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신라 20대 국왕)
공식 기록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외모가 아름답고 분위기가 좋았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했음"

진지왕의 아들 김용수와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진골 귀족으로, 어렸을 때는 문무겸비한 미남들 모임인 화랑으로 활동했음.
김유신의 두 누이가 모두 김춘추에게 반하기도 했고 그와 관련된 설화도 있음.

왕이 되기 전, 일종의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당나라와 일본에 간 적이 있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기록도 신라 사람들이 보는 모습뿐만 아니라 당나라 갔을 때, 일본에 갔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의 반응까지 기록되었음.
아무튼 각 김춘추의 외모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음.
<신라 사람들이 봤던 김춘추>
얼굴이 백옥 같고 말을 온화하게 잘하였다. 큰 뜻을 지녔으나 말은 적게 하였고 행동거지에 절도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랑세기> 춘추공조-
왕은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하여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이 있었다. - <삼국사기> 태종 무열왕 1년-
<당 태종이 봤던 김춘추>
왕위에 오르기 전 태자(동궁) 자격으로 고구려 정벌을 위해 청병차 당나라에 들어갔다. 당나라 임금이 그 풍채를 칭찬해 '신성한 사람'이라고 하고 굳이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를 원했지만 애써 설득시켜 돌아왔다. (在東宮時 欲征高麗 因請兵入唐 唐帝賞其風彩 謂爲神聖之人 固留侍衛 力請乃還) - <삼국유사>-
; 이건 진덕여왕2년에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을때의 기록
이찬 김춘추와 그의 아들 김문왕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당 태종이 광록경 유형을 보내서 교외에서 그를 맞이하여 위로하였다.
이윽고 궁성에 다다르자 김춘추의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함을 보고 후하게 대우하였다.
-<삼국사기>-
<일본 사람이 봤던 김춘추>
신라가 상신(上臣) 대아찬 김춘추 등을 파견하여 박사 소덕(小德) 고향흑마려(高向黑麻呂), 소산중(小山中), 중신련압웅(中臣連押熊; 나카토미노무라지오시쿠마)을 보내 공작새 한 쌍과 앵무새 한 쌍을 바쳤다. 그리고 춘추를 질(質)로 삼았다. 춘추는 용모가 준수하고 담소를 잘하였다.
-<일본서기> 647년-
결론: 미남은 어느 나라에나 통한다.
(반박시 고구려, 백제인)
출처: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910100016
http://contents.nahf.or.kr/id/NAHF.ns.k_0039_0030_0060_0020#self
http://www.enuri.com/knowcom/detail.jsp?kbno=1896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