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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취재파일] 19살 김지연, 어느 날 '외국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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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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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재파일은 '외국인' 19살 김지연 씨(가명)를 두 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김 씨 1인칭 시점으로 기술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월드컵으로 한참 뜨거웠던 200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김지연입니다. 요즘에는 사정상 푸엉(가명)이라는 베트남 이름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제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실지 조금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시간을 내 읽어주신다면 매우 감사할 것 같습니다.
 
 

(1)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그냥 무난한 아이였습니다. 별로 특별날 것 없이 평범하게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자라면서 동생 2명이 생겨서 3자매 중 첫째가 됐습니다. 부모님 포함 저희 다섯 식구는 가끔씩 에버랜드, 롯데월드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그리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 입학 무렵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부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연아, 너는 신분이 없어. 그러니까 최대한 투명 인간처럼 살아야 해"


신분이 없다고?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어제랑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투명 인간처럼 살아가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정말 그때까지 제가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았거든요. 부모님과의 대화도 지금껏 한국말로 했었고요. '한국인', '한국말' 이런 표현을 쓰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저는 제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에게 당신들이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불법체류' 신분이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셨습니다.
 

(2) 친구가 당황했다…"뭐라고? 너 완전 한국인인데?"

신분이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겪는 사소한 일상들이 그 의미를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학기 초, 선생님이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행정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아이였으니까요. 선생님께서 번호 순서대로 나와 등본을 제출하라고 하셨습니다. 빈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연히 혼을 내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혼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신분이 없어요!"라고 외칠 용기는 없었습니다. 다음에 제출하겠다고 하고 얼버무린 뒤 쉬는 시간에 조용히 교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다른 제 신분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언어가 서툰 것도 아니었고, 먹는 것이 유별난 것도 아니었고, 생김새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언젠가 서류에 주민등록번호를 써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주저하고 있다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미등록 신분이어서 투명 인간과 비슷한 것이라고. 친구는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뭐라고? 너 한국인이 아니라고? 너 완전 한국인인데 왜 그렇게 살아?" 이상하게 친구의 말이 조금 위안이 됐습니다.
학교 생활은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개근상도 받았고, '타의 모범'이 된다는 예절상도 받았습니다. 상장은 여러 개 모아둬야 할 만큼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제 명의로 홈페이지에 가입하는 것,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봉사 시간을 기록하는 것, 또 급식비 이체를 위해 스쿨 뱅킹을 신청하는 것들 말입니다. 당시에는 근처 성당에 다니는 지인(한국인)의 도움으로 조금씩 상황을 해결했습니다.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걸 언제쯤 깨달았는지 궁금하거든요.
=중학교 때 부모님이 너는 신분이 없고 그래서 최대한 투명 인간처럼 살라고 하셨어요.
-그럼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어렸으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점점 커가니까 할 수 있는 게 없고 제한되는 게 많으니까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좀 제한이 되고 힘들었을까요?
=홈페이지 가입할 때 본인 명의로 가입해야 되는데 그런 것도 못 하고 봉사 시간도 못 채우고….
=홈페이지 1365라는 봉사사이트가 있어요. 근데 그걸 가입 못 하고, 친구들끼리 놀러 갈 때 롯데월드 생일에 02 들어가면 할인해주는 게 있는데, 저는 신분증이 없으니까 친구들 놀러 갈 때 저는 못 놀러 가고 병원도 못 가고….


(3) 졸업이 코앞이다…난 베트남 말을 모른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족들에게는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엄마는 몸이 안 좋아져서 먼저 베트남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아빠, 저, 그리고 동생 둘이 남았습니다. 저도 동생들도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게 저희에겐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베트남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기도 했고요. 베트남 말은 들을 수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저희 세 자매에게 베트남은 그저 낯선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언제든 강제퇴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만 퇴거 조치를 유예해준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졸업식이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커졌습니다. 대학에 갈 생각에 들뜬 친구들, 취업할 생각에 두근두근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두려웠습니다. 졸업하면 정말, 바로 베트남으로 쫓겨나는 것일까. 베트남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친구가 하나도 없는데, 말도 못 하고, 음식도 안 맞을 텐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졸업식 한 달 전쯤부턴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잠을 어떻게 잤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 그리고 어느 날, 외국인이 되었다

다행히 저는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국내 출생 미등록 아동 일부에게 체류 허가를 주는 방안이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정말 깐깐한 조건이라고 하는데 다행히 저는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사례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15년 이상 한국에서 살았고, 또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임시 체류 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아빠는 자진 출국 형식으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저는 지금 1년 임시 허가인 G-1 비자를 갖고 있습니다. 임시용이기는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생겼습니다. 외국인이라니 아직은 낯섭니다. '푸옹'이라는 새 이름에도 익숙해지려고 하는 중입니다. 물론 아직은 김지연이라는 이름이 가장 편하고 저 같습니다. 아빠가 떠나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좀 많아졌습니다. 고등학생들인 동생 둘을 돌보는 것은 이제 제 몫입니다. 여전히 서툴기는 합니다. 민간단체에서 주는 한 달 지원금 50만 원으로 살고 있는데, 돈도 벌어야 할 것 같아서 허가를 받고 주7일 옷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동생들이 고등학생이라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미안한 마음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당장은 대학에 가자는 겁니다. G-1 비자를 받은 제가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이 방법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가 한국에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두려워요? 어때요?
=가고 싶지 않아요. 언어도 안 통하고.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거기서. (제가) 베트남어는 아예 못 하고 한국어는 잘해요.
-한국 사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그래도 아직 이런 저희 같은 사람들을 좋은 시선으로 보진 않잖아요. 저희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지 마시고 같이 저희랑 힘내서 한국 사회에 뭔가 저희 같은 애들에게 좋은 환경이 될 수 있게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어떤 나라예요?
=되게 정이 많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94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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