 유학생활을 보내게 돼
무려 60살 이상의 나이차가 나는 스승과 살갑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애초에 유학 처음 갔을때 조훈현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지도 못했거든
게다가 세고에가 직접 바둑을 두면서 자신을 가르치는게 아니고 한동안은 허드렛일만하며 독학하며 지내야 했어
뭐...예전에 조남철이 처음 바둑 유학을 갔을때와 비슷하지?
1가지 더 안 좋았던 일을 꼽자면 세고에의 문하에는 다른 제자가 없었어. 기타니 도장에서처럼 손꼽히는 유망주들과 경쟁하며 배울수는 없었지
그리고 세고에는 기타니보다도 엄격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어린 조훈현이 혼자 견뎌내기에는 힘든 시간이었어
대신 반대로 세고에의 제자는 조훈현 1명이었던 것이 도움이 된 것도 있어
가정을 책임지던 세고에의 며느리가 조훈현을 아들처럼 아꼈거든. 조훈현도 이 분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따랐다고 해
그리고 세고에가 엄격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매몰찬 성격은 아니었어. 무섭긴 해도 별 이유없이 조훈현을 혼내거나 그러지는 않았거든
https://img.theqoo.net/DmhmX
(조훈현 고등학생 시절, 키우던 개 뱅케이)
일본어가 서툰 조훈현이 마음 붙일 친구가 없을 것을 걱정해서 그에게 강아지를 선물해주기도 했어. 이 강아지가 조훈현의 유학 생활에서 큰 버팀목이 되었다고 해
-2명의 스승. 그리고 불세출의 천재-
세고에는 직접 바둑을 가르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바둑에 한해서는 정답이 없다며 자율을 강조하는 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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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행동강령, 예와 도를 제자 조훈현에게 철저히 가르쳤지
'바둑 기사는 기보가 목숨보다 중요하다.'며 기보 챙기기를 습관화시켰어
바둑을 통해 직접 가르치기보다 다른 옛 바둑 기사들의 기보를 통해 스스로 바둑 철학을 세우는것을 유도했지
'바둑은 예와 도의 스포츠. 승부 이전에 예와 도를 갈고 닦아야한다.'며 조훈현의 마음가짐을 다잡게 했어
내기바둑, 술 같은 것들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각별히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어
어린 조훈현도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며 소프트웨어를 하나둘 장착시켰지
이렇듯 세고에는 공부 습관, 바둑 외적, 바둑 철학적 스승이었다면
조훈현의 바둑 실전 스승은 따로 있었어
후지사와 히데유키
애주가, 도박꾼, 여색을 밝히며 돈도 펑펑 쓰는 등 기행을 서슴치 않는 이상한 바둑 기사
하지만 그는 바둑 실전에 있어서 조훈현에게 좋은 스승이었어
그는 연구회를 만들었고 누구던 상관없이 받아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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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조훈현은 이 연구회에 자주 갔고 후지사와는 연구회의 막내 조훈현에게 애정을 듬뿍 주면서 상대해줬지
바둑 철학을 확고하게 갖춘 조훈현이 후지사와와 속기 바둑을 두며 실전 경험을 불려나갔어
거침없는 속기, 화끈한 싸움바둑을 추구하는 후지사와와 그 장점을 체득하기 시작한 조훈현
스펀지같은 흡수력을 보이며 빠른 바둑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조훈현은 하루하루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어
후지사와는 기행을 벌이는 돌아이이긴 했지만 실력은 확실해서 당대 일본 톱클래스 기사였고
이곳저곳 활동을 다니는 일이 많았지
당연히 주위 사람들도 이것저것 물어볼때가 많았어
"현재 일본 바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 후지사와 씨의 눈에 띄는 기사가 있나요?"
"일본 바둑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그때마다 술냄새가 몸에 밴 후지사와의 대답은 비슷했지
"훈현이는 세계 최고의 기재야.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훈현이가 초일류가 될거라고."
"조훈현?"
"일본에서 바둑으로 밥 빌어먹는 양반들. 밥그릇 안 뺏기려면 잔뜩 긴장해야할걸?"
처음 넘어올때만 해도 돋보이지 않았던 조훈현
13세 일본기원 프로 입단
당시 최연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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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재능 조훈현
그에게 있던 무한한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