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에 공군 대위로 참전했으며, 20년간 프랑스의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로맹 가리.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소설을 썼고, 1945년 『유럽의 교육』이란 소설로 유명해짐
탄탄한 글쓰기 실력과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인기를 끌었던 로맹 가리는
1954년에 『하늘의 뿌리』라는 소설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함.

* 공쿠르상: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이자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중복 수상이 불가함 (평생 한 번만 탈 수 있음)
소설가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예였지만 공쿠르상을 수상한 이후, 얄궂게도 로맹가리는 더욱 힘들어짐

로맹가리: (새로운 소설 발표!)

비평가들: (쑥덕쑥덕) 아~ 무려 공쿠르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 작품치고는 별론데??
사람들: 아~ 로맹 가리 작품이라 기대하고 봤는데~ 생각만큼은~? 로맹 가리도 이제 퇴물인가~?
로맹 가리는 평론가들의 비평과 사람들의 말에 힘들어짐.
로맹 가리가 힘들어 하던 와중, 프랑스 문학계에 혜성같은 신인 소설가가 등장함.

그의 이름은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의 조카였음.
이 집안은 글솜씨가 유전이었는지 로맹 가리의 조카인 에밀 아자르는 뛰어난 글솜씨로
'퇴물 소설가' 로맹 가리의 아성을 위협하고

1975년 『자기앞의 생』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함.
가문의 영광 그 자체..
에밀 아자르가 유명해지고 나서 몇몇 비평가들.. 그리고 문학가들은

"아 잘쓰긴 잘쓰는데, 로맹 가리 문체를 너무 따라한 게 티가 나네ㅋ... 삼촌인 로맹 가리 영향 많이 받았나봄ㅋ"
라고 평가하기도 했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밀 아자르가 뭔 로맹 가리를 닮아;; 로맹 가리는 퇴물임. 에밀 아자르같은 글을 쓸 능력이 없다고; 로맹 가리 올려치기 ㄴㄴ"라고 말하며
에밀 아자르를 찬양하고 로맹 가리를 까내림.
덧붙여 로맹 가리가 이 뛰어난 젊은 작가를 질투하고 있어서 불쌍하다는 소문도 돌았었음.
"로맹 가리 불쌍해~ 에밀 아자르 질투한다며~?ㅋㅋ"
"자기는 이제 더이상 그렇게 글을 못 쓰니까 질투하는거짘ㅋㅋㅋ"

"그런데 에밀 아자르 문체가 로맹 가리랑 비슷하긴 비슷하던데?"
"아니 에밀 아자르를 어디에다 비교해;;; 삼촌이니까 영향을 받았기야 하겠지만, 로맹 가리는 그럴만한 능력 ㄴㄴ"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의 문체가 비슷하다는 의문은 몇몇 평론가들이 제기한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엥 하나도 안 똑같음', '삼촌이니까 영향은 받았겠지' 정도로 넘겼고 평론가들도 진지하게 생각안함.

명소설을 쓴 에밀 아자르의 명성과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음..
반면 로맹 가리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갔는데....
로맹가리의 문체와 에밀 아자르의 문체가 비슷하다?
당연함.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가명이었기 때문임.
로맹가리는 평론가들의 혹평과 퇴물 작가라는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했음.

그래서 조카인 폴 파블로코비치에게 에밀 아자르의 대역을 해달라고 부탁하면서까지 가명으로 많은 소설을 출판했고, 그 중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낸 소설이 공쿠르 상을 수상한 것이었음.
하지만 로맹 가리 생전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고..

로맹 가리가 죽고 난 후,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의 소설, 아니 로맹 가리의 유서가 발간이 되고
그제서야 로맹 가리 = 에밀 아자르 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됨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혹독하게 비평가들을 비판함..

에밀 아자르의 정체를 아는 친지 외에 유일한 사람인 린다 노엘이라는 사람이 "그 책은 로맹 가리가 썼어요!"라고 말을 했는데도 평론가 및 (심지어 로맹 가리랑 친했던) 작가들까지 단 한 명도 안 믿었던거임.
이유는 하나.

퇴물인 로맹 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 로맹 가리는 이미 끝난 작가다. 라는 것.
다음은 로맹 가리가 남긴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글의 일부임

나는 이미 ‘어떤 어떤 작가’라는 고정관념 속에 위치지어진 기성작가일 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네 권의 소설을 펴냈다.
나는 기존의 관념이 지배하는 쉽고 단순한 분석으로는 절대로 그 가명에서 나를 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열렬한 포옹>에서 로맹 가리의 목소리를 읽어낸 평론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기 앞의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내가 얼마나 통쾌했을지 상상해보시라. 나의 작가 인생 전체에서 가장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이런 나의 경험은 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작가의 사후에나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작가는 그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아무도 신경쓸 일이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받아 마땅한 몫을 돌려받게 되니까.
(중략)
문학세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오촌조카 에밀 아자르를 약간 질투하고 조금은 슬퍼하고 있는 로맹 가리가 불쌍하다는 말들이 사교계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흘러나와 내 귀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이 선 너머에서 당신의 티켓은 유효하지 않습니다>에서 나 자신의 쇠퇴를 고백하게 되고….
나는 그것들을 무척 즐겼다. 안녕, 그리고 감사한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1979년 3월 21일
로맹 가리
그리고 현재까지도 로맹 가리는 공쿠르상을 2번 탄 유일한 소설가임. 아마... 공쿠르상이 없어질때까지 유일할듯..
끝!